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대중음악

70년대엔 그들이 있었다

(사진/여전히 낭랑한 음색과 넉넉함으로 김민기를 노래한 양희은.)

가수 양희은이 그의 음악스승(?) 김민기 헌정음반을 출반했다. <아침이슬 > <늙은 군인의 노래> <작은 연못> <친구> 등 김민기가 작곡한 수많은 노 래 중 ‘마음에 떨리는 곡’ 11곡을 양희은이 직접 골라 지금의 목소리로 불렀다. 음반제목은 <1997 아침이슬>.

클래식기타와 플루트, 오르간 연주와 남성 다성합창단의 코러스로 새롭게 편곡된 이 음반에서는 양희은의 변함없는 영롱한 음색과 함께 세월이 빚 은 여유와 관조의 넉넉함이 배어나온다.

방송녹음을 막 끝낸 양희은(45)을 기독교방송사 지하 커피숍에서 만났다. 약간 헐렁한 스웨터를 걸친 양희은은 옷차림처럼 편안히 맞아주었다. 그 는 “김민기의 아름다운 노래에 대한 경외의 작은 표현이자, 요즘처럼 노 래가 위로와 안식이 될 수 없는 시대에 김민기의 노래를 가슴깊이 숨겨둔 모든 분들께 그 변함없는 의리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라고 음 반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민기는 “내가 살아있는데…”라고 고사의 뜻을 비쳤을 뿐, 별 말이 없었다고 한다. 김민기다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양희은이 김민기를 처음 만난 건 70년 서울 YWCA의 청소년 찻집 ‘청개구 리’에서였다. 양희은은 재수생이었고, 김민기는 서울대(미대 회화과 69 학번) ‘도비두’(도깨비 두마리의 준말) 멤버로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친구 손에 이끌려 무대로 떠밀려진 양희은은 김민기의 반주에 맞춰 몇차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71년 2월, 대학(서강대 사학과)에 합격한 뒤, ‘청개구리’에서 친구들이 첫 콘서트를 마련해줬다. 콘서트의 기타 반주는 김민기가 맡았다. 71년 이야기를 하면서, “찻값이 1백원이었다” “셀로판지로 조명을 바꾸다 ‘앗 뜨거’ 하며, 손을 데기도 했다” 등 손짓을 해가며 말이 빨라지는 양희은의 눈빛은 열하홉살 그 시절로 돌아 가고 있었다.

이 콘서트로 인해, 음반취입 제의가 들어오자, 양희은은 김민기의 <아침 이슬>과 <그날>을 “부르고 싶다”고 했고, 김민기도 허락했다. 양희은의 집에서 연습을 하면서도, 김민기는 말이 없었다. 으레 있기 마련인 작곡 자의 주문도 전혀 없이. 양희은에게 김민기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큰산 이었다. 김민기에 “완전히 주눅든” 양희은은 “내가 잘하고 있나” 하 는 조마조마함 속에서도 김민기의 정서를 자신의 서정으로 또한번 바꿔갔 다. 71년 9월의 1집 <아침이슬>에 이어, 72년 2집 음반에도 김민기의 <작 은 연못> <백구> <서울로 가는 길> 등이 양희은의 목소리에 실렸다. 김민 기의 노래에 대해 양희은은 “그의 노래는 한편의 영화처럼 그림이 보여 요. 미대를 다닌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십분 살린 가사도 가슴에 와닿구요”라고 했다.

70년대 초반 대학생으로 함께했던 이들은 75년 <아침이슬> 등이 대거 금 지곡 리스트에 오르면서 헤어진다(?). 김민기는 현장, 야학으로 뛰어다니 고, 수배·구속으로 이어졌고, 김민기의 노래를 빼앗긴 양희은에겐 대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세노야> <들길 따라서> <한사람> 등 정치성이 배제된 노래들이 살아남았다. 양희은은 78년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 > 등 김민기가 군대, 공장생활 시절 작곡한 곡들을 받아 음반을 냈다. 하 지만 나오자마자 음반이 폐기처분됐다. 그리고 이후 김민기와 양희은은 둘다 힘든 세월을 살아간다.

(사진/김민기씨. )

김민기는 민통선에 들어가 홀로 농사를 지었 고, 양희은은 두번에 걸친 암수술과 투병, 외로운 미국생활. 이들의 80년 대는 ‘고독’했지만, 이들의 노래는 80년대 후배들에 의해 시위현장에서 , 캠퍼스에서 활활 꽃을 피웠다. 87년 이후 이들의 노래는 음반시장에서 도 맹위를 떨쳤지만, 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음반을 내주기만 해도 고마워했던 시절”에 맺은 계약 때문이다. 양희은이 김민기 헌정음 반을 내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민기에게 작곡료를 줘본 적도 없었으니 까. 90년대에 이들은 함께 부활한다. 김민기는 극단 학전을 세우고, 연극 무대에 뛰어들었고, 양희은은 93년 콘서트를 시작으로 다시 팬들에게로 왔다.

양희은은 “콘서트가 없는 날도 집에서 3∼4시간씩 연습한다. 요즘은 일 산집에서 콘서트 연습하고, 밴드들 밥해 먹이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했 다. 그의 콘서트는 11월28∼30일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있다(02-3272-233 4). “서른이 됐을 때 좋았고, 마흔이 되니까 더 좋았다”는 양희은은 큰 누님처럼 푸근했지만, 막내 이모처럼 아직 젊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 서는 그는 약간 ‘팔자걸음’성 걸음걸이로 훠이훠이 복도를 지나가며,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며 천천히 떠나갔다. 양희 은은 이제 뛰어다니지 않는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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