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격동하는 재벌/한일그룹

올해는 흑자전환 원년

(사진/국제 인수로 한때 재계 5위까지 올랐던 한일그룹은 지금 1천억원이 넘는 적자 속에 27위로 떨어져 있다. 서울 용산구 그룹사옥.)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한일빌딩(옛 국제빌딩)의 엘리베이터는 오늘도 9 개 가운데 3개가 1층로비에 그냥 멈춰선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 앞에는 ‘절전’이라고 쓰인 작은 팻말이 하나씩 놓여 있다. 한일그룹이 연초부 터 시작한 ‘혁신33운동’의 일환이다. 혁신33운동이란 이면지 활용, 전 화통화는 짧게, 결재과정 단축 등 각종 비용을 절감하고 업무효율성을 높 이기 위해 그룹 전체가 벌이고 있는 33가지 실천운동을 말한다. 한일그룹 은 이와 함께 올해부터 신입사원 채용도 수시채용으로 바꿨다.


불황 뚫기 위한 힘겨운 작전

한때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러다가 ‘회사가 그렇게 어렵느냐’는 소 리만 듣는 것 아니냐”는 염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최고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사실 굳이 감출 만한 것도 없었다. 지난해 우성건설 인수를 추진하면서, 경영실적이나 재무구조는 거의 공개 됐다. 올해 들어 내로라 하는 재벌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마당에 한일그룹 이라고 해서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거짓 말일 것이었다. 차라리 체면 생각지 말고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지난해 지표로 본 한일의 건강상태는 썩 양호하지 않다. 재계순위 27위( 총자산 2조6천2백81억원)인 한일그룹은 지난해 그룹 전체로 무려 1천1백9 8억원의 적자를 냈다. 2년 연속 적자였다. 적자규모도 30대 그룹 가운데 서는 한진, 한화, 진로, 기아에 이어 5번째로 컸다. 부채율도 563%로 비 교적 높은 편에 든다. 특히 금융비용 부담률은 13.6%로 진로, 삼미에 이 어 세번째로 높았다.

그러나 87∼88년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때부터 일찌감치 구조 조정에 착수해야만 했던 섬유업 중심의 그룹들이 불황이 극심한 오늘에 와서 “차라리 일찍 맞은 매가 다행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룹의 한 임원은 “이제야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비로소 빠져나온 듯하다”고 말한다.

한일그룹은 국내 최대의 섬유그룹으로 70년대까지만 해도 재계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창업주인 고 김한수 회장은 56년 경남모직을 창업한 뒤 82 년 타계하기 전까지 줄곧 섬유업종만을 고집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64년 한일합섬을 설립해 당시 ‘마법의 섬유’로 불리던 아크릴사(스웨터 담요 등에 쓰이는 합성섬유)를 생산하면서 한일그룹은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그런 한일이 지난 85년 당시 재계 7위권의 국제그룹을 인수하면서부터 오 히려 사세가 급격히 위축됐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일의 국제인수에는 특혜설도 따라붙었다. 덩치가 크면 사업도 잘 되리 라고 여겨지던 시절, 한일은 국제그룹을 인수함으로써 재계 5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섬유와 신발을 중심으로 또한번의 도약을 기대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노동운동이 활화산처럼 폭발하면서 섬유업계의 채산성이 급격 히 악화됐다. 낮은 임금에 의존하던 기업이 몇년 만에 두배 가까이 뛰어 오른 임금을 감당하기에는 벅찼던 것이다.


막대한 부채, 해외이전으로 돌파

(사진/한일합섬이 94년 준공한 인도공장 내부전경. 92년부터 인도네시아. 중국,인도로 생산설비를 계속 이전해 왔다. )

국제상사 등 인수한 기업들도 골칫거리가 됐다. 특히 신발산업은 대규모 생산시설에서 주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수출하던 것이 문제였 다. 해외 원청업체들이 공장을 놀릴 수 없는 약점을 이용해 단가를 마음 대로 주물렀던 까닭이다. 국제그룹을 인수하면서 1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음에 따라, 금융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한일은 공장의 해외이전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국제상사는 91년과 이듬해 인도네시아로 생산시설을 일부 이전하는 한편, 생산라인을 대폭 축소했다. 인수 당시 1백50개 라인에 이르던 국제상사의 생산라인은 현재 인도네시아에 5개, 국내에 2개만이 가동되고 있다. 지금 은 채산성이 떨어지는 주문자상표부착방식의 수출은 아예 없다. 이에 따 라 국제상사는 지난 93년 16%에 이르던 금융비용부담률을 지난해 11.1%까 지 줄였다. 94년까지 매년 1백억∼2백억원씩 적자를 내던 영업실적도 95 년부터는 소폭이나마 흑자로 돌아섰다.

한일합섬도 채산성이 떨어지는 아크릴사의 생산규모를 대폭 감축하고 92 년부터 생산설비를 인도네시아, 중국, 인도로 계속 이전했다. 스웨터 담 요 등에 주로 이용되는 아크릴사보다 천연섬유에 대한 선호가 커지면서 미주 수출은 물론이고 국내수요도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때 최고 50만추(추당0.6∼0.7㎏생산) 규모의 생산설비는 현재 해외 22만추, 국내 에서는 의령공장의 3만추 정도만 가동하고 있다. 절반으로 줄인 셈이다. 그룹 관계자는 “국내생산과 해외생산의 원가비율이 2:1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해외생산쪽은 이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일그룹 전체 매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주력 기업 한일합섬은 지난 93년 63억원의 흑자를 낸 뒤, 다시 95년 7백17억, 지난해 9백92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여전히 그룹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룹쪽은 이에 대해 그동안 해외생산기지 건설에만 5천만달러를 투 자하는 등 투자부담이 컸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95년부 터 아크릴사의 주원료인 A/N모노머의 국제가격이 1t당 6백∼7백달러에서 최고 1천4백달러까지 크게 오른 것이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95년 초의 독일 등 외국 원자재업체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원 자재값 폭등으로, 연간 10만t 정도를 수입해 쓰던 한일합섬은 1년에 6백 억원 가까운 손해를 보아왔다. 그룹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부터 원자재 가격이 다시 하락함에 따라 지난해 상반기 5백90억원의 적자를 내던 것이 올해는 43억 적자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한일합섬쪽은 앞으로도 지 난 90년부터 발을 내딛어온 신규사업부문의 비중을 늘려나감으로써 현재 35%인 원료원사의 매출비중을 2002년에는 15%까지 낮출 계획이다.


차세대 섬유 ‘코셀’로 재도약 준비

(사진/김중원 회장. )

한일합섬이 눈을 돌리는 부분은 건설사업쪽이다. 한일이 지난해 우성건설 을 인수하려고 적극 나섰던 것도 궁극적으로는 해외공장 이전으로 인해 남게 된 부동산을 개발하는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 다. 지난해 6월 수원 조원동에 5천3백세대의 아파트를 지어 한달 만에 전 량을 분양한 한일합섬은 13만평에 이르는 마산공장 부지가 지난 여름 공 장용지에서 주거, 상업용지로 용도 변경이 허가됨에 따라 곧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대구 검단동의 6만8천평에 이르는 공장부지도 인근지역에 28만 평의 유통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물류단지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가 6백억∼7백억원대의 수원의 상업용지 1만평은 매각한다.

한일합섬쪽은 패션브랜드 사업과 의약산업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윈디, 발도 등 현재 보유하고 있는 7개 의류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올 한 해만 세계 17개국에서 2백만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올린 프로스펙스를 국 제적인 브랜드로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다. 또 지난 91년 설립한 한효과학 기술원이 94년 4월 개발해 현재 임상실험중인 차세대 항암제(종양괴사인 자 알파뮤테인 M35)가 상용화될 경우 2002년에는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이나 패션, 의약산업이 사업다각화를 위한 축이라면 새로 나온 인견 섬유인 ‘코셀’ 생산계획은 한일합섬이 섬유업계의 원조로서 다시한번 도약을 꿈꾸는 회심의 카드다. 코셀은 기존의 비스코스 레이온이 물에 약 하고, 공해를 유발하는 단점을 극복하고, 촉감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도는 기존 레이온의 2배나 되는, 물세탁이 가능한 차세대 섬유다. 현재 영국의 코틀즈가 독점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3년 한국과학 기술원 이화섭 박사팀이 개발해 현재 한일합섬이 시제품을 준비중이며, 9 5년 9월 과학기술처에 의해 G7과제로 선정됐다. 한일쪽은 “천연섬유의 생산이 제한돼 있는 만큼 2000년경에는 세계시장 규모가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98년 8백억원을 투자해 마산에 연산 2만t 규모의 생 산시설을 지을 예정이다.

한편, 지난 95년부터 흑자전환돼 안정세를 되찾은 국제상사는 첨단전자산 업에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국제상사는 지난 89년부터 그동안 모두 1천5 백억원을 투자해 전자산업을 육성해왔다. 지난 94년에는 미국의 ADX사와 공동으로 갈륨비소 반도체분야의 HBT(이형접합바이오폴라 트랜지스터)를 개발했으며, 내년부터는 통신설비 개발에도 착수한다.


“우성인수 포기하길 잘했다”

김중원 회장은 지난 95년4월 경남모직, 부국증권, 한효개발, 한효건설 등 4개 계열사를 김중건씨 등 3명의 동생에게 넘겨줌으로써 분가를 완료했다 . 또 연합물산, 한일투금, 신라금고를 매각해 모두 15개이던 계열사를 7 개로 대폭 줄여 몸집을 가볍게 했다. 그룹 기조실 관계자는 “한일합섬도 원료값 하락으로 수지가 호전되고 있는 만큼, 유휴부동산 매각 등으로 차 입금을 상환해 금융비용 부담을 줄인다면 이르면 올해부터 흑자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라며 2000년까지는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한 일그룹의 부채는 지난 6월 말 현재 2조2천억원으로, 금융기관부채는 1조6 천5백억원(제2금융권은 1천7백억원) 정도로 전해졌다.

한때 우성건설을 인수해, 다시 한번 재계 10위권으로 대도약을 꿈꿨던 한 일그룹은 이제는 그런 꿈은 아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룹쪽은 우성 인수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서는, 우성 경영진의 입장을 고려해서인지 말 을 아끼고 있다. 당시 채권단이 인수조건을 1차 양보함에 따라 특혜설이 나돈 데 대해서도 “채권단이 당시 우리가 원하던 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 에 넘겨준다 해도 지금 사려고 나서는 곳이 없지 않느냐”며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재계에서는 그러나 “한일이 그때 우성 인수를 포기하지 않았 더라면, 요즘같은 상황에서 과연 그룹이 무사했을까?”라고 반문하는 이 들이 많다. 어쨌든 국제그룹 인수로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아온 한일이 이 번에 우성 인수를 포기한 것은 훗날 그룹의 재도약을 기약하기 위해 결국 잘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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