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당신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사진/은행의 기업대출 상담. 정부가 재정투입 과정에서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해야 금융기관도 부실기업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정부가 성업공사 내 부실채권정리기금과 통합예금보험공사 내 예금보험기 금에 재정자금을 투입하면 바로 국민 개개인의 부담으로 연결된다. 재정 자금은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혈세(血稅)이기 때문이다. 부실 경영 끝에 부도를 낸 기업주와 엉터리 돈장사를 한 은행 경영진의 합작품 이라 할 수 있는 부실채권을 정리하거나 금융기관들의 인수합병에 종잣돈 을 대주는 데 왜 일반국민들이 부담을 져야 하느냐고 의구심을 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또 재정자금 투입이 잘못될 경우에는 도리어 부 실기업과 금융기관에 특혜만 줌으로써 대마불사(大馬不死)와 ‘은행은 망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관행만 굳혀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는 기아사태에서도 논란이 됐듯이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책임주의 원칙의 실종과 시장경제 규율의 붕괴로 이어진다.


자구계획 실천 강력하게 감시해야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공황과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재정의 투입이 불가피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 시행은 엄격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국제결제은행(B 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은행의 주식을 사줄 때는 사 전에 자구계획을 제출받고 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 경영진은 가차없이 퇴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일상적인 경영이나 영업활동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시점마다 경영실적을 보고토록 하고 자체적인 회생 가망성이 희박한 경우에는 아예 인수합병이나 청산절차를 밟도록 해야 한다. 부실금융기관이라 하더라도 사후적으로 시장경제의 규 율이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할 경 우 재정자금 투입은 오히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늦추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김준경 박사는 “정부가 매입해준 주식은 경영정상화가 이루어지면 당시 시가에 일정 비율의 프리미엄을 얹은 비싼 가격으로 해 당 금융기관이 되사도록 옵션을 걸어 두는 것도 필히 요구된다”고 말한 다.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적자를 감내했던 정부재정을 정상화시키는 데 도움되는 것은 물론 부실금융기관의 경영정상화를 촉진하는 구실도 하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정부 출자주식을 비싼 값으로 되사기 위해서는 금 융기관의 임직원이 그만큼 더 피나는 경영정상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부실금융기관의 해외차입 등에 보증을 서게 되는 경우에도 상업베이스 차원에서 수수료를 꼭 챙겨야 한다. 부실금융 기관에 대한 이런 조처는 곧 금융기관이 일반기업의 구조조정을 적극 견 인하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된다. 부실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은 스스로 살기 위해서도 자신들이 돈을 빌려준 기업에 대해 강력한 자구계획안을 받아내 는 것은 물론, 채권유예 취소나 신규여신 지원 중단 등을 무기로 자구노 력을 성실히 이행토록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경원의 한 간부는 “이런 후속노력이 이어지지 않을 경우 재정지원을 받게 되는 기 업 소유주나 경영진은 자구노력도 않고 시간을 끌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방만한 경영을 하게 될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


정부 스스로도 구조조정을

정부 또한 구조조정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민으로부터 동의를 얻으려면 정부 스스로 씀씀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연 히 불필요한 부서와 인력을 과감히 잘라내는 희생이 요구된다. 정부차원 의 자구노력과 구조조정으로, 이는 정부개혁과도 연결된다. 이를 바탕으 로 초긴축 예산편성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팽창예산으로 치닫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상당기간 성장률 둔화와 세수확보 부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적자재정을 기점으로 물가불안 , 환율상승, 구조조정 지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피할 수가 없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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