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만리재에서

‘권력의 탄생’뒤에 꽃은 시들고…

이번 주도 필시 중계방송은 계속되리라. 토픽은 여전히 이회창과 이인제 사이의 2위싸움일 터이고 관심은 이회창의 약진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로 모아질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에 맞서 이회창 이인제의 통합 문제가 ‘의도를 가진 집단’에서 상당한 강도로 제기될 것이다. 특히 26일이 후 보등록일이고 그때부터는 중계방송의 실증적 근거가 되는 여론조사 발표 가 불가능해지는 만큼 각 매체는 각각의 구미에 따라 다중방송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각 매체가 그동안 꼬불쳤던 지지 후보도 드러날테니 독자 들의 혼란은 조금씩 정리될 것이다. 짐작컨대 매체들은 그때쯤 디제이 대 반디제이로 전선의 단일화를 강제할 가능성이 크고 중계방송의 모든 역량 도 이 부분에 집중할 게 분명하다.

모든 매체가 그렇게 ‘권력의 탄생’에 조명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 빛을 잃은 이면에선 독버섯들이 피어나고 작은 꽃들이 소리소문없이 시든다. 금융실명제가 부지불식간에 나라 경제를 벼랑끝으로 내몬 ‘패륜아’로 낙인찍힌다. 현정부 인권신장의 상징이었던 영장실질심사제가 여야 정치 권과 검찰의 담합으로 백척간두에 섰으며, 모든 국민의 사생활이 정보기 관의 모니터에 잡힐 수 있는 전자주민카드가 현실로 다가온다.

그리고 올해도 절반에게 절망을 주고 나머지 다수에게 순응을 가르치고 극소수에게만 희망을 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자신의 구실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뒤 슬그머니 사라진다. 70만 수험생과 그 가족들에 안겨줬던 몸살 에 대해 마땅히 받아야할 비판에서 멀찌감치 비껴갔다. 그 대신 ‘어차피 세상은 이긴 자의 것’이라는 경쟁사회의 가치를 세상에 막 던져진 청소 년들의 가슴에 깊숙이 아로새겼다. 절반의 탈락자들이 겪을 좌절은 그저 실패한 개인의 것으로 치부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초중고교 10여년을 그들 누구도 원치않던 이 싸움터로 내몰렸다가 받은 이들의 상처도 더이 상 이야기꺼리가 아니다. 그저 성공과 실패라는 차가운 놋그릇에 나뉘어 또다시 절반을 솎아내는 싸움터로 내던져질 뿐이다.

고졸 학력뿐인 이창호 국수처럼 유수한 대학들이 온갖 선물을 내걸고 입 학을 권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이 국수도 한때는 절반의 실패자에 포 함됐다. 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려 했으나 그를 특기생 으로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가 각 대학의 선발 제의 를 거부했다. 꿈이다.

하필이면 시험날짜도 11월말이람. 산도 들도 가슴의 그 모든 빛깔을 남김 없이 쏟아내고 가진 것을 싸그리 털어내고 흙빛으로 동면을 준비한다. 그 속에선 멀쩡한 사람의 가슴도 옹색해진다. 실없이 처연해진다. 개중에 도 심의 손바닥만한 소공원 혹은 여염집 마당 귀퉁이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붉음이 여남은 단풍은 큰 기쁨이다. 혹자는 가느다란 실가지에 매달려 선 채로 말라버리는 단풍의 모습을 칭송해 목불이라 하고, 조막손 오무린 모 양으로 끝끝내 품위를 잃지않으려는 모습을 스님의 입적에 빗대기도 한다 . 그 한가로움이 다소 불만스럽긴 해도 단풍의 끈덕진 집착을 그렇게 종 교적으로 풀이해준 설명에 괜히 재뿌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쪼그린 채 시들어가는 무수한 단풍잎에서 십자가를 본다. 그리고 때를 채우지 못 한 채 시드는 젊음이 그 위에 겹쳐 보인다.

선 채로 시들어버린 그들, 우리는 무어라 위로해야 하나.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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