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08월01일 제320호 

[표지이야기] 폐허 위의 모녀

어머니가 새로운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둘이 삶을 나눌 기회는 있었는데…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조이 럭 클럽>의 선전문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모든 엄마와 딸 사이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어렸을 때 체스 챔피언이었던 딸은 중국에서의 인습적인 조혼제도를 저버리고 미국으로 건너온 어머니와의 관계를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대답할 말(馬)이 준비되어 있는 체스를 두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어머니에 대한 강한 애착과 분리불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달리,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결국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고정관념은 하나의 가족 신화일 뿐이다. 어머니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또한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들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마요네즈>에서 보여지듯, 처음부터 그렇게 시금털털하고 들척지근한 신맛이 나기 때문이다.


(사진/영화 <마요네즈>에서 보이듯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결국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보면 서로 이해하게 된다는 고정관념은 하나의 가족 신화일 뿐이다)


하아무개씨의 어머니에 대한 공개 고발장을 읽어보아도 씁쓸한 맛이 나기는 마찬가지이다. 비교적 소상히 자신의 가족관계를 밝힌 것 같아 보이는 이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오히려 의문부호들. 일단은 어머니가 이혼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분노와 막막함’을 느낀다는 하씨 본인의 상태에 대해 그러하다. 인터넷이란 시민재판(본인의 표현을 빌리면)을 통해 어머니를 단죄하려고 했던 딸이 과연 자신의 말대로 ‘약간의’ 분노만을 느껴 어머니를 고발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의 말대로 한 가정의 어머니자 며느리인 김씨가 시어머니를 식모처럼 부려먹었다면, 한 가정의 딸이자 손녀인 그는 과연 할머니가 식모같이 일했을 때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부부간에 벌어져야 할 애증의 공방전이 딸인 하씨를 통해 벌어지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하씨는 어머니에 대해 “모든 것이 거짓말로 시작해서 거짓말로 끝난다”고 불신과 적대감을 드러내지만, 반면 어머니가 “하교하고 집에 돌아오면 늘 집에 있어야 한다”고 소망하고 있다. 하씨의 분노의 이면에는 어머니에 대한 강한 애착과 분리불안 즉 어머니와의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변한 시점이 경위로 승진을 하고부터라고 굳게 믿고 있는 점만 보아도, 하씨의 모녀 관계는 김씨가 경위로 승진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오히려 일종의 심리적 공생관계를 이루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하씨의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면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하씨는 아버지를 아버지와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바라보기보다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반영되는 ‘어머니의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즉 나에게 무엇을 잘해주고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라기보다, 어머니에게 결코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 아빠, 엄마를 사랑하는 남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만큼 아버지와의 실제적인 교류가 없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만큼 어머니와의 심리적 이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미분화되고 자아가 융합된 대상관계(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심리적 과정)를 보이는 부모 자식간의 경우, 자아에 대한 분리와 개별화의 실패는 대개 ‘적대감’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즉 대상이 분리되는 것 자체가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지각하기 때문에, 대상과 나와의 경계나 심리적 거리감은 상실돼버린다. 보통의 경우 부모의 적대감이 며느리나 사위에 대한 심한 미움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빈번한데, 이번 경우는 오히려 자녀가 부모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쓸쓸하고 개인적인 사회적 성취


(사진/모녀 사이의 애증을 그린 웨인왕 감독의 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


여기에 더해 엿보이는 것이 일하는 여성의 자아 성취에 대한 가족 기여도의 중요성이다. 딸 하씨에 따르면, 김씨는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권력의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내의 사회적 성취가 오히려 남편에게는 열등감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제자와 선생님 사이로 시작한 이들 부부의 관계는 김씨가 사회적 성취를 해 나아갈수록 더욱더 큰 갈등의 회오리를 몰고 다녔을 것이다.

노부모님을 식모같이 부렸다는 하씨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씨의 가족은 김씨의 사회적 성취에 대해 아무런 연대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잘 나가는 엄마의 그늘에 남겨진 가족들이 느끼는 것은 심한 소외감과 열등감이다. 자녀들은 자신이 의당 받아야 할 몫을 빼앗겨버린 것 같은 느낌, 오히려 스스로가 부모를 위해 희생한 희생양이란 느낌까지 들게 된다. 하씨 역시 자신이 고3인데도 늦게 들어오는 어머니, 술집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데려온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나 아내의 성취가 가족들의 지지와 헌신으로 가능했다고 인식하고 있다면, 오히려 자부심과 긍지를 느껴 마땅할 대목인데도 왠지 김씨의 사회적 성취는 쓸쓸하고 개인적인 것에 머물고 만다.

중요한 것은 하씨의 경우, 어머니가 새로운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를 지속적으로 만나고 이후에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삶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씨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떠남은 심리적인 사별과도 같았고, 어머니가 새로운 행복을 추구하면서 하나의 인간으로 개별화되려 하자, 하씨로서는 심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딸에게 엄마는 반인륜적인 위선자가 되었다. 부모를 토막살해했던 이은석씨의 행위가 부모에 대한 육체적인 살인이라면, 어머니에 대한 사회적인 살해를 시도했던 하씨와 은석씨의 행위간에는 그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럼에도 김씨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너무 뒤늦게 안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두 모녀는 너무나 흡사한 어떤 공통점이 있다. 김씨는 자신이 스승과 제자의 일방적 관계로 시작하여 원치 않은 임신과 결혼을 거치면서도 그 과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이 달린 일임에도, 많은 사회적 압력과 관습에 타협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가치와 존중감이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하씨는 김씨가 젊은 날에 그러했듯 혹 쌍둥이처럼 어머니를 닮은 것은 아닐까? 남편의 무관심과 폭력 속에 둘은 서로에게서 서로를 희구했지만, 이제 그 낙원은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은 서로를 폭풍처럼 할퀴고 간 상처와 폐허, 그리고 이 땅의 여성들이 흘렸던 많은 한숨과 눈물이 보태진 고단한 현실일 뿐.

<조이 럭 클럽>에 등장하는 네명의 어머니가 딸들에게 끝까지 가르쳐주려 했던 것은 여성 스스로의 가치였다. 여성의 존재 자체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교훈. 그것은 이 지독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부단히 자신의 삶을 통해 반추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보여주는 방법 외에는 아무에게도 누구에게도 전달될 수 없는 아주 드문 진실이기도 하다.

심영섭/ 임상심리학자·영화평론가kss1966@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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