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오

장 뤼크 고다르의 <미치광이 삐에로>의 한 대목. 주인공 페르난도가 영화 감독 새뮤얼 풀러에게 묻는다. “도대체 영화가 뭐죠?” 감독은 대답한다 . “영화는 전투와 같다. 그리고 사랑, 증오, 행동, 폭력, 죽음. 한마디 로 감정이다.”

고다르의 후계자 마티외 카소비츠는 이중 ‘증오’를 선택해 ‘전투’를 벌인다. 글자 하나만 바꿔 단편 <좀벌레 삐에로>를 만들기도 했다. 좀벌 레라니? 여기서부터 그가 선택한 방식은 고다르보다 한걸음 나아간다. ‘ 미쳐버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좀벌레라 욕하며, 세상을 향해 육두문자를 내뱉는 것. 그의 파격은 “F.U.C.K the Police”라는 랩 뮤직 구호 속에 마치 스파이크 리의 초기 영화들을 연상시키며 훨씬 더 빠르고, 속도감 있는 젊음을 분출한다. 이 급진적 경향을 넉넉히 담아내 는 카소비츠의 흑백화면은 이 점에서 공격적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 습을 노출시키고 싶어한다. 유대계 프랑스인 빈쯔, 아랍인 사이드, 흑인 권투 지망생 위베르. 이들을 대하는 시선에는 애정이 있긴 하나 달콤하지 만은 않다. 그들끼리도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서로 반목과 질시를 가 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곳은 인종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프랑스 방리유 지역. 여기서 다큐멘터리적인 기법과 MTV 기법을 혼합한 카메라는 마지막 순간까지 전복 의지를 담아낸다.

주인공들의 삶의 목표는 21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 이 지역에 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빈쯔는 총 한자루를 지닌 상태다. 이를 무기삼아 세 친구는 혼수상태에 빠진 친구 압델을 찾아가보고, 거리를 쏘다닌다. 경찰에 연행돼 고문도 당하고, 싸움도 벌이면서, 함께 방리유로 돌아오던 중 압델의 죽음을 접한다. 빈쯔의 행동이 불안하기만 한 위베르. 그는 현 실을 견디는 인물이다. 빈쯔는 총을 위베르에게 건네준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그들을 덮치고, 한 형사의 실수로 빈쯔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여 태 참고 있던 위베르가 총을 꺼내 경찰과 서로 머리를 겨눈다. 사이드는 고개를 수그린 상태. 주문처럼 대사가 흘러나온다. “여기까지는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우리는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착륙하는 거야.” 이어 검은 화면에 폭발하는 듯한 총성.

영화가 끝나는 지점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하나의 검은 블랙홀처럼 혼돈 의 상태일 뿐. 다소 늦게 도착한 감은 있지만 한해를 마감하는 의미심장 한, 영화다운 영화가 바로 <증오>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