[ 커버스토리 ] 2000년08월08일 제321호 

[표지이야기] 명멸 거듭한 중·고생운동

88년엔 보충수업 폐지운동 전국화… 89년 전교조사태 땐 “선생님 사랑해요”로 응답

‘조숙한’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나아가 역사의 주체로 나선 적은 결코 적지 않다. 11월3일, 일제에 항거한 광주학생운동을 기리는 학생의 날은 그 주체적 저항을 상징한다. 4·19와 한·일학생회담반대운동도 그 연속선상에 있다. 하지만 그뒤, 우리 역사에서 광주민중항쟁에서 언뜻 보이긴 했지만 중·고등학생들은 오랫동안 감추어진 존재였다.

중·고등학생들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87년 6월. 바로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서고련)을 통해서였다. 서고련은 이미 87년 이전부터 지역서클, 학교소모임 형태로 존재하던 고등학생조직이 그 토대였다. 느슨하게 묶여 있던 이들 고등학생조직이 연합체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한 거리투쟁이었다. 거리투쟁을 통해 만난 고등학생들은 87년 6월의 거리에서 ‘서고련’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서고련은 87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서고련 해체 뒤에도 고등학생운동은 88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보충수업, 자율학습 폐지운동’으로 이어졌다. 정치적인 이슈에서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학내 민주화를 중심으로 한 고등학생운동의 열기는 식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고등학생운동이 전 사회적인 관심사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과 이어진 대량 해직 사태였다. 참교육을 내건 교사들의 활동에 학생들은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구호와 조직적인 시위로 응답했다. 학교별 혹은 지역별로 조직된 중·고등학생 조직은 밤늦게 학교에 몰래 들어가 해직의 부당성을 알리는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고, 학생회 직선제를 선전하기도 했다. ‘광주지역고등학생협의회’ ‘부산지역고등학생연합’ 등 지역별 조직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들 조직 역시 90년대 초반 들어 정권과 학교 양쪽의 탄압을 받으면서 사라졌다. 대신 샘(구로), 희망(성동) 등 지역 청소년단체들이 그 명맥을 이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때마침 불어닥친 PC통신 열풍으로 청소년권리찾기의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교실 안에 고립되어 있던 청소년의 불만이 통신공간을 통해 소통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는 95년 나우누리를 거점으로 한 ‘학생복지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청소년 인권’을 들고 나섰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최우주씨는 야간자율학습과 두발제한, 체벌 등이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예전의 고등학생들과 달리 이들은 ‘청소년이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돼야 함’을 더욱 강조하며 정치적 이슈보다 일상적인 문제를 주로 제기했다. 물론 요구사항 중에 ‘18살 선거권 보장’과 같은 사회적 과제도 없진 않았다. 처음 조직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졸업하면서 ‘학생복지회’의 활동은 점차 지지부진해졌다.

새 천년에 접어 들면서 인터넷이 청소년들의 주요 소통망이 됐지만 ‘학생복지회’는 여전히 좁은 PC통신을 고수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일부 멤버들이 이탈해 만든 것이 ‘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중고등학생연합’이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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