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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정몽원의 교묘한 복귀 주력기업 4개사 재장악 가능성… 기만적인 로스차일드식 한라그룹 구조조정의 전말
“부도를 낸 뒤 직원의 30%가 쫓겨났고 남은 직원들은 임금삭감으로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그 희생 속에 태어난 우량기업의 부실 책임자가 다시 인수하는데 누가 반발하지 않겠는가” 김대중 정부가 지금까지 가장 모범적인 기업구조조정 사례의 하나로 꼽은 한라그룹.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인영씨가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를 짓겠다며 무리하게 투자를 하는 바람에 지난 97년말 그룹 전체가 부도를 낸 뒤, 오너경영인이 ‘기업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겠다’(?)는 자세로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재기의 발판을 다져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데…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저항하거나 방해하는 세력들한테는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했다. 만도기계 노동자들의 평화적인 출퇴근 파업투쟁을 98년 9월3일 새벽 무려 1만6천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철퇴를 내린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국내 채권단이 98년 10∼11월에 한라중공업, 만도기계, 한라시멘트, 한라건설 등 4개 주력계열사의 부채 6조1890억원 가운데 61.6%인 3조8134억원을 일시에 탕감해 주기로 합의한 데도 정부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숨어 있었다. “감독당국으로부터 한라계열 여신에 대한 손실을 확정하라는 주문이 있었습니다. 각 은행들도 한라 관련 부실채권을 하루빨리 털어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로스차일드가 브리지론을 해서 일시 현가상환하겠다기에 전체 한라채권의 38.4%(2조4326억원)만 받고 나머지는 로스차일드가 구워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하도록 한 것입니다.” 한 채권단 관계자의 회상이다. 물론 채권단의 손실 3조8천억원은 고스란히 국민세금 부담으로 돌아왔다. 이런 로스차일드식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지 1년 이상이 지난 지금. 한라그룹 계열사들은 실제로 뿔뿔이 흩어져 완전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라제지, 한라공조 등 10여개 계열사와 사업부서들이 외국기업에 넘어가 주인과 회사 이름을 모두 바꾸었고, 기업별로 예외없이 대대적인 조직 및 인원 감축도 단행했다. 한라중공업의 경우 전체 인원의 무려 70%가 정리됐다. 그런데 한 가지 과거 상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주력 계열사들의 경영권이 한라부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존 총수일가에게 다시 넘어가려는 움직임이다.
정몽원 지분비율 오히려 두배 늘어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있는 라파즈한라시멘트는 지난 7월 7일부터 노조의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월 프랑스의 라파즈사와 미국계 투자회사가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 회사에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30%의 지분을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게 파업의 발단이다. 정 회장은 자본금 360억원에 부채비율 2000%에 이르는 부실기업 한라시멘트의 최고경영자로 15.9%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채권단의 부채탕감에 힘입어 자본금 2380억원에 부채비율 100%의 건실한 기업으로 변신한 라파즈한라시멘트의 대주주로 등극하고, 그것도 지분비율이 오히려 두배가량 더 늘어난 것이다. 보통 기업이 부도를 내면 기존 대주주에게는 책임을 물어 보유주식을 전량 소각시켜 경영권을 박탈하는데, 한라시멘트의 경우 거꾸로 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한라시멘트는 97년 10월 채권단으로부터 총부채의 62.5%인 7543억원을 탕감받고 로스차일드와 합작을 해 자본금 5천만원짜리 종이회사인 ‘RH시멘트’를 세운다. RH시멘트는 한라시멘트의 자산과 영업권을 인수한 다음 자본금을 1억원으로 키워 정몽원 회장이 단독주주로 참여하게 한다. 이 회사는 다시 올해 1월 프랑스 라파즈와 미국계 투자회사로부터 2억달러를 끌어들여 일부는 자본금을 360억달러로 키우는 데 활용하고, 나머지는 로스차이드가 주선한 부채를 상환하는 데 썼다. 여기서 라파즈 등 외국합작투자자들은 회사 이름을 라파즈한라시멘트로 바꾸는 동시에 정몽원 회장의 지분을 30% 보장해주기로 합의했다. 또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사장 선임권도 3년 동안 정몽원 회장에게 보장했다. 결국 정몽원 회장은 단돈 1억원을 들여 자산가치 1조원이 되는 기업의 주요주주이자 사실상 최고경영자가 된 셈이다.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전경택 노조위원장은 “부도를 낸 뒤 전체 종업원의 30% 정도인 250명이 정리해고를 당했고 남은 직원들도 2년 동안 상여금 700% 반납과 임금동결 등으로 고통을 당했다”면서 “그런데 막대한 국민혈세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새롭게 태어난 우량기업을 부실 책임자가 다시 인수하는 데 반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회사의 김아무개 부사장은 한라그룹쪽에 정 회장의 지분 30% 가운데 10%는 종업원들에게, 10%는 환경오염 피해를 당한 지역주민들에게 줘야 한다고 주장을 하다가 사표를 강요받고 물러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라그룹 경영정상화추진실장 장충구 전무는 “정몽원 회장의 지분참여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 라파즈쪽에서 요구한 것”이라며 “회사와 종업원들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지분이 외국자본에 100% 넘어가지 않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몽원 회장이 부도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외자유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공장 문을 한번도 닫지 않고서 회사를 정상화시킨 데 대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세금 횡령극 드라마
이 밖에 한라건설에 대해서도, 한라시멘트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11.9%를 정몽원 회장이 헐값에 넘겨받아 경영권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가장 부실규모가 컸던 한라중공업은 채권단이 대주주로서 현대중공업에 경영권을 위탁했지만, 현대가 필요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채권단 지분을 매수청구(콜옵션)할 수 있는 조건을 달고 있어 사실상 정몽원 회장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한라의 주력기업 4개사 모두가 기존 오너경영인에게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한라그룹은 부도를 내기까지 우리나라 재벌의 전형적인 문제점이 총망라된 재벌이었다. 총수의 전횡에 따른 무분별한 신규투자와 이를 위한 무리한 차입경영, 형제기업인 현대그룹과의 부당내부거래, 상호출자와 지급보증 등에 의한 부실기업과 연계 등이 그룹 전체의 부도를 초래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정인영 명예회장과 정몽원 회장에게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로스차일드식 한라그룹 구조조정의 기승전결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이성근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한 구조조정 정책이 재벌총수의 국민세금 횡령극을 도와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게 한라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대로 입증된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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