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철새들, 어디로 갈거나

대선 때가 되면 정치권 다음으로 바빠지는 곳은 공직사회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가에 촉각을 곧두세우며 정치실세들과의 이런 저런 인연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이른바 ‘정치권 줄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개인적 친분을 이용하거나 학연 또는 지연을 좇아 정치실세와 다 리를 놓기 위해 바쁘다. 공직사회의 줄서기는 철새처럼 선거 때면 어김없 이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현상이다.


청와대 비서관들 ‘두갈래’

특히 중앙부처의 1급 이상 별정직 공무원들은 요즘 대선추이에 온갖 신경 을 쓰고 있다. 1급 이상 별정직이나 정무직은 신분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언제 자리를 떠야할지 모른다. 중앙부처의 한 별정직 1급 공무원은 “그동안 유력한 대선후보에 줄을 댔던 사람들은 새 정부 때 항 상 승진과 입각 등으로 특혜를 받아오지 않았느냐”며 “신분보장이 안 되는 1급 이상 공무원들로서는 특정후보에 대한 줄서기 유혹에서 벗어나 기 힘들다”고 말했다.

공직자의 줄서기는 청와대가 수원지 노릇을 한다.

청와대 비서관들 중에는 현재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중 누구를 지원해야 하느냐를 놓고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비서관들이 이인제 후보 지지로 기우는 데 반 해 ㅈ,ㅂ 비서관 등은 이회창 후보 지지자로 분류되고 있다.

중앙부처 장차관 가운데도 한 차관이 지난 8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뒤 이회창 후보를 만나기 위해 신한국당 당시 대표실을 찾은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당시 이 차관은 “당정 협조차원에서 현안을 설명하기 위한 면담”이라고 설명했으나 그가 담당하는 분야에 당정간 특별한 현안 은 없었다. 그는 그래도 순진한 편. 대부분 이 후보 측근들을 통한 점진 적인 접근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중앙부처에는 벌써부터 누구는 어느 후보에 줄을 섰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짜하다. 한 중앙부처에서는 김현철씨 인맥으로 통했던 국장이 최근 국민 회의쪽에 줄을 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이 국장은 국 민회의쪽의 고교동창을 통해 끈을 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국장은 대학동창을 통해 신한국당과 줄을 대고 있다고 한다. 또다른 국장은 개인 적 친분이 있는 인사를 통해 국민신당쪽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이 부처의 주요 국장들이 이미 제각각 편을 갈랐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한 간부가 조순 전 시장의 대선 출마를 부추겼다는 의혹을 받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국장은 아직도 조 전 시장쪽과 여전히 접 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다리 걸치기 양상도

정보기관의 경우에도 여러 인연에 따라 대선후보와 줄을 대는 경우가 많 다. 특히 신한국당이 터뜨린 ‘김대중 비자금설’ 관련자료 수집과정에 개입의혹을 받는 정보기관 관계자의 실명이 거론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이 와는 달리 최근에는 유력한 야당후보에게 정보기관의 중요 자료가 즉시 보고된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지방 자치단체장들도 이미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줄서기에 들어갔다. 특히 대구·경북과 경기, 강원도 지역의 단체장들이 어느쪽에 서야하느냐 를 놓고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은 ‘패자’가 없는 곳 들이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의 자치단체장 중에는 양다리 걸치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북지방의 한 단체장이다. 이 단체장 은 자신은 일단 무소속으로 남아 있으면서, 자신의 사조직 책임자는 당선 이 유력한 야당쪽으로 입당을 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부투자기관도 줄서기가 극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정부투자기관장 은 정치적 임명이 많아 어느 부처보다 정치권의 풍향에 민감하다. 한 정 부투자기관의 관계자는 “우리 기관장은 김영삼 정부초기 정부직에서 쫓 겨난 악연으로 평소 YS(김영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 야당쪽에 줄을 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