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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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0년 광주'는 소박한 교사를 꿈꾸던 임철우의 문학적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봄날>에서 광주의 진실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광주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군을 제대하고 복학한 대학 4학년생이었 다. 시위대를 따라다니며 몇 개의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도청 사수’ 를 호소하는 전옥주의 방송과 그 도청을 유린하는 공수부대의 총소리가 들리던 결정적인 순간에는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며 울었을 뿐이었 다. 그 날의 분노와 수치와 슬픔이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
소설가 임철우(41)씨가 80년 5월 광주의 학살과 저항을 정면으로 그린 소 설 <봄날>(문학과지성사)의 첫 권을 내놓았다. 2백자 원고지로 7천장이 조금 넘을 이 작품은 내년 1월까지 모두 5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81년 등단한 뒤 분단문제와 광주의 아픔을 집중적으로 그려 온 임씨에게 <봄날 >은 ‘광주 소설’의 결정판이 되는 셈이다. “이 작품에서 ‘광주’에 관한 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처럼 규모있게, 본격 적으로 광주를 그린 소설을 다시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봄날>은 각각 시민군과 공수부대원, 대학생인 세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 세우고, 주변 인물들을 배치해 광주학살의 총체적인 면모를 그리고자 한 다. 5월16일부터 27일 아침까지의 열흘 남짓한, 짧은 시간을 7천여 장의 분량에 담았으니 소설은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좇듯이 치밀하고 꼼꼼하다 .
“‘광주’의 진상에 대해서는 그동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는 셈이 다. 자료도 부족하지는 않다. 게다가 당시 나는 현장에 있으면서 하루하 루 상황과 분위기를 메모해 두었다. 그 메모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임철우씨는 소박한 교사를 꿈꾸었던 자신이 광주학살을 계기로 문학에 투 신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광주’는 그의 문학의 출발점이라고도 했다. “<봄날>을 실제로 쓰기는 10년 전부터였지만, 실은 80년 그 때부터 쓰기 시작한 셈”이라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고 현장을 겪은 이들은 거의 모두가 ‘광주’에 대해 이중의 심리를 지니고 있다. 피해자로서의 분노 와 아픔,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엔 몸을 빼서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이 그것 이다. 내게 조금이라도 문학적 재능이 있다면 ‘광주’ 얘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임씨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스스로 무당이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그날 죽어간 이들이 그를 통해 자신들의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 았다고. “글을 쓰는 동안 당시의 끔찍한 사진들을 사방 벽에 붙여 두고 스스로를 독려했다”면서 “글이 막힐 때면 망월동에 누운 고인들을 찾아 가 ‘내게 힘을 주십시오’라며 빌었다”고도 밝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는, 그것도 억울하고도 처참하게 죽는 얘기뿐이기 때문에 쓰면서도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 당시의 진실을 전해야겠다는 각오로 고통과 슬픔을 참아가면서 썼다. 때로는 새 벽 세시쯤 어떤 대목을 쓰고는 스스로 감정에 북받쳐 자는 아내를 깨워 읽혔다. 아내가 원고를 읽으면서 울기라도 하면 나는 ‘제대로 썼구나’ 하는 생각에서 조금 흡족해하기도 했다.”
임철우씨는 ‘광주’의 진실이 제대로 인식되어 있지도 않은 가운데 야당 대통령 후보가 학살 책임자들의 조건없는 사면을 약속하는 세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했다. 한신대 문창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학생들이 광 주를 3·1운동만큼이나 먼 옛일로 생각하는 데 놀람과 책임감을 함께 느 낀다”면서 “이 작품에서만큼은 문학적 평가보다 진실의 전달이 더 중요 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