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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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콩나물이 듬뿍 들어간 전주 콩나물해장국.)
전주의 대표적인 음식을 꼽으라면 대부분 비빔밥과 콩나물해장국을 꼽거 나, 아니면 한정식과 콩나물해장국이라고 답한다. 어떻게 꼽든 콩나물해 장국은 꼭 들어간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두가지를 꼽든, 세가지를 꼽든 두번째는 콩나물해장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콩나물해장국은 전주를 대 표하는 2대 먹거리 가운데 하나라는 데 이론이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콩 나물국 또는 콩나물해장국은 전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내력있는 음식이다.
전주 시내에는 이름난 콩나물해장국집만도 10여곳에 이른다. 대부분이 문 을 연 지 10년을 헤아린다. 40∼50년을 이어오는 곳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내력이 오랜 집이 50년된 고사동 ‘삼백집’이다. 전 주인인 할머니 가 살아있을 때는 ‘욕쟁이 할머니집’으로 더 유명했다. 어찌나 욕을 잘 하고, 그러면서도 그 욕이 싫게 들리지 않아, 술꾼들은 오히려 “에라 처 묵으라”며 내뱉는 욕 한마디를 들어야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풀린다며 좋 아했다. 이글거리는 연탄불에 해장국 뚝배기를 올려놓고 끓여내면서, 술 꾼들 것은 국물에 모주를 한컵 붓고, 누런 설탕을 푹 퍼넣어 한번 더 끓 여주었다. 이때 거품이 버글버글 솟아오르면 입으로 훅훅 불어내며 끓였 다. 어쩌다 침이 튄다고 타박이라도 하면 “안적 침 튀어서 병들어 죽은 놈 없응게”라며 퉁명스레 맞받아쳐 좌중을 웃겼다. 생전의 박정희 대통 령이 찾았을 때도 “꼭 박정희처럼 생겼네”라며 “달걀이나 하나 더 처 묵거라”고 욕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오기도 한다.
지금은 새 주인 조정래(52)씨가 넘겨받아 대물림을 하고 있다. 손님들도 여전히 할머니 때부터 대를 이어온다. 이른 새벽 5시부터 문을 여는 삼백 집은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 새벽 5시부터 아침 9시까지다. 술꾼들을 비롯해 전날 전주를 찾은 외지 사람들, 출근길 직장인, 자녀를 동반한 가 족들이 몰려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틈이 웬만해 보이면 꾸벅 인사 하고 비집고 들어앉는 게 수다. 이때는 삼백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도 차들이 몰려든다. 삼백집을 물으면 차들이 가는 골목을 따라가라고 일러 준다.
아직은 값도 크게 부담이 없다. 얼마 전부터 5백원이 올라 3천5백원을 받 는다. 전주 사람들은 입맛이 없거나 몸이 찌뿌드드해도 삼백집을 찾고, 아침에 수돗물이 안 나와 밥짓기가 뭐해도 삼백집을 찾는다고 한다. 이렇 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줄지어 찾는 해장국집도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 들다.
불만 가스불로 바뀌었을 뿐, 뚝배기에 밥을 한술 넣고 금방 데쳐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나물을 얹은 다음, 육수를 붓고 새우젖으로 간을 맞추고 파, 마늘 다진 것을 넣고 한번 넘칠 정도로 확 끓이는 것은 여전하다. 이 때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담아서 1년을 묵힌 썰이김치라는 걸 다져넣는 데, 썰이김치를 담그는 방법이나 양념이 노하우다. 상에 내기 전 달걀을 톡 깨서 넣고, 볶은 깨를 살짝 얹어준다. 고기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국물이 시원하고 뒷맛이 달다. 상에 나와서도 버글버글 끓는 국은 속을 화끈하게 달구어 땀을 솟게 한다.
요즘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옛날처럼 모주를 넣고 끓여내 지 못한다. 그 대신 모주를 따로 끓여 한잔에 1천원씩 낸다. 한모금 마시 고 나머지는 국물에 부으면 국물이 달착지근해지면서 옛맛이 살아난다. 전주 콩나물해장국은 이처럼 모주와 깍두기 국물 등을 넣어 걸쭉하고 얼 큰하게 먹어야 더욱 제맛이 난다.
다른 집들은 주방을 새로 꾸미고, 요즘 말로 인테리어를 새롭게 해 단체 관광객들과 대통령 후보들까지 받는다지만, 삼백집만은 옛모습 그대로 변 한 데가 없다. 이것이 흠인지 자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주 사람들은 삼 백집으로 모시고 높은 사람들과 외지 사람들은 새로 꾸민 집으로 모신다 는 게 한 택시기사의 설명이다.
콩나물 덕분에 해장국도 있다
전주의 콩나물비빔밥과 콩나물해장국이 그토록 유명하게 된 것은 다름아 닌 전주 콩나물 덕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역시 콩나물해장국으로 이름 난 경남 진주 사람들도 똑같이 한다. 지역은 다르지만 좋은 콩나물이 있 어 맛좋은 콩나물해장국이 생겨났다는 얘기다.
전주는 지리적으로 한쪽은 김제와 군산으로 이어지는 호남평야와 서해바 다, 또 한쪽은 진안과 무주로 이어지는 산간지대, 그리고 다른 한쪽은 임 실과 남원으로 뻗은 비옥한 들밭을 거느린다. 이곳에서 나는 질좋은 먹거 리들이 전주의 맛을 뒷받침하고, 특히 산간에서 나는 여문 콩은 전주 콩 나물을 길러내는 주역이다. 이른 새벽 차에 실려오는 노란 콩나물 시루를 보면 입맛이 더욱 새롭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