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연재

월드컵의 진실 11/갈수록 거센 ‘검은 돌풍’

(사진/국가대항전에서 열띤 응원을 하는 가나의 응원단. 아프리카의 검은 사자들이 이제 월드컵 우승을 넘보고 있다.)

지금까지 15차례 펼쳐진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는 브라질(4)을 비롯해, 독일(3), 이탈리아(3), 아르헨티나(2), 우루과이(2), 영국(1) 등 6개국 뿐이다. 이들은 모두 유럽과 남미, 두 대륙의 나라다. 인구가 적은 오스 트레일리아는 그렇다치더라도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에서는 월드컵 우승 을 차지한 나라가 없다.

그러나 요즘 들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세의 활약이 눈부시다. 아프리카팀 이 월드컵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것은 두번째 대회인 34년 이탈리아월드 컵이었다. 16개팀이 토너먼트로 우승을 가린 이 대회에서 아프리카 국가 로서는 첫 출전한 이집트가 헝가리와 불꽃 튀기는 격전 끝에 2-4로 져서 탈락했으나, 막판까지 헝가리를 괴롭혀 주목을 끌었다.

서독 꺾은 카메룬, 유럽 담합에 눈물

참가국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난 첫 대회인 82년 스페인월드컵에 서는 아프리카의 카메룬과 알제리가 출전했다. 모두 비록 1차리그에서 아 깝게 탈락했으나 뛰어난 플레이로 유럽과 남미 강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1차리그 1조에서 아프리카의 ‘검은 사자’라 불린 카메룬은 이탈리아와 1-1, 폴란드와 0-0, 페루와 0-0으로 3경기 모두를 비겼다. 이탈리아와 득 실점차까지 같았으나 총득점에서 1점이 모자라 조2위를 빼앗겨 탈락하고 말았다. 아프리카의 팀답게 무당의 굿으로 사기를 돋운 카메룬에 대항하 기 위해 페루도 아마존의 무당을 동원했다니, 이기기 위해서라면 사람들 은 무슨 짓이든지 서슴지 않나보다.

1차리그 2조에서는 프랑스축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알제리가 첫 경기에 서 서독을 2-1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만약 알제리에 진다면 당장 기 차를 타고 서독으로 돌아가겠다”고 큰소리쳤던 서독의 데아발 감독은 머 리를 싸맸고, 알제리의 메쿨피 감독은 “알제리 축구 최고의 날”이라고 뽐냈다.

그러나 알제리는 2차리그에는 오르지 못했다. 알제리는 오스트리아에 0-2 로 졌으나 칠레에는 3-2로 이겨 2승1패가 됐다. 알제리에 진 서독은 칠레 를 4-1로 대파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오스트리아를 이기지 못하면 2차리 그에 오르지 못하는 궁지에 몰렸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칠레와 알제리를 이겨 2승을 거둔 상태여서 대량실점으로 지지 않는다면 2차리그에 오를 수 있는 유리한 처지였다.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서독이 전반 10분에 1점을 올리자, 두팀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서독이 1-0으로 이김으로써 오스트리아와 나란히 2차리그에 진출했고, 알 제리는 탈락하고 말았다.

프랑스의 이달고 감독은 하도 기가 막혔던지 이 경기를 “노벨평화상감 경기”라고 비꼬았다. 관중석에서는 두팀을 향해 비난과 함께 빈깡통이 날아들었다. 많은 오스트리아 선수들이 서독 프로축구에서 뛰고 있던 탓 도 있어, 이 경기는 알제리를 떨어뜨리고 오스트리아와 서독이 사이좋게 2차리그에 오르기 위한 ‘담합’이라고 많은 팬들이 분개했다. 이 결과를 놓고 ‘독일의 수치’라고 항의하며 자살한 독일인이 나왔을 정도다. 그 러나 “서독-오스트리아전은 담합으로 이루어진 부정한 경기였다”는 알 제리의 국제축구연맹(FIFA) 제소는 각하됐다.

카메룬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였다. 1차 리그 B조의 카메룬은 첫 경기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인 아르헨티나와 대결 해, 2명이 퇴장당하는 격렬한 플레이를 펼친 끝에 오맘이 결승골을 올려 1-0으로 이겼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이 소식을 전하면 서 아나운서가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라고 외쳤다. 카메룬은 두 번째 경기에서 루마니아마저 2-1로 꺾어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대통령 의 명령으로 대표팀에 복귀한 38세의 밀라는 이를 “역사적인 승리”라며 기뻐했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소련에 0-4로 졌다.

16강전에서 카메룬은 콜롬비아와 연장전 끝에 오맘의 절묘한 패스를 받은 밀라가 결승골을 넣어 2-1로 승리했다. 아프리카팀으로서는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8강에 드는 순간이었다. 8강전에서도 카메룬은 잘 싸웠다. 영국 과 불을 뿜는 접전을 벌였으나 아깝게도 2-3으로 졌다. 카메룬의 빼어난 활약은 FIFA로 하여금 94년 미국대회부터 아프리카의 본선진출권 티켓을 2장에서 3장으로 늘리도록 만들었다.

나이지리아, 아프리카 축구 이끈다

1차리그 F조의 이집트도 잘 싸웠다. 이집트는 강호 네덜란드와 1-1, 아일 랜드와 0-0으로 비겼으나 영국에 0-1로 지는 바람에 16강 진입에는 실패 했다. 이집트에서는 네덜란드전에서 동점골을 올린 순간 너무나 기쁜 나 머지 충격으로 죽은 사람이 있었고, 영국에 져서 16강 진입이 좌절되자 슬픔을 견디다못해 자살한 사람이 나왔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수퍼 이글’(Super Eagle)이라 불린 나이지리아 가 아르헨티나에 1-2로 졌으나 불가리아를 3-0, 그리스를 2-0으로 격파하 고 16강전에 진출했다. 이 대회에서 준우승한 이탈리아는 최고 스트리이 커 밧조가 아니었으면 16강전에서 나이지리아에 졌을지도 모른다. 나이지 리아는 암니케가 선제골을 올렸으나 밧조가 2점을 올리는 바람에 역전패 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축구의 위력을 또다시 온세계에 보여 주었다. 어쩌면 월드컵에서 유럽과 남미를 가장 먼저 위협하게될 대륙은 아프리카일지도 모른다.

고두현/ 스포츠 평론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