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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착취당하는 중딩·고딩들 저임금에 비인간적 노동환경… 정당한 직업선택 위해 길을 열어주자
소비현실과 용돈의 괴리
그렇지만 출렁거리는 기름을 옮기는 일은 너무 무섭다. 이러다가 큰 사고가 날 것만 같다. 그래도 한달은 채워야 한다. 지난번 일하던 피잣집에서는 3개월을 채우겠다는 계약서를 위반했다고 20일 일한 급료를 전혀 받지 못했다. 조군은 지금 배달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다. 배달 아르바이트는 시급이 2천원 정도되고 일이 없을 때면 앉아서 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면허시험도 어제 통과했다. 조군이 일하는 패스트푸드점에는 20명 정도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10대다. 이곳뿐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 가운데 90% 이상이 10대 청소년들이다. 패스트푸드점뿐 아니라 주유소나 편의점, 패션몰 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종업원도 이제 10대들의 몫이다. 방학중인 요즘은 그 수가 더 늘어났다. 명동 밀리오레 7층 식당가. 이곳에서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은 대부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10대들이다. 박지수(15)군도 그 중 하나다. 8월부터 분식집에서 배달일을 하고 있다. 20kg은 족히 나갈 것 같은 그릇 수거 박스를 들고 하루에도 수십번 아래층을 오르내리다보면 팔다리가 후들거린다. 그 대가는 한 시간에 2천원. 하루 10시간씩 열흘만 일하면 10만원이 손에 들어온다. “한달에 2만원씩 받는 용돈으로는 휴대폰 요금내기도 부족해요.” 그만두라는 부모님들의 성화에도 박군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다. 10대들 역시 움직이면서 돈이 나가는 것은 어른과 마찬가지다. 이제 필수품이 된 휴대폰과 청소년들의 놀이공간이 된 PC방이나 노래방 등 청소년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요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만의’ 패션, ‘우리만의’ 음료수 등 10대를 공략하는 상품도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10대는 아직도 ‘이따금 빵집에서 군것질을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학업에만 전념해야 하는’ 그 시절이다. 소비현실과 용돈의 괴리를 채우기 위한 10대들의 의지를 사회는 여전히 ‘공부 포기한 날라리의 비행’으로 본다. 돈을 벌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의 욕구와 이를 범죄시하는 어른들의 갈등은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10대들을 내몰고 있다. 최근 10대들이 장악한 직종은 대부분 시급 2천원 내외로 노동부가 정하는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이다. 더구나 노동법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고 나이를 약점 잡혀 일을 하는 청소년들은 그나마의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아무개(17)군은 두달 동안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다가 부모에게 걸려 지난달 그만두어야 했다. 취업에 필요한 부모동의서는 다른 친구들처럼 ‘가라’(가짜)로 만들어 제출했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만 18살 미만 연소자의 경우 근로사업장에 나이를 증명하는 호적등본과 함께 친권자 또는 후견인 동의서를 비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김군처럼 ‘동의’를 받고 취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업주로부터 폭행… 여자들이 피해 더 커
저임금이나 착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이다. 지난해 청소년보호위원회가 1095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발표한 ‘청소년 인권의 현황과 대책’에 따르면 편의점, 주유소 등에 고용된 청소년들의 82.5%가 업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뺨을 맞았다’는 응답이 40%로 가장 많았고 ‘얼굴을 맞았다’(34.4%), ‘가슴, 옆구리를 맞았다’(31.3%), ‘무릎을 꿇고 있었다’(28.1%) 등도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폭행당한 빈도 역시 월 1∼3회가 58.8%에 이르렀고, ‘주 1회 이상’도 23.5%나 됐다. 남자(72.7%)보다 여자(95.8%)가 훨씬 많이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 사회도 청소년들의 노동을 하나의 권리로 받아들여 정당한 직업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YMCA청소년센터 사업부의 박금혜 실장은 “청소년의 노동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10대들의 일하려는 의지는 악덕업주들의 배를 불리는 구실만 하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에게 건전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소개하고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공공의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집안의 경제수준과 무관하게 청소년의 아르바이트를 장려하는 서구 사회처럼 이제 우리도 자립심과 사회화 교육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육제도보다 빠른 속도로 ‘입시지상주의’에서 일탈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남에 따라 청소년의 노동을 ‘용돈벌이’에서 ‘자아실현’으로 한 단계 높이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센터 ‘하자’에서 지난달부터 시작한 10대 창업 프로젝트는 일종의 문화벤처 인큐베이팅 작업으로 입시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난 청소년들의 관심사와 벌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실험이다. 방송통신고 3학년에 재학중인 김남이(18)양은 지난해 학교를 그만두고 몇달 동안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숍을 전전하다 ‘하자’센터에서 자리를 찾았다. ‘명함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며 명함을 개발하고 있는 김양은 “청소년들도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또렷하게 말한다. “여기서 받는 돈은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많지 않지만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디자인을 배우면서 일할 수 있고 이를 발전시켜서 내 사업으로 만들 수 있어 신이 나요.” 이 프로젝트는 8월10일 인터넷에서 판매 사이트를 오픈해 본격적으로 명함 수주와 판매에 들어갔다. 김양이 디자인한 명함도 소비자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국내 10대 벤처창업 1호가 된 김규호(16)군은 이보다 한발 앞서나간 경우다. 김군이 만든 벤처기업 ‘(주)아트넷펀드’는 지난 7월1일 서울 금천구 창업지원센터에 입소했다. 교수와 대기업 연구실장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벤처기업 창업지원 심사에 당당하게 통과했기 때문이다. ‘아트넷펀드’는 서적, 영화, 음반, 공연 등 문화상품이 출시되기 전에 제작자와 소비자를 인터넷을 통해 연결하는 일종의 중계업. 예약구매한 상품이 완성되면 소비자는 사용과 동시에 발생된 수익의 일정 부분을 분배받는다. 이 아이디어는 현재 ‘인터넷을 이용한 선구매 및 이익분배방법’이라는 이름으로 특허출원중이다.
청소년노동을 자아실현으로
인터넷방송인 ‘라디오 하자 프로젝트’를 두명의 10대들과 함께 준비하는 고기모 팀장은 “공부에 몰두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다른 재능을 발견할 사이도 없이 패스트푸드점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적인 손실”이라고 지적하면서 “일찍 소비욕구에 눈뜨는 요즘 청소년들의 관심사나 재능과 돈벌이의 건전한 합의점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과 이를 수용하려는 어른들의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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