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만리재에서

반(反)자돌림 암수를 넘어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찾아들 관람객은 2천4백만명, TV를 통해 지켜볼 시 청자는 37억명 정도라 한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훨씬 웃도는 수치라니 광기에 가깝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9일 아시아지역 B조 예선을 마치 기까지 국민적 열기는 대통령선거 등 모든 현안을 압도했다.

우리의 사정은 스포츠 경기에 넋을 내던질만큼 그렇게 한가롭지는 않은데 , 왜 그럴까. 불황 속 고용불안은 깊어가고 다가오는 금융빅뱅은 철밥그 릇이라는 금융권마저 파산의 망령에 시달리게 하고 주가폭락 등으로 기업 과 투자자는 당장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국민이 관객이자 선수인 최대의 게임 대통령선거가 있다.

물론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스포츠의 덕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경기때면 만사 제치고 TV앞에 넋을 놓고 그나마 위 태로운 생업에 대한 걱정마저 잊어버리는 사람들, 전방위 달러방어 노력 속에서도 떼지은 붉은 악마의 원정응원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이기건 지 건 온갖 핑계로 술잔을 잡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도대체 무슨 마력일까.

하지만 이른바 마력이란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소박하게 땀의 결실이 정직한 경기장의 현실에 주목하고 싶을 따름이다. 아무리 잘 훈련된 선수 라도 큰 게임 한번 치르는데 보통 3∼5리터 이상 쏟아낸다고 하는 땀을 말이다. 그 땀은 물론 자신을 내던지는 것과 비례한다. 온몸을 투척한 김 도훈의 다이빙 헤딩슛이나 코뼈가 내려앉은 최용수의 골을 향한 집념, 절 골이 두렵지않은 고정훈의 격렬한 몸싸움,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서 정원의 질주, 볼을 향한 유상철의 도약 따위는 헌신으로만 온전히 설명된 다. ‘예술적’이라는 표현이 진부한 이민성의 문전 골처리나 하석주의 아름다운 도움주기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헌신의 모습이다.

그곳에서 승부는 바로 이 땀의 결실인 ‘실력’으로 결정된다. 개인기 전 술 팀웍 정신력 등 수없는 반복을 통해 이루어낸 개인과 팀 전체의 실력 만이 승리를 가져다 준다. 손님 실수란 기대할 수 없다. 상대방을 두둘겨 패서 이기는 경우도 없다. 오로지 ‘잘 해야’ 이길 수 있다. 그것은 땀 의 결실을 비웃는 현실을 부끄럽게 한다. 약삭빠름이 상찬되는 세태를 거 부한다.

월드컵 예선전과 함께 현재 진행돼온 또하나의 경기는 전혀 딴판이었다. ‘실력’으로 보다는 상대편을 두둘겨 패고 꼬집고 물어뜯고 해서 승부를 가르려 했다. 비방 폭로전만을 두고하는 말이 아니다. 경쟁자들이 내논 이슈이란 게 ‘반DJ' ‘반DJP’ ‘반3김’ ‘반내각제’ ‘반YS’ 등 반( 反)자돌림 암수(暗手)다. 세대교체나 3김청산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반3 김이니 반(反)자돌림에 속한다. 하다못해 ‘내가 이렇게 잘났다’거나 ‘ 내가 이루려는 세상은 이렇다’라는 따위의 자기 자랑조차 듣기 힘들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누가 당선되건 나라는 요절나게 돼있다. 물론 여기 에는 유권자의 투표성향이란 결국 암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정치꾼들의 믿 음이 있으니 유권자는 불쌍하다.

이제 선거구도는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등 3자로 정리됐다. 투표일도 채 40일이 남지않았다. 이제 상대방을 두둘겨패는 식의 ‘反’자 선거운 동은 그만두자. 땀냄새 물씬나는 실력으로 승부를 겨뤄보자. 적어도 ‘나 는 이렇게 잘 났으니 나를 찍어달라’고 해보자.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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