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논단

이라크의 비극

채만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이라크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난 91년의 전쟁, 93년 6월과 96년 9월의 미사일 공격에 이어 이라크(국민들)에 대한 미국의 또 한번의 군사공격이 임박한 것처럼 보인다. 군사행동을 고려하 고 있다 며, 지금 미국은 터키-이라크 국경지대와 페르시아만 지역의 군 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91년 3월 이래 미국은,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빌어, 이라크에 대한 봉쇄·제재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 목조르기 에 드는 비용은 매년 5 억 6억 달러(약 5천억 6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조선일보 97. 11. 15) . 이렇듯 적잖은 비용을 들여 목을 조르는 데도 죽어 주지 않고 꿈틀거리 니, 대대적인 폭격으로 아예 숨통을 끊어 놓고 싶을지 모른다. 클린턴 대 통령은 공공연히 군사행동 의 의지를 드러내고, 의회도 파시스트로 간주 되고 있는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공화당)으로부터 진보적 이며 유력한 차 기 대통령 감이라는 리차드 게파트 의원(민주당)까지 모두 하나같이 그 군사행동 을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미 지배계급의 대단결이다.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단(유엔특별위원회) 중 미국인에 대해 추방명령 을 내린 것을 빌미로, 미국의 군사행동은 이라크의 유엔결의 거부에 따른 것 이란 것이 미국측 주장이다. 하지만, ( 조작이다 , 아니다 , 서로 주 장이 달라 자세한 연유야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 동안 미국이 안보리결 의 라는 형식을 빌어 이라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오는 데에 미국인들 중심의 이 유엔특별위가 언제나 구실 을 제공해 왔고, 따라서 중립적인 인사로 교체를 요구하는 이라크의 주장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 은 10월 23일에 무기사찰에 간섭하는 이라크 관리들 의 국외여행을 금지 하는 또

하나의 안보리결의안(1134호)을 주도하는 것으로 그에 응답. 현재의 상황 을 유도해 냈다. 제재 해제를 주장하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 케냐 및 이집트 등은 그 결의안에 기권하였다.

지난 6년 반의 봉쇄가 이라크에 미친 영향은 참상 그 자체이다. 가끔 서 방측 신문은 참담한 이라크의 모습을 바그다드의 짐승 (Beast of Baghdad ) 사담 후세인의 비정(秕政)의 증거인 양 보도하지만, 그것은 봉쇄의 결 과에 다름 아니다. 한때 근대적인 의료 서비스로 이름이 높던 나라에서 봉쇄 6년 반 동안 최소한 1백20만 명 이상이 식량과 의약품 부족 때문에 기아와 예방 가능하고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 갔고, 그 가운데에는 5 살 이하의 어린이가 5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상은 물론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참상이 극에 달하자 안보리는 지난 해에 러시아와 프랑스의 발의로 이라크가 6개

월에 20억 달러 어치의 원유를 수출 할 수 있도록 했으나, 2천2백만 명의 식량과 의약품을 조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에 제재 해제 를 요구하는 국제여론이 높아져 왔고, 이번의 긴장 고조는 그에 대한 미 국의 대응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유엔결의 거부 를 빌미로 내세우지만, 사실 유엔결의 거부로 치면 미국을 따라올 나라도 드물다. 유엔총회가 거듭거듭, 그것도 압도적인 다수결로, 쿠바 봉쇄를 해제할 것을 결의해 왔지만, 미국은 들은 채도 안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봉쇄의 진짜 동기는,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지역에 묻혀 있는 엄청난 양의 석유에 대한 지배권이다. 때문에 리비아, 이라크, 이란 등과 같이 부르조 아민족주의혁명을 이뤄 미국의 제국주의적 요구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 라들에 대해서 미국은 한없이 적대적이다. 그리고 그 국가지도자들은 서 방측 언론에 의해서 사탄과 같은 형상으로 그려진다. 석유에서 얻는 수입 (收入)은 60년대에는 미국의 해외수입(海外收入)의 50% 이상을 차지했고, 지금도 석유독점자본은 미국의 외교·군사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세력이다 .

이라크의 비극이 쿠웨이트 침공의 업보가 아닌가? 물을지 모른다. 그런데 , 누군가 당신 집 현관을 내것 이라며 차지하고 당신의 출입구를 봉쇄한 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필시 칼부림을 불사하면서 현관을 되찾아 출입구 를 확보할 것이다.

지도를 보라. 쿠웨이트 지역은 이라크가 바다(페르시아만)로 나가는 현관 과 같은 곳이고, 본래 이라크의 일부였다. 제1차 대전 말기인 1916년에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제정러시아는, 독일의 영향력하에 있던 중동지역을 재분할할 비밀조약(Sykes-Picot Treaty)을 체결했다가 10월 혁명 후에 쏘 비에트 정권에 의해서 폭로되고 무효가 선언되는데, 그 무효선언이 영국 과 프랑스를 구속하지는 못했다. 쿠웨이트는 그 비밀조약에 의거 분할지 배를 위해 1921년에 영국이 만들어 낸 작위적인 국가 이다. 그후 제2차 대전으로 그 지역 지배권이 미국에 넘어간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 을 위

시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동지역에서 손을 떼야 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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