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진단

“검은 세력이 농간 부린다”

11월 들어 한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전세계 언론들의 보도가 쏟아지고 있 다. 11월 들어서만 지난 3일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을 시작으로 5일 미국의 경제전문통신사인 <브룸버그>, 6일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 다시 7일에는 <브룸버그>가 각각 한국 금융위기를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외환당국은 이들 보도가 사실을 왜곡해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지난 7일 <브룸버그>가 △한국의 외채는 모두 1천1 백억달러로 이중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부채가 8백억달러에 이르며 △한은 외환보유고가 공식적으로 3백5억달러로 발표되었지만 실제는 1백5 0억달러로 추정된다고 보도한 것은 “새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한 은의 한 간부는 “우리나라 총외채 가운데 단기부채 비중은 50% 수준으로 통상 70∼80% 수준에 이르는 선진국보다 훨씬 양호하다”면서 “외환보유 고도 시장개입을 하다보면 일시적으로 3백억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있지만 1백50억달러 운운은 명백한 음해행위”라고 말했다. 재경원 고위 관계자도 “한국 정부가 타이나 인도네시아처럼 세계통화기금(IMF)에 긴 급구제자금을 요청할 것이라는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의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이런 악성보도가 정부의 외환관리능력에 대한 불신감 과 해외투자가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급기야 지난 8일 우리 경제에 대해 악성 추측보도를 한 해당 외국언론사에 반박문 게재를 강력히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재경원 금융정책실의 한 국장은 “최근 들어 수출을 중심으로 국내 경기가 회복 세를 보이는 등 경제의 기본이 건실해져 가는데 이런 부분은 국내외를 막 론하고 전체 언론이 외면한 채 어렵다는 사실만 되풀이해서 보도하고 있 다”고 안타까워 했다.

외환당국은 환투기세력도 국내 외환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본다. 외환 당국이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싱가포르와 홍콩의 역외 선물환시장(NDF). 환투기세력들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싼값으로 산 뒤 이를 역외 선 물환시장에서 비싸게 되팔아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NDF거래는 선 물환의 일종이나 현물의 인도없이 미래 결제일에 당초 약정된 환율과 실 제 환율과의 차이만큼을 원화가 아닌 달러로 환산해 결제한다. 따라서 환 율 예상만 정확하다면 큰 자금부담없이 환차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 특징 이다. 예를 들어 A기관이 달러당 1천1백원의 계약선물환율로 3개월 뒤에 B기관으로부터 1억달러를 사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하자. 먼저 환율이 올라 만기시에 1천2백원이 됐다고 하면 A기관은 달러당 1백원씩 남겨 결 국 9백80만달러의 환차익을 B기관으로부터 얻게 된다. 반대로 만기시의 환율이 1천원으로 떨어지면 A기관은 1천만달러의 환손실을 입게 된다. ND F시장에서 달러당 원화의 계약환율은 3개월물의 경우 지난 10월27일만 해 도 1천30∼1천60원이었으나 31일에는 1천80∼1천1백10원으로 오르더니 11 월 들어서는 더욱 급속하게 상승해 지난 7일에는 1천1백65원선에 이르고 있다. 외환당국의 한 간부는 “이들 환투기세력들은 향후 원화 환율이 더 올라야 이득을 얻게 되기 때문에 환율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해외 에서 계속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악성보도가 나오는 데는 이들 세력이 작 용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NDF시장의 환투기세 력을 뿌리뽑기 위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현행 외국환관리규정 상 내국인들의 경우 실수요에 기반하지 않고서 선물환거래를 할 수 없도 록 돼 있어 역외시장에서 NDF거래를 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를 색출하기 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외환 당국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은 물론 일부 대기업까지 해외 지점망 과 현지법인을 통해 NDF거래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으나 증거확보 에 애를 먹고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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