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세계경찰 미국 사막에 갇히다

(사진/걸프만으로 가기 위해 지난 11월16일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유럽과 아랍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군사적 보복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공격을 위한 수순밟기로 이해되던 이라크 위기의 기류가 바뀌 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지중해 주둔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걸 프해역으로 출동시키고, 이라크는 결사항전을 외치며 ‘인간방패’를 결 집시키는 등 충돌 직전의 상황으로 치달아왔다. 그것이 돌연 외교적 해결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짐은 이번 사태의 ‘주범’들 행동에 서 속속 감지되고 있다.


아랍국가들 “전략적 균형 깨진다” 공격 반대

이라크는 지난 11월16일 미국과 군사적 대결을 원치 않는다는 각의 결정 을 발표한 데 이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공히 참여하는 무기사찰단 이 구성된다면 미국인 사찰요원의 재입국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랍 동조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중동을 방문중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이날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러시아와 프랑스의 중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군사행동에 강하게 반발해 온 이들 두 국가에 대한 미국의 협조 요청은 군사행동을 위한 ‘명분쌓기’라는 해석의 여지가 없 는 것은 아니지만 강경일변도의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의 변화를 시사한 점에서 주목된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이라크가 사찰단에 대한 기본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채 외교적 해결쪽으로 내몰 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인 사찰요원 추방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 은 미국이 택할 수 있는 정책선택의 폭이 지난 91년 걸프전사태와는 달리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는 데 기인한다. 사실 어느 대안도 결코 모양새가 좋아보이지 않았다는 게 미국의 한계다.

군사적 보복의 경우, 미국은 유럽과 아랍의 동맹국들의 강력 반대에 직면 했다. 또 군사적 공격으로 이라크의 안보리 결의 준수를 강제해 낼 수 있 을지도 미지수다. 또 후세인 축출이라는 정치적 전략이 함께 하지 않는 군사공격은 별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허울뿐인 이 라크 내 야당을 후원하거나, 사실상 와해된 망명정부를 지원하는 것 따위 는 무의미하다. 후세인을 전범재판에 회부하기도 힘들다. 그런 현실에서 미 행정부 내 군사행동 반대론자들의 계속된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군사행동 성공의 관건인 아랍국의 동조도 91년 걸프전 때와는 전혀 달랐 다. 이라크의 침공을 받았던 쿠웨이트마저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에 반 대하고 있는 형편이다. 당시 이라크의 지역강대국화를 우려했던 주변 아 랍국들은 이젠 이라크의 약화로 이란, 터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전략 적 균형이 붕괴될까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년 동안 이라크 경제에 1천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희생을 강 요한 유엔의 경제제재에 대한 아랍권의 동정심도 한몫했다. 또 팔레스타 인과의 오슬로자치협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이나 이라크의 북 부지역을 안방 드나들 듯하며 대쿠르드족 군사작전을 벌이는 터키의 경우 를 비교해 볼 때 유독 이라크에 가해지는 압박은 아랍인들의 눈에 지나친 것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걸프전 이후 대중동정책의 축으로 추진해온 이라크와 이란에 대한 이중봉쇄전략이 파산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이라크 ‘벼랑 끝 외교’ 경제제재 부당 홍보

그렇다고 외교적 해결이 만만한 것도 아니다. 이번 사태는 지난 10월29일 이라크가 미국인 사찰요원의 추방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비 록 이라크의 행동을 비난하는 추가제재안이 안보리에서 통과됐고, 안보리 비난성명이 발표되었지만 이라크에 사찰단의 원상회복을 강제하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이라크 입장에서 볼 때, 군사적 긴장의 이면에서 지난 6년 동안 눈엣가시 였던 유엔사찰단을 사실상 추방함으로써 단기적으로 전술상 승리를 거뒀 다. 앞으로 무기사찰단의 원상회복을 겨냥한 외교전이 진행될 경우 이라 크는 사찰단의 재입국을 둘러싼 협상에서 오히려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 는 여지가 생긴 셈이다.

전쟁 직전 상황까지 몰아 갔다 후퇴하는 이라크 특유의 ‘벼랑 끝 외교’ 는 해제의 기약이 없는 경제제재의 부당성의 홍보라는 목표도 달성했다. 그러나 미국이 군사적 해법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점에서 걸프를 둘러싼 긴장은 끝나지 않았다.

류재훈 기자/ 한겨레 국제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7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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