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진단

진보와 보수의 벽이 무너진다

“그동안 반공주의자로 자처했지만 북한돕기운동을 하면서 ‘빨갱이’가 돼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보수교단 모임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가 어떤 토론회 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북한돕기운동이 일으킨 남한사회 내의 ‘화학작 용’을 잘 대변한다. 김명혁 목사는 방북신청을 했다가 지난 11월5일 출 국금지조처되기도 했다.

현재 북한돕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을 살펴보면 진보적 재야단체 들에서 보수적인 종교단체들에 이르기까지 그 ‘이념적 스펙트럼’이 무 척 넓다. 그런데 “죽어가는 동포를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은 이런 차이 를 딛고 서로간의 이해를 넓혀 ‘동지적 인식’까지 심어주고 있는 것이 다.

이런 ‘화학작용’은 현재 북한돕기운동의 두축인 ‘북녘동포돕기 전국회 의’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이 두 단체는 각 각 그 뿌리를 재야단체와 종교·시민단체에 두고 있다. 우선 ‘전국회의 ’는 겨레사랑-북녘동포돕기운동(전국연합·민주노총 등) 등 재야단체 중 심의 1백여개의 북한돕기 기구를 포괄하는 조직이다. 반면 전 경실련 사 무총장 서경석 목사가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우리민족’은 천주교 등 6 개 교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북한돕기운동을 진행하는 구 체적 방식에서부터, ‘운동론’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면 조직력이 탄탄한 전국회의에서는 조직에 기반을 둔 모금운동을 하는 데 반해 우리민족은 대중적 캠페인에 주로 의존한다.

하지만 이 둘은 모두 북한돕기운동을 통해 서로간의 이해를 높였다는 데 동의한다. 전국연합의 조성범 자주통일위원장은 “이전의 통일운동은 북 한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냐에 따라 참가 여부가 결정된 측면이 컸다”면 서 “하지만 북한동포돕기운동은 그런 벽만큼은 확실히 깼다”고 말한다. 우리민족의 김동규 부장도 “현재 우리민족과 전국회의는 북한동포를 돕 는다는 큰 틀에서는 공감대가 높다”면서 “오히려 두 조직의 존재는 북 한돕기 기금모금실적을 더 높이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우리 사 회에 ‘재야적 성향’과 ‘종교단체적 성향’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므 로 두 단체의 존재는 더 많은 계층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틀이라는 말 이다.

하지만 내년 북녘동포돕기운동에서 이 두 조직이 ‘실천적 결합력’을 좀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의 법륜 집행위원장은 “두 단체가 모두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지만 내년에는 사업 을 공동기획하는 등 정부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다. 민족의 화해를 추구하면서 두 단체가 제갈길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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