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
(사진/국내 가요시장에서 록의 가능성을 보여준 넥스트. 하지만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넥스트(N.EX.T-New Experiment Team)가 해산한다. 갑작스럽다. 넥스트는 11월7일 기자회견을 통해 해산 이유로 “음악적으로 더 올라갈 데가 없다 . 우리 밴드가 다른 언더밴드들의 방패막이가 되려했지만, 오히려 혼자만 튕겨나와 비난만 받고 있기에 차라리 이런 안정감에서 나와 굴곡과 변화 있는 삶 속에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발전적 해산을 함으로써 다른 록밴드들에게 또하나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알 듯 모를 듯한 해산 의 변(辯)을 밝혔다. 그리고 12월6일부터 8개도시 순회공연을 갖고, 12월 31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의 마지막 콘서트(문의 02-783-4083)를 끝으 로 무대에서 사라진다.
팬클럽 10년 지속… 음반 50만장은 기본
넥스트는 90년대 우리 대중음악 지도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외형으로는 ‘댄스음악이 판치는 국내 가요시장에 록음악의 가능성을 보 여준, 대중적 흥행에 성공한 유일한 록밴드’, 그리고 그 안쪽에 기존 록 개념마저 거부하고, 메탈, 테크노, 사이키델릭, 펑크에 국악,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록장르를 접합·분해하는 끝없는 음악적 시도가 넥스 트를 더욱 넥스트답게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넥스트는 ‘보이지 않는 신 화’가 되어 있었다. 넥스트는 ‘제왕’의 풍취를 묘하게 풍겼고, 콘서트 장에서 접하는 넥스트의 팬들은 리더 신해철의 지시에 똑같은 몸동작을 따라할 정도로 넥스트에 함몰됐었다. 그래서 종종 넥스트의 콘서트는 ‘ 나치 전당대회’, 신해철은 ‘교주’, 넥스트팬은 ‘이교도 컬트집단’이 라는 비아냥을 받기까지도 했다.
넥스트의 팬들은 기획사에서 모집, 관리하는 기존 팬클럽과는 달리 ‘무 한궤도’시절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신해철 팬들이 자연스럽게 넥스 트로 이어지고,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점점 몸집이 불어나 조직화됐다. 이런 형태의 팬클럽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넥스트가 거의 유이(有二) 하다. 여러 개의 넥스트 팬클럽은 연합체 과정을 거쳐 지난 7월 ‘넥서스 ’(Nexus, N.EX.T Utopia Saints)로 통합했다. 현재 거품회원을 빼고 1천 4백20명이 활동중이다. 여기에 몇몇 통신상의 넥스트 팬클럽은 별도로 존 재한다. 넥스트가 20만의 기존 팬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을 더욱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음반시장에서다. 넥스트 음반은 출시 며칠 만에 몇만장이 팔려나간다. 김건모나 신승훈처럼 1백만을 호가하진 않지만, 넥스트 정규 음반은 각각 50만∼70만장이라는 록밴드로서는 초유의 실적을 올렸고, 3 장의 라이브음반은 모두 20만장을 넘어서면서 국내 라이브음반 판매량을 음반출시 때마다 경신하고 있다.
방송출연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콘서트마저도 인색한 넥스트는 보통 겨울 한차례의 전국 투어콘서트로 팬들을 만날 뿐이다. 그래서 넥스트 공연장 은 항상 미어터진다. 초대권을 발매하지 않는 유료공연, 스폰서 없이 입 장료 수입만으로 공연을 만드는 국내 유일의 케이스다. 오빠부대의 함성 속에서도 예외적으로 남성팬들의 자리가 많고, 10대부터 30대까지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존재한다는 것도 넥스트의 가치를 높여준다. TV출 연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음반판매와 드문 콘서트만으로 이 정도의 폭발 적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일반도식에선 기적에 가 깝다. 그만큼 넥스트의 음악은 강렬하다.
록음악에 뿌리두고 파격적 실험
넥스트의 맹아(萌芽)는 88년 대학가요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서강 대 철학과 2학년, 무한궤도의 신해철은 <그대에게>로 대상을 차지하면서 세상에 등장한다. 더벅머리에 너무도 풋풋한 앳된 모습의 신해철을 기억 하는가? 당시 그의 노래는 록장르였지만, <나 어떡해>에 탯줄이 연결된, 캠퍼스록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노랫말도 “이 세상이 끝나는 날 까지 나는 그대를 사랑하겠어요”라는 투의 건전한 사랑노래였다. 90년 솔로로 데뷔한 신해철은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째즈카페> 등 2장의 앨범을 내놓았는데, 이때 신해철은 발라드 가수였다. 이때도 <안녕> 등에 서 보여주듯, 냉소적인 노랫말과 당시로는 파격이었던 영어랩을 시도하는 등 나름의 실험정신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신해철은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서 1위를 하고, 10대가수상을 수상하고, 곱상한 외모에 수많은 오빠부대 를 몰고다니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저한 대중가수였다. 그러나 92년 이동규·정기송과 함께 그룹 넥스트를 결성하면서 신해철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소비되는 가수가 아닌, 생산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넥스트의 역사가 시작된다.
넥스트는 1집
넥스트는 강한 록을 근저로 하고 있지만, 신시사이저의 다양한 활용과 기
타리프의 화려함, 그리고 멜로디 라인을 강조하는 등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형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화려하다. 그런데 넥스트는
추종세력이 많은 반면, 비토 세력 또한 만만치 않다. 이는 “너무 잘난
척한다”는 투의 신해철 개인 캐릭터에 근거한 비합리적 비난이 많지만,
상당수 록마니아들이 넥스트를 싫어한다는 것은 넥스트 음악이 지닌 당연
한 귀결일 수도 있다. 그 이면에는 정통(?)록이 아닌 넥스트가 한국록을
상징하는 듯한 데 대한 록마니아들의 순결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아이돌 스타로서의 엘리트 길을 밟은 출신성분의 원죄(?), 뜨거운
가슴보단 차가운 두뇌가 먼저 느껴지는 신해철의 곡, 철학적이고 사색적
이라고 하지만 반면 지나치게 자아에 빠져 있는 듯한 노랫말 등이 매를
맞았다. 그리고 매는 무엇보다 서구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의 완벽한 보컬
에 비해 어딘가 아쉬운 신해철의 보컬에 특히 집중됐다. 보컬에 대해 변
호를 하자면, 저음부분에서 독특한 전달력을 지닌 신해철의 음색과 카리
스마를 신해철 아닌 누군가가 대신하긴 가능하지 않을 듯싶다. 신해철은
또 부단한 노력으로 보컬능력도 매번 일취월장하는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넥스트의 탁월한 음악성과는 별도로 넥스트가 우리 대중음악에 어
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에선 의심할 구석이 많다. 국내 최고 록밴드
넥스트의 해산은 의외로 조용했다. 결론적으로, 넥스트는 그들이 머금은
인기에 비해 우리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볼 수밖
엔 없다. ‘언더와 오버를 잇는 가교구실을 했다’는 말은 넥스트에겐 전
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넥스트는 철저하게 독보적인 존재였기 때문이
다. 한마디로 넥스트에겐 대표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음악이 현재
한국 록음악의 두 가지 큰 흐름인 메탈과 펑크·얼터너티브를 벗어나 한
장르로 특징지울 수 없는 넥스트만의 음악이라는 점도 큰 이유이기도 하
다. 대중성 면에서도 넥스트가 많은 팬을 확보하긴 했지만, 마니아적 특
성이 강해 넥스트 팬들과 기존 팬들과의 괴리가 다른 어느 그룹보다 컸다
. 상투적 비교지만, 이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대중음악 평론가 신현준씨는 “넥스트의 음악은 탐미적이다. 이는 80년대
까지 유행했던 록의 장르이지만 90년대적 감성은 아니다. 넥스트의 음악
은 스필버그영화를 본 것처럼 꽉 찬 느낌이지만,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점이 있다. 그래서 들을 때는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듣고 나면 여백이 없
고 허전한 느낌이 있다. 넥스트의 능력과 에너지가 뛰어났지만, 그는 결
국 신(scene)을 만드는 리더가 되진 못했다”고 말했다.
넥스트는 넥스트는 해산일 뿐이지, 은퇴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신
해철을 비롯한 넥스트 일원들이 언젠가 다시 또다른 팀(넥스트2?)을 이뤄
또다른 실험을 시도할지 모른다. 넥스트는 그들이 누린 인기만큼 다음(넥
스트) 세대 대중음악에 대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빚은 아직 많이 남
아 있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공중분해 위기 딛고 ‘신해철 사단’ 구축
은퇴 아닌 해산? 지금은 할 일이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