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07월26일 제319호 

[표지이야기] "문화권력이여, 장난치지 말라"

문학을 경매중계판처럼 만든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심사, ‘황석영 파문’으로 도마에 오르다



작가 황석영(58)씨는 지난 7월20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 ‘동인문학상 후보작을 거부한다’를 통해, 자신의 작품 <오래된 정원>이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심사대상이 되는 일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어떤 상의 수상자로 결정된 뒤 수상을 거부하는 사례는 더러 있어왔지만, 상의 심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자신의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 일 자체를 거부한 건 매우 드문 경우다.

동인문학상 개편으로 옛 영광 찾겠다?

황씨의 문제제기는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한국사회에서 언론권력과 문화권력에 관한 새로운 논쟁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황씨의 문제제기가 단순히 일개 문학상의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데 그치지 않고, 조선일보사라고 하는 거대 언론권력의 ‘야심찬’ 기획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황씨가 특별기고를 통해 제기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동인문학상의 개편이 단순한 문학상의 개편에 그치지 않고 <조선일보>의 문화계에 대한 영향력 강화 움직임의 하나라는 시각이다. 군사 파시즘과 결탁해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를 자임하며 막강한 언론권력으로 성장한 <조선일보>가 오늘날 사회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점차 영향력을 상실해가자, “과거의 영광과 권력을 되찾기 위한” 안간힘의 하나로 문화면에서의 ‘다양성’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인문학상 자체의 비문학적이고 몰상식한 운영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는 특별기고에서, “불공평하게도 의견을 내놓은 자들(심사위원을 말함)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은 채, 내용과 별 상관도 없는 말 몇 마디로 ‘탈락’이니 ‘잔류’니 하고 치워버리는 것은 누가 누구에게 부여한 권리인가?”라고 물으며, “편가르기와 줄세우기식의 사이비 권력놀음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질타하고 있다.

일개 문학상이 어떻게 ‘줄세우기’라든가 ‘사이비 권력놀음’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걸까. 좀더 꼼꼼히 논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사는 지난 6월4일 동인문학상을 개편하면서 제법 많은 공을 들인 셈이다. 장준하가 펴내던 월간 <사상계>에서 제정돼 지난 87년부터 조선일보사가 주관해온 동인문학상은 올해로 31회째를 맞았다. 조선일보사는 올해부터 이 상의 운영방식을 크게 바꾸었다. 바뀐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상금을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크게 올렸다. 앞으로 매년 1천만원씩 증액하여 1억원까지 올린다는 계획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둘째, 지금까지는 문예지 등에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수상 대상으로 삼았으나, 앞으로는 단행본 작품집과 장편소설·대하소설까지 수상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미 출간된 책을 심사 대상으로 삼으므로 예전과 달리 별도로 수상작품집을 간행하지는 않는다. 셋째, 심사위원단을 종신직으로 위촉했다는 점이다. 종신 심사위원으로 조선일보사는 작가 박완서(69)·김주영(61)·이청준(61)·이문열(52)씨와 문학평론가 유종호(65)·김화영(59)·정과리(42)씨 등 7명을 선임했다. 넷째는 심사방식을 ‘연중 독회’ 형식으로 진행하여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그 결과를 공개한다는 점이다.

공개 심사방식으로 작가를 심판대에…


(사진/동인문학상 개편을 알리는 <조선일보> 사고. 황석영씨에 따르면 이는 문화계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바뀐 동인문학상 운영방식은 우선 겉보기에는 별로 문제삼을 대목이 없어 보인다. 상금의 증액은 대개 빈한하게 마련인 문인들의 창작환경에 보탬이 될 터이며, 심사 대상을 중·단편에서 장편으로 확대한 일도 바람직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면을 통한 공개’라는 심사방식에서부터 조선일보의 의도와 기획이 서서히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동인문학상 운영방식의 개편을 발표한 뒤 지난 6월6일치와 7월13일치를 통해 종신 심사위원들의 1차 독회와 2차 독회 내용을 간추린 기사로 공개했다. 2차 독회의 기사는, 1차 독회 때 추천된 10편의 작품 가운데 작가 한강씨의 <내 여자의 열매> 등 4편이 ‘탈락’하고, 황석영씨의 <오래된 정원> 등 6편이 ‘잔류’했으며, 이문구씨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 2편이 새로 추천됐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일보사의 관계자는 독회 내용을 기사로 공개하기로 한 것에 대해 “심사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독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성작가의 작품에 대한 ‘품평회’를 연상시키는 이런 심사방식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며, 매우 ‘비문학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가령 <조선일보> 7월13일치에 실린 2차 독회는 작가 한강씨의 <내 여자의 열매>에 대해서 “공연한 겉멋이 보인다… 그의 성숙을 기다리기로 하자”며 “탈락”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있다. 또 성석제씨의 <홀림>에 대해서는 “한두 작품은 ‘홀렸으나’, 책 전체로는 ‘홀리지’ 못했다, 자기 입심에 자기가 ‘홀려’있는 게 아닌지”라며 “탈락” 판정을 내렸다. 황석영씨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와 함께 ‘잔류’ 판정을 내리고 있다. “…사실 확인에서 오류가 있다. 예컨대 80년대 지하에 순수 정치조직이 30∼40개 있었다고 한 부분 등이다. 그런 조직은 없었다. 조직의 전망도 보이지 않았다. 현실에 없기에 문제가 된다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된다. 하나의 허구가 나머지 사실들을 비틀어 놓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계 비전이 하나도 없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이런 ‘판정’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신중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는 “신인들의 작품이라면 모르되, 지금까지 어떤 문학상도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어떤 결함 때문에 탈락했다’고 공개한 경우는 없었다”고 말한다. 문학이란 작가의 정신적 창조물이기 때문에 한두 마디로 평가를 매기거나 ‘탈락’과 같은 ‘선고’를 내리는 일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긴 지면을 바쳐 정밀하게 논의하는 게 불가능한 신문이 안고 있는 단순화의 위험을 심사위원들이 애초에 몰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신’의 지위는 누가 준 것인가

조선일보의 관계자는 “독자들이 지속적으로 문학과 문단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독회를 매달 연재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조선일보는 문학을 야구중계나 경마중계처럼 ‘승부’나 ‘당락’으로 처리하는 얕은 문화의식을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조선일보에 걸맞은 방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상 검증이나 정치인 검증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문단에 옮겨온 결과, ‘탈락’이니 ‘잔류’니 하는 발상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공개 품평회’와 더불어 또 한 가지의 무리수는 심사위원 종신제이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독자에게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종신제를 채택했다고 설명한다. 종신 심사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평론가 정과리씨는 “프랑스의 공쿠르상이 모델”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럽 등 서양 문학상의 경우 심사위원 종신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런 경우 종신 심사위원은 사계에서 부동의 권위를 인정받은 인사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동인문학상의 경우는 <조선일보>의 문학담당 기자가 작성한 작가·평론가 리스트를 기초로 편집국장과 문화부장 등 간부들의 논의를 거쳐 본인의 의사를 타진해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단의 중지가 모아졌다거나 ‘종신’이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권위의 검증과정을 거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종신 심사위원들이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문학동네 등 한국 문단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형 문학 출판사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을 한명씩 안배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형 문학 출판사 가운데 창작과비평사만 ‘왕따’당한 셈이다.

심사위원 종신제에 대해 황석영씨는 특별기고에서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하여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심사위원 종신제에 대해 “본인이 고사하지 않는다면 <조선일보>가 나서서 지위를 박탈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결국 종신 심사위원이란 <조선일보>라는 후광을 입고 ‘국내 최고의 상금’이 걸린 문학상을 좌우하는 문단 권력자의 위광을 종신토록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종신 심사위원들의 세 가지 관점









(사진/<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들.위쪽부터 김주영, 김화영, 박완서, 이청준)

동인문학상의 개편을 통해 조선일보가 의도하고 있는 점은 문단 안에서 조선일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고종석 <한국일보> 편집위원은 이에 대해 “자사의 확실한 종신 협력자들을 문단 안에서 확보한 셈”이라며, “<조선일보>의 협력자들을 늘림으로써 비판자들을 고립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씨가 아직 심사가 진행중인 문학상의 심사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탕에는, <조선일보>가 동인문학상과 같은 ‘문화사업’을 통해 “비판적이거나 좌파적인 지식인까지도 <조선일보>쪽에 끌어들여 <조선일보>의 반개혁적이고 수구적인 정치·경제 논조를 희석시키고 영향력을 지속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황씨의 문제제기로 인해 동인문학상은 어떤 형태로든 운영방식을 포함한 내부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종신 심사위원의 한 사람은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황씨가 심사대상이 되기를 거부한 이상 황씨의 작품은 심사대상에서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쪽의 관계자는 “출발단계에서부터 흠결이 생겨서 유감”이라며 심사방식의 변경을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한국문단에서 소설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란 사실에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할” 황석영씨의 작품이 심사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동인문학상은 수상 범위에서 일정한 한계를 긋게 됐다. <조선일보>의 극우적 논조가 급격히 변화하지 않는 한, 동인문학상은 <조선일보>의 논조를 문제삼지 않는 이들로 심사대상이 제약될 것이기 때문이다.

황씨의 문제제기에 대해 젊은 문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가 최인석(민족문학작가회의 소설분과위원장)씨는 “문단의 상업주의와 파벌주의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신제라는 제도를 도입한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며, “황씨의 문제제기가 앞으로 <조선일보>와 관련한 어떤 선택의 계기에 섰을 때 중요한 고려 사항의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 박태순씨는 지난 7월19일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 “1975년 조선, 동아일보 기자들을 해직할 때 지금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글을 쓰지 말자는 선언을 한 적이 있다”며, “나는 아직도 그 선언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해 많은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황씨의 문제제기는 한국사회에서 <조선일보>를 둘러싼 쟁점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먼저 <조선일보>에 글을 쓰거나 <조선일보>의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관점은,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들의 발언을 통해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보는 게 가능하다.

첫째는 <조선일보>가 극우적 논조를 지녔다 한들 뭐가 문제냐는 관점이다. 작가 이문열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극우적 논조도 하나의 의견일 수 있기 때문에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둘째는 <조선일보>의 논조가 “극우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작가 박완서씨가 여기 해당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 극좌나 극우가 어디에 있느냐”며, “<조선일보>나 <한겨레>의 논조에서 그렇게 지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셋째는 <조선일보>의 논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조선일보>가 문화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는 이상 그 지면에 기고를 거부하거나 동참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관점이다. 이들은 나아가 그런 참여를 통해 <조선일보>를 조금씩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문학평론가 정과리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조선일보>가 정치적 우파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 뒤, “그러나 하나의 이념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조선일보>가 하나의 단일 이념에 의해 주도되는 신문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들의 엉킴과 흐름이 존재하는 신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에 참여함을 통해 이를 조금씩이나마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역’을 공개된 논의의 장으로

<조선일보>와 행보를 함께 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상의 세 관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반면, 강준만 교수를 필두로 한 ‘안티조선’ 진영은 “<조선일보>에 기고하거나 그 신문사의 기획에 동참하는 일이 <조선일보>의 극우적 수구적 본질을 흐려놓는 도구로 쓰인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그 중간에는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방법론(<조선일보>에 기고하거나 인터뷰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등)에 동의하지 않거나,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는(강 교수 등 ‘안티조선’쪽의 어법이나 필치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존재한다. 황석영씨의 문제제기는 이쯤에 자리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시금석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조선일보>에 대한 어떤 판단을 무작정 뒤로 미루거나 피해가기는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백낙청 교수나 황석영씨처럼 <조선일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지식인도 늘어갈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공개적인 논의의 이면에 가려진 금기나 성역의 영토가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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