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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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대사의 마지막 금기 4·3항쟁. 유가족들은 희생자 명예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검찰은 지난 11월5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서준식(49)씨를 구속했다.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제주 4·3항쟁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를 상영한 것이 문 제가 됐다. 당국이 지난 10월3일 조기 폐막한 인권영화제에 뒤늦게 칼날 을 들이댄 표면적 이유는 <레드 헌트>의 이적성 혐의다. 이는 서울상영이 끝난 뒤인 인천에서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다. 인천인권영화제도 관계당국 의 탄압으로 일찍 막을 내렸지만, <레드 헌트>를 상영하지 않았던 수원, 안양에서는 정상적으로 영화제를 꾸려나갈 수 있었다. 애초 인권영화제에 족쇄를 채우려 했던 이유가 심의거부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성격이 조금 달라지는 형국이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서준식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 의로 구속하기 위한 수순이란 판단도 짙다. 전주, 군산, 제주 등에선 지 역상영을 앞두고 영화제 개최쪽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들 사이에 긴장이 감돈다.
객관적 자료에 근거… 생존자 증언도
하늬영상의 <레드 헌트>(감독 조성봉·83분)는 제주 4·3항쟁을 다룬 다 큐멘터리로 96년 12월부터 97년 2월까지 제주에서 촬영했다. 애초 지난 5 월 제2회 서울 다큐멘터리 영상제의 본선경쟁 출품작이었으나 주최쪽에 의해 상영이 취소된 작품으로 인권영화제에서 가장 관객이 많이 몰린 작 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92년 북제주군에서 발견된 다랑쉬굴에서 4·3항쟁 희생자 유골이 대량으로 나왔으나, 곧바로 굴 입구가 콘크리트로 봉쇄돼 버리는 화면부터 시작한다.
<레드 헌트>는 제주 4·3항쟁의 본질을 드러 내기 위해 미군정 보고서, 신문보도, 연구자들의 학술적 설명, 목격자 인 터뷰, 자료화면 등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그리하여 제주 4·3항쟁이 미국 의 한반도전략, 청산되지 못한 친일세력의 발호, 이승만 정권에 의한 세 력재편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생존 노인들의 여전히 생생한 회상이 주는 질감이나 미군정 보고서의 적절한 인용이 주는 객관성은 인상적이다.
(사진/<레드 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서준식씨. )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일괄심의를 통 과해 무리없이 공개돼 이틀 동안 상영됐다. 더욱이 당시 3당 총재를 포함 해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원래 국가보안법 잣대가 고무줄이긴 하지만 당시 당국은 이를 문제삼지 않다가, 뒤늦게 이적성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민청학련 사건, 광주민중항쟁 등 70∼80년대 이른바 ‘빨갱이’ 로 몰렸던 과거 사건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있지만, 유독 제주 4·3만은 여전히 요지부동인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레드 헌트>는 1948년 4월3일 이후 7만 제주도민 가운데 최소 3만여명이 죽어간 이유, 그리고 그 문제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이유 등을 거론한다. 94∼97년 제주의회 특별위원회 조사자료도 등장하는데, 확인된 사망자 1만4천5백4명 중 ‘10세 이하 6백49, 60세 이상 6백73’이라는 대 목에선 가슴이 쿡 메인다. 사학과 교수들의 당시 정국설명, 제민일보 4· 3취재팀의 해설 등으로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생존자 증언들을 잘 추스려 내기도 한다.
<레드 헌트>는 47년 3·1절 기념식날 군중들과 구경꾼을 향한 난데없는 경찰 총격으로 촉발되기 시작한 3·1발포사건, 총파업, 경찰의 모리행위 등 제주주민의 수탈상황을 쫓는다. 47년 5월1일 경찰지시로 서북청년단에 의한 오라리 방화사건, 48년 10월 해안봉쇄, 그리고 48년 12월에서 49년 3월까지의 초토화 작전으로 이어진다. 당시 자료사진을 통해 비쳐지는 불 타는 초가집, 겁먹은 젖먹이의 휑한 눈이 깔린다. 카메라는 남제주군 안 덕면 동광리의 헛묘(유골이 없는 묘), 경찰 방화에 의해 사라진 마을터, 주민들이 몸을 숨긴 좁은 동굴, 주민들이 몰살당한 정방폭포 등을 훑으며 그날을 재현한다. <레드 헌트>에 나오는 증언자들에 따르면, 산간마을 주 민들을 정방폭포 위에 늘어놓고, 부녀자들에게 죽창을 건네고 찌를 것을 명하고, 부모들의 처형을 앞에 둔 아이들에게 처형장면을 지켜보게 하고, 처녀들을 끌고와 강간한 뒤,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모두 죽여버리고. 당 시 제주는 인간의 땅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는 이 초토화 작전 이 한창이던 48년 12월1일 국가보안법을 공포한다. <레드 헌트>의 마지막 엔 4·3 항쟁이 지금까지 제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4·3 진압세력이 그 이후 계속 온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당시 4·3 토벌 대 수뇌부의 명단을 공개한다. 송요찬 9연대장(국무총리 역임), 서종철 9 연대 부연대장(국방장관 역임), 최난수 특별수사대 경감, 홍순봉 제주도 경찰국장, 김재능 서북청년단장 등. 그리고 영화는 제주 부녀자들의 구슬 픈 <이어도> 민요로 막을 내린다.
“억울한 세월, 목놓아 울지도 못하나”
제주 4·3항쟁이 영화로 등장한 건 <레드 헌트>가 처음이다. 조성봉 감독 은 4·3의 원인에 대해 “전세계적인 이데올로기 재편과정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정치적 이익이 일치되면서, 학살을 조장한 측면과 좌·우 익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뤘던 제주의 상황, 그리고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 과 제주에 대한 차별의식 등이 4·3의 근간을 이룬다”고 봤다. 4·3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4·3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려면 미국과 현 기득권층을 공격해야 한다. 게다가 이데올로기 문제까 지 맞물려 있다. 군부세력을 제거하고 정통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현 정 부가 광주문제의 진상에 접근하려 했던 의도에 비춰 제주문제는 그래서 더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명백한 학살행위만은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그때 남편을 잃고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한 할머니는 <레드 헌트>에서 “ 억울한 세월에 대해 목놓아 항변 한번 못했던 것이 한”이라고 울먹였다. <레드 헌트>는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주항 쟁을 자꾸 이야기하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니까.(이적성)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