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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금융회사 부실의 주범들 최순영·전윤수·김성필·김상응·나승렬… 은닉재산도 찾아내 환수받아야
국민 한 사람당 무려 5만원씩을‘대한생명 살리기’에 갖다바친 꼴이다. 그런데도 정작 대한생명 부실화의 최대 요인으로 꼽히는 최순영 전 회장은 아직 민사상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로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11의 260. 유엔빌리지 24호로 2층짜리 빨간 벽돌집이 자리잡고 있다. 외국인들이 모여사는 유엔빌리지 내 집들이 으레 그렇듯 이 집 또한 대지 175평에 앞이 탁 트인 대저택이다.
문닫은 금융사엔 다 떼먹혔다
최순영 전 대한생명 회장이 바로 이 집의 주인이다. 이제는 정부 소유로 넘어간 대한생명에 의해 가압류돼 있긴 하나 아직은 최 전 회장이 거주하고 있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요즘 최 전 회장이 두문불출하고 있으며 부인 이형자씨만 낮에 ‘그랜져’ 승용차를 몰고 어디론가 외출하는 모습이 가끔씩 눈에 띈다고 한다. 최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풀려났다. 현재 최 전 회장은 금감위와 대한생명 등을 상대로 4건의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해 자신의 경영권을 빼앗은 데 대한 취소청구소송이다. 여전히 경영권에 미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11월 국영보험사로 전환한 대한생명에는 모두 2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국민 한 사람당 무려 5만원씩을 ‘대한생명 살리기’에 갖다바친 꼴이다. 이 과정에서 450만 계약자들은 ‘혹시 내돈을 떼이지 않을까’ 가슴을 졸여야 했다. 6만여 직원들은 자존심을 잔뜩 구긴 채 퇴출의 공포에 떨었던 기억도 새롭다. 그런데도 정작 대생 부실화의 최대 요인으로 꼽히는 최순영 전 회장은 아직 민사상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다. 최 전 회장에 대한 책임묻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가 초래한 대한생명의 부실규모에 비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재산을 다 합쳐봐야 고작 100억원 정도라는 게 대한생명 관계자의 말이다. 이미 해외로 빼돌렸거나 친인척 명의로 상당부분 재산을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부실화 뒷면에는 거의 예외없이 몰염치한 오너(대주주)가 도사리고 있다. 대한생명의 예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금감원 검사에서 최 전 회장은 대한생명의 고객재산을 그룹 계열사에 2조원이 넘게 불법대출하거나 유용하도록 지시하고 약 2천억원을 직접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생명의 부실 규모가 무려 3조5천억원에 이른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대한종금 대주주인 성원그룹 전윤수 회장의 행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금감원 및 검찰 조사결과 전 회장은 지난 98년 5월 당시 2400여억원의 여신이 누적돼 있던 성원건설 등 계열사에 한도를 어겨 대출하도록 해 대한종금에 대규모 부실을 안겼다. 결국 대한종금은 파산처리되고 말았으며 적지 않은 직원들이 길거리로 나앉았다. 공적자금 지원을 통해 예금을 대지급했음은 물론이다. 대주주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것 또한 대한생명과 닮은꼴이다. 대한생명의 경우 그나마 퇴출은 면해 훗날 경영이 정상화된 뒤 해외매각 등을 통해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다. 하지만 아예 문을 닫은 금융회사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회수할 길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잠긴 비용’(sunk cost)이다. 대한종금을 비롯해 문을 닫은 종금사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깃털’ 불과한 임직원들만 문책
금융회사가 부실해져 예금을 내줄 수 없는 지경에 빠졌을 때는 정부가 나서 대신 갚아주도록 예금자보호법에 규정돼 있어 공적자금 지원 자체를 책망할 수는 없다. 문제는 해당 금융회사가 왜 부실해졌으며 책임있는 이들이 책임을 졌느냐 하는 데 있다. 종금사별로 약간씩 사정은 다르겠지만 부실화의 원인은 대부분 계열사에 대한 부당대출이었으며 여기에는 오너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금감원의 검사에서 이미 드러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부실 종금사의 대주주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건재하다. ‘깃털’에 불과한 임직원들이 문책을 받는 데 그쳤을 뿐이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퇴출처리된 종금사의 대주주 가운데 부실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이들은 4명뿐이다. 한길·경남종금 김성필(성원토건 회장), 대한종금 전윤수(성원건설 회장), 삼양종금 김상응(삼양사 회장), 새한종금 나승렬(거평그룹 회장)씨 등이다. 이 밖에는 종금 부실과 대주주 사이에 명확한 ‘고리’가 발견되지 않았다. 현행 민사소송법상 손실입증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어 종금 부실에 책임을 묻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해당 종금사의 부실화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4명의 대주주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금보험공사가 일부 대주주에 대해 재산가압류 등 채권보전 조처를 내리고 감춰둔 재산을 조사중이긴 하나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형편이다. 은닉재산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극히 어려운 일인데다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투입된 공적자금에 비해선 ‘새발의 피’여서 솟아오른 국민들의 ‘혈압’을 낮추기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종금사 부실에 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은닉재산을 찾아낸 예가 전혀 없지는 않다. 지난 98년 2월 퇴출된 ㅅ종금 대주주인 ㄱ씨는 감춰둔 재산을 예금보험공사 조사팀에 의해 들통나는 재수없는(?) 일을 겪었다. 올해 들어서다. 예보의 비밀스런 조사결과 ㄱ씨는 서울 평창동에 있는 대지 384평(시가 9억1300만원)을 종금 퇴출 시기에 즈음해 부인 및 아들 명의로 증여해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창동에 있는 98평짜리 건물도 부인 명의로 돌려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에 있는 임야 1021평도 추가 발견됐다. 재산을 전액 환수한다고 하더라도 ㅅ종금 퇴출 과정에 투입된 공적자금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재산을 실제로 환수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민사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얼추잡아 3∼4년은 걸릴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ㄱ씨외 대주주의 은닉재산은 쉽사리 꼬리가 잡히지 않아 예보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예금보험공사의 회수 실적은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 6월20일 현재 퇴출 종금사를 대신해 예금을 지급한 액수는 13조6526억원에 이른다. 이에 비해 회수한 금액은 3조5721억원(26.2%)에 불과하다. 이 또한 파산재단이 남아 있던 자산을 매각, 배당을 준데 따른 것일 뿐 부실에 책임있는 대주주로부터 환수한 것은 전무한 실정이다.
은닉재산 추적 번번이 벽에 부딪혀
최명수 예보 조사2부장은 “퇴출된 종금, 생보의 경우 대주주에 책임을 물어야 할 소지가 많지만 물증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최 부장은 “오너가 임원으로 등재해 경영일선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뒤에서 조종했을 경우(대부분 이렇게 했다)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에 꼬리를 잡는 게 대단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자료제출 요구나 소환조사와 같은 강제조사권이 없다는 것도 예금보험공사의 회수실적이 저조한 한 이유이다. 조사권이 없다보니 은닉재산 추적이 번번이 벽에 부딪히며 기껏해야 대주주 측근이나 친인척을 설득해 진술을 이끌어내는 데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박사는 “주식회사 원리상 대주주라 하더라도 지분율에 해당하는 만큼의 책임을 지면 되겠지만 불법적으로 자금을 끌어다 썼거나 계열사에 부당 지원했다면 엄정한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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