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통신원리포트


숙제 남긴 솔로몬 판결

과연 솔로몬의 판결이었을까? 지난 11월10일 미국 법정에서 유아살해범으 로 종신형 평결을 받았던 영국인 오페어(보모) 루이스 우드워드(19·여) 가 감형으로 풀려나면서 대서양 양쪽 영국과 미국이 뜨거워지고 있다.

오 제이 심슨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 재판의 주인공 우드워드는 대학입학 전 비는 시간을 이용해 미국 보스턴의 한 가정 오페어로 들어갔다. 그런 데 우드워드는 지난 2월 우드워드가 돌보던 9개월된 유아 매튜 이튼이 숨 지면서 졸지에 ‘고의적 살해범’으로 몰리게 됐다. 우드워드가 살의를 갖고 어린아이의 머리를 장시간 흔들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아이 부모 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부모는 모두 의사다.

우드워드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매사추세츠 법정의 배심원단은 지난 10월 30일 그를 ‘2급 살인혐의’ 평결로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극히 희 귀한 의학상태인 ‘두뇌진동증후군’ 전문가들이 우드워드에게 유리한 증 언을 한 뒤여서 미국과 영국 대중의 충격은 컸다. 그런데 담당판사 힐러 조벨이 11월10일 극히 이례적으로 배심원단의 결정을 뒤집어 단순 과실치 사로 판결한 것이다.

판사는 우드워드가 미숙한 행동으로 아이를 죽게 했지만 고의적 살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조벨 판사는 이와함께 우드워드가 그동안 구금된 2백79 일로 죄값을 치렀다고 판단해 그에 대한 석방을 명했다. 이 판결은 과연 솔로몬의 판결이었을까.

우선 직접적으로 재판에 관여했던 검사와 변호사는 모두 불만이다. 완전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쪽과 즉시 상고할 것을 밝히는 검사쪽 모두 이번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는 태도다. 그렇지만 우드워드의 조국 영국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특히 우드워드의 고향 엘튼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까지 흘 리며 이를 환영했다. 엘튼 마을사람들은 처음 유죄평결이 내려졌을 때 분 노를 금치 못하며 즉시 구명캠페인에 들어갔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 루이스에게 정의를’이라고 쓰인 노란색 티셔츠를 입었고, 마을에 설치된 구명운동본부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원이 밀려들었다.

영국의 법 전문가들도 이번 재판이 전체적으로 공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하 면서 특히 조벨 판사의 양식과 용기에 크게 공감을 표시하는 분위기이다. 영국에서도 이와 같은 사건의 경우 과실치사로 1년에서 2년 정도의 형을 받겠지만 일단 배심원단의 결정이 내려지면 판사가 이를 번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미국 법정의 신속한 판결체제에 대해 영국에서도 본 받을 점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이에 대한 미국인의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다. 11월11일 -<유 에스에이투데이>-갤럽이 함께 한 미국민 여론조사에서는 ‘감형’과 ‘석 방’에 대한 찬성이 각각 52%, 49%로 나타났다. 이번 판결에 약 절반이 동의한 것이다.

모두 솔로몬의 판결이라고 평가할 만한 지표들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이 풀지 못한 숙제도 있다. 나이 어린 오페어에게 생후 1년도 안 된 갓난아 이를 떠맡긴 전문직 부모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일까? 현대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완벽하게 병행하기는 불가능한 일일까? 이 난제에 현명한 판 결을 내릴 솔로몬의 재판은 과연 없는 것일까?

런던=권은정 통신원


호주, 유니언 잭 내릴 것인가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입헌군주제 고수냐, 공화국제 전환이냐?” 라는 국체논쟁을 본격적으로 다룰 헌법회의 소집을 위한 대의원 선거가 한창이다. 오는 12월9일까지 우편으로 투표가 진행되며 이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들이 내년 2월께 헌법회의를 구성하게 된다. 이 회의 결과에 따라 200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체가 결정된다.

영국여왕에게 명목상이긴 하지만 국가원수의 지위를 부여한 현행 헌법에 대한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공화국제 개헌론은 최근 들어 급부상한 정치현안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견해의 대중 적 확산에 기인한다. 첫째, 90년대 들어 대아시아 관계증진이 절실히 요 구되는 상황에서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왕실을 국가적 상징으로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둘째, 다양한 인종적 구성을 가진 다민족 사회인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민적 통합은 영국왕실을 머리로 하는 입헌군주제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정치인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공화국제로의 전환은 시기문제일 뿐 언젠가는 추진할 과제라 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보수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군주제 지지론자들은 이와 같은 공화국제 전환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군주제 지지론자로 알려진 존 하워드 총리는 최근 헌법회의 소집론이 세를 얻으면서 마지 못해 동의한 상태다. 그러나 그는 지난 11월9일 한 텔레비전과 가진 인터뷰에서 “선 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은 정치적 통합이나 안정보다는 분열과 불안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발언을 통해 공화국제 개헌론을 직접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나아가 “입헌군주제가 정치적 극한대립을 막는 안전판 구 실을 했다”면서 “이는 또 정치안정과 의회 민주주의 정착에 지대한 공 헌을 해왔다”고 현행 헌법을 적극 옹호했다.

여기에 더해 전임 폴 키팅 총리를 비롯한 공화론자들이 즉각적인 반론을 펼치고 있어 헌법회의 대의원 선거를 둘러싸고 양 진영의 논쟁은 더욱 거 세질 전망이다. 과연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개회선언은 누가 할 것인가? 영국여왕 혹은 여왕의 대리인인 연방총독일까? 아니면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통령일까?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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