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한국사회 천박성의 뿌리

(사진/한국사회의 천박성을 극복하기 위해 학자들이 발벗고 나섰다. 학자들은 지식인들이 먼저 `우리주의'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인은 영원한 엘리트로 대접받기를 바란다. 더이상 오를 고지가 없 는 사람들이라 여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헛웃음이 나 온다. 여가시간엔 주로 마작이나 음주, 골프 등 유흥이나 레저 일색이다. 마작을 즐기면서도 남다른 자부심을 과시한다. 두뇌가 뛰어난 사람들이 즐기는 고급오락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도박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 은 일제시대에 고급관리로 일반대중과 별개의 문화생활을 하던 데서 비롯 된 차별감이 보수적인 법조계의 문화로 이어진 탓이 아닐까 한다.”

국제한국학회(회장 최준식·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가 지난 11월7일 이 화여대에서 ‘한국사회의 천박성과 그 극복’이란 주제로 마련한 학술대 회에서 방희선 변호사가 법조계의 윤리상황을 꼬집은 말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비평서가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한겨레21> 제178호 관련기사) 국민 통합을 위한 의식개혁의 몸부림이 학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것도 학술대 회에 ‘천박성’이라는 주제를 직설적으로 내걸고 나온 것이다. 한국사회 의 고질적인 난맥상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라 하겠다. 고 상한 이야기로 덮어두기에는 너무 고질이고,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씹기 에는 너무 질긴 ‘천박성’,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인가.

한국항공대 한국학과 최봉영 교수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천박성은 동기가 고상하지 못하고 지식체계가 빈약한 가운데 의·식·주, 학문 등에서 동 ·서가 맞서는 규범체계의 혼란에서 비롯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 도 해결됐음에도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의존해 사회적 출세를 빈곤에 대한 일종의 한풀이로 여기는 것은 동기의 천박성 을 보여준다. 지식체계 역시 조선시대 성리학 등 수준 높은 지식체계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서구의 지식체계에 압도당해 자신감을 잃고 외래사조 를 추종하는 ‘바나나 지식인’들이 득세한 것도 천박성에 한몫했다. 많 이 배우고, 잘사는 지도적 위치의 사람들이 천박하게 살아가는 한 고상한 사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인이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사실도 천박함을 거들 고 있다. 중앙대 심리학과 최상진 교수는 “한국인은 ‘우리편/남의편’ 구분에 따라 마음틀이 차별화된다. 남관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에 서 타인의 처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목전실리를 더 중시하게 마련 이다”며 현 사회체계는 목전의 실리를 추구하는 당사자에게 보상, 득을 보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적 이익추구 행동이 보상받는 사회운영체 계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상생활에서 공중도덕의식을 잃어가고 사회문화가 척박해지는 현실을 극 복할 방도는 뚜렷하지 않다. 뿌리깊은 ‘우리주의’(Weism)가 하루 아침 에 무너질 리 없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는 가족을 뛰어넘는 사회통합 원리로 축제적인 의례를 제안한다. “가족이 배타적으 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열었던 마을의 동제를 현대화하고, 정인보 선생 의 ‘조선의 얼’, 최남선 선생의 ‘조선정신’ 등처럼 한국인이라면 모 두 공감할 수 있는 상징원리를 모색해 봄직하다. 그런 노력에서 천박성을 극복하고 전세계의 정신문화에 기여하는 한국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