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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딸에게 고발당한 어느 파출소장 엄마… ‘무책임한 패륜녀’인가 ‘정당한 행복찾기’인가
지난 7월21일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에는 ‘우리 엄마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광주 ㅎ대 2학년에 재학중인 하아무개(21)씨가 올린 이 글은 놀랍게도 현직 파출소장인 어머니 김아무개(42)씨의 ‘불륜’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김씨와 딸의 이름은 이미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사생활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실명과 사진을 쓰지 않기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일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아빠의 잘못이 아닌 엄마의 외도로 이혼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분노감과 막막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입니다. 엄마는 엄마로서 책임도 다 버린 채 자식들마저 버리고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어머니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 외도 사실, 공직자로서의 도덕적 문제 등을 적나라하게 제기했다. 이 글이 오른 뒤 <광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www.kwangju.co.kr) 독자투고란, 광주서부경찰서 인터넷 홈페이지(www.gspolice.go.kr) 방명록, 그리고 여성문화동인 ‘살류쥬’(http://user.chollian.net/∼q17) 게시판 등은 연일 네티즌들의 논쟁으로 달아올랐다. 처음에는 ‘무책임한 패륜엄마’이자 권력에 눈이 먼 ‘악덕 경찰관’을 응징하자는 목소리가 거셌다. 그러나 얼마 있다 ‘엄마에게도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김씨의 고등학교 동창이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친구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소상하게 밝히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네티즌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와 딸의 태도에 대한 비판 등에 머물던 네티즌 논쟁은 그뒤로 간통죄 존폐여부에 대한 찬반론, 딸 뒤에 숨어 있는 아버지에 대한 비판, 우리 사회에 온존하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경찰은 남편에게 간통죄로 고소당한 하씨의 어머니 김씨를 서둘러 직위해제했다. 하지만 광주서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김씨는 간통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액반응검사를 의뢰해놓은 상태이다.
7월27일 정오께 광주시 주월2동 동사무소 앞. 약속했던 하씨는 나오지 않고 할머니가 대신 나왔다. 한참 뒤 하씨는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해 “몸이 불편해 전화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청했다. 딸은 “인터넷에 올린 글은 모두 사실이다. 엄마가 미안해하고 반성하면 다 용서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현장을 들키고도 도리어 당당한 엄마 모습에 더 화가 났다. 공개 고발한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엄마가 법에 따른 처벌을 받길 원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사-제자 신분으로 만나
같은 날 오후 5시 광주서부경찰서 조사계. 중간 키에 마른 몸매의 여성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티셔츠에 진바지 차림의 평범한 복장이었다. 어머니 김씨였다. 김씨는 조사 받는 내내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있었고, 간간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눈가와 코를 닦았다. 오후 4시께부터 시작한 조사는 저녁 7시가 가까워서야 끝났다. 조사 내용은 딸이 주장한 내용에 대한 사실여부를 따지는 것이었다. 조사가 끝난 뒤 김씨와 마주앉을 수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려 하다가 한참만에야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든 딸한테는 상처가 될 거예요. 엄마 입장에서 무슨 소리를 하겠어요. 내 딸 욕보이게 하는 거죠… 내 얼굴에 침 뱉는 일이죠….” 김씨는 주변에서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한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가, 31살 때인 89년에 경사가 되었고, 38살되던 96년 승진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경위가 되었다. 순경으로 출발한 여성경찰관으로서는 성공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를 아는 동료 경찰들은 “무뚝뚝할 정도로 감정 표현을 안 하는 과묵한 성격이고, 냉정하고 확실하게 일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인동파출소장을 맡으면서는 지역 매매춘 근절에 모범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그는 파출소장에서 직위해제된 것은 물론 경찰서 조사계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하는 신세가 됐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결혼한 경위부터 털어놓았다. 남편과는 고3 때 교사와 학생 신분으로 만났고, 졸업 뒤까지 관계가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남편은 이혼남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듯하다. “아이 낳고 나서 혼인신고 했어요. 어쨌거나 제가 선택한 결혼인데 지금 와서 왈가왈부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는 “스무해 넘게 살아왔지만, 더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남편의 가정폭력과 의처증 때문이었다. 폭력의 정도에 대해서는 “많았다”고만 짧게 답했다. 나중에 사실 확인을 위해 남편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딸이 쓴 글에 나온 이야기가 다 사실이다”는 말로 대신했다. 가정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딸에게 수화기를 넘겨주며 대답을 미뤘다. 딸은 “엄마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동료경찰은 “남편이 김씨의 근무지로 달려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머리채를 휘어잡은 일이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김씨의 옛 동료는 “직장에서 엄격했던 김씨였기에 그런 남편의 행동은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남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불행에 휩싸인 한 가족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또한 사건과 사건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복잡한 퍼즐맞추기와도 같다. 독특한 가족사와 당사자들의 애증이 여러 갈래로 얽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의 집안 사정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사자의 주장이 다르긴 하지만 폭력을 다스려야 할 경찰관의 가정에도 그늘을 드리웠던 가정폭력 문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직장여성의 자녀양육과 가사노동 문제, 이혼에 대한 가부장적 시각, 중년 여성의 행복찾기 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 여러가지 질문을 함께 제기한다. 그래서 한 가족의 가정사는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측면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어느 현직 여성경찰 간부의 동병상련
사회적으로 성공한 직장인인 어머니는 가정에서 계속 도망치고 싶어하고, 딸은 자신을 ‘배신’한 어머니에 대해 맹목적으로 분노한다. 그리고 남편은 당사자임에도 모녀의 애증관계에서 한발 빠져 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착하고 말없는 우리 며느리가 눈에 뭐가 씌여서… 잠깐 바람이 나서 이렇게 일이 된 것”이라고 말하며 문제의 원인을 애써 외면한다. 가족 모두가 정서적 일치감이나 유대감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딸의 눈에는 이 모든 책임이 ‘밖으로만 나돈’ 엄마에게 있다고 보였다. 딸의 분노는 생생하고 거칠다. “어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이며, 엄마이며, 아내이며, 모든 국민의 선망의 대상인 여자 파출소장으로서 자식을 버리고 남편을 버리고 가정을 처절하게 파괴하는 인륜을 깨버리는, 그래서 자신의 안락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반사회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까. 하늘이 울고 땅이 울며 저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너무나 어이없는 일입니다.” 딸은 어째서 엄마에 대해 이토록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품게 된 것일까. 딸의 고발장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엄마의 잘못’은 가사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어머니 김씨는 “원래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다. 96년 경위 승진시험을 보면서부터 집안의 합의에 따라 가사일에서 손을 뗐다”고 말했다. 과중한 업무에 쫓기는 현직 파출소장이라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대가족의 가사노동을 맡아야 하는 것일까, 또한 마흔이 넘은 성공한 직장여성인 엄마가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일까. 그러나 어쨌든 딸에게는 엄마의 그런 행동이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애초 두 사람은 모녀가 아니라 마치 자매처럼 지냈다고 한다. 김씨가 딸을 낳은 것은 21살 때. 따라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불과 21살밖에 안 된다. 김씨는 “둘 사이에는 비밀도 없었다. 아빠한테 맞고 함께 부둥켜 안고 많이 울기도 했다. 목욕도 일주일에 두번씩 같이 다니고 잠도 자주 같이 잤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도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된 것이 의문이라고 말했다. “내 보기에는 나이차도 별로 안 나서 그런지 항상 언니 동생 같았는데. 지난해부터는 둘이 많이 다투더라고.” 결정적으로 딸의 분노를 촉발시킨 것은 그런 어머니가 이혼을 요구하고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이다. 하씨는 인터뷰에서 “자기가 좋은 사람 만나는 건 탓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가정을 깬다는 게 말이 되느냐. 결혼했으면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반사회적인 행동을 “딸이자 시민의 한명”으로 고발한 것이라는 게 딸의 설명이다.
냉혹한 ‘가족의 논리’
불행한 결혼생활일지라도 어쨌든 자신의 선택인 만큼 계속 유지해야 옳은가, 아니면 과감히 박차고 나와 새로운 삶을 설계해야 하는가 하는 ‘노라의 고민’이 다시 등장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내가 아는 김 소장’이란 글에서 “법적인 절차를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선택했고, 이렇게 크나큰 죄를 짓고 물의를 일으켰지만 김 소장이 경찰관이 아닌 다른 평범한 여자였어도 이런 비난을 퍼부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경찰관이기에 앞서 여자이고, 자신의 행복추구권이 있는 사람”이라고 김씨 옹호론을 펼쳤다. 딸 하씨의 고발장이나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의 중심에는 항상 할아버지가 있다. 딸은 엄마가 연하의 남자와 살림을 차린 집에 “할아버지를 비롯해 12명이 엄마가 출근하기 위해 출입문을 미는 순간 밀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장을 들킨’ 어머니가 “할아버지 앞에서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고 분노한다. 딸은 엄마의 부정을 단죄하는 일도 ‘가족의 이름’으로 앞장섰다. 7월20일 아침 7시30분 집나간 어머니 남자친구의 집을 ‘급습’한 사람들은 시부모와 남편, 딸, 시동생, 남편의 사촌동서, 동네 아저씨들이었다. 하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른 지방으로 떠난 오빠 대신 오빠의 친구들까지 불러모았다. 엄마에 대한 연민이나 배려는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오로지 ‘가족의 논리’와 ‘단죄의 역할’만 있을 뿐이다. 가족의 질서를 해치고 자식을 버린 엄마는 사회적으로 매장돼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독립적 인격체로서의 어머니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딸의 행동의 근저에는 가부장적 논리가 철저히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네티즌 김혜선hyesun@provid.net)씨는 “하양도 남성 본위의 가부장적 체제의 가여운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여자는 몸을 조신하게 해 집에서 살림을 돌보고 자식들에게 봉사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며 남편을 공경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라는 정의가 그의 글 속에 다 드러나 있다”고 지적했다. 가부장적 질서를 지키는 것만이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며, 그걸 깨는 어머니의 이혼은 모녀의 인연을 끊는 행동으로 하씨는 믿은 것은 아닐까. 더욱이 김씨는 하씨가 인터넷 글에서 몇차례나 강조한 것처럼 가족에 대해 큰 책임을 져야 할 ‘맏며느리’이기도 했다. 하씨는 인터넷에 어머니의 부정을 폭로하는 글을 올린 이유에 대해 “엄마가 현장에서 들키고도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보면 그런 주장에는 상당히 의문이 든다. 하씨는 이미 인터넷에 올릴 글을 미리 작성해 놓았고, ‘현장급습’ 직후 경찰서에 갔을 때 이 글을 현장에서 찍은 사진 등 다른 증거물들과 함께 제출했다. 그리고 그 글은 다음날 곧바로 인터넷에 올렸다.
딸의 분노가 식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이 딸의 주장처럼 “너무나 지나친 엄마의 행동” 때문인지,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엄마의 이혼요구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는 “딸의 행동이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고 말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하고, 가부장적 질서로 가족관계가 유지된다고 믿고 있는 한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를 가졌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딸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어머니에 대해 지금과 같은 배신감과 분노를 계속 갖는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딸은 여전히 어머니가 자식을 버렸다고 여기고 있다. 어머니는 “나는 딸과 헤어지겠다는 생각을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다만 누구와 살지 선택권은 성인인 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에 대해 딸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고, 딸은 어머니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녀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선택이 현명했던 것일까. ‘딸의 파출소장 엄마 고발사건’에 대한 논쟁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은 한 어머니의 외도와 그 딸의 분노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족문제와 여성문제의 ‘현실과 신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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