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20세기는 이들을 잊지 못한다

월드컵을 통해 불멸의 스타로 우뚝 선 선수는 역시 브라질의 펠레를 꼽을 수 있다.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는 금세기 최고의 스포츠 스 타다. 좌우 어느 발로도 가능한 자유자재의 킥, 고무줄 같은 탄력의 헤딩 슛, 신기에 가까운 드리블로 4차례나 출전해 월드컵 그라운드를 찬란히 수놓았다.

혜성처럼 등장한 펠레가 전세계 축구팬을 놀라게 한 것은 지난 58년 17세 의 나이로 출전한 제6회 스웨덴월드컵이다. 브라질은 홈팀 스웨덴에 맞서 먼저 골을 내주지만 펠레의 활약으로 5-2 역전승을 거둬 처음 우승하게 된다. 펠레는 이어 62년 월드컵 우승에 이어 70년 월드컵도 제패함으로써 브라질을 줄리메컵 영구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그가 29세의 완숙한 경지 에 오른 70년 멕시코월드컵대회에서는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그림 같 은 헤딩 선제골을 성공시켜 축구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아 있다. 74년까 지 브라질 산토스팀에 있다 75년 미국 뉴욕 코스모스팀에 입단한 그는 77 년 10월1일 뉴욕의 자이언트 구장에서 코스모스와 산토스팀의 유니폼을 번갈아 입고 전후반을 나누어 뛰며 감격의 고별무대를 가졌다.

그에 견줄 만한 자질을 갖춘 펠레 이후 최고 스타는 아르헨티나의 마라도 나. 그는 86년 멕시코대회 때 환상의 드리블과 돌파력, 패싱력으로 펠레 의 후계자로 추앙받았다. 마라도나는 결승 진출의 고비였던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가 기록한 2골을 혼자 엮어내는 원맨쇼를 연출했는 데, 첫골은 교묘한 핸들링으로 넣은 것으로 이후 ‘신의 손’이라는 별명 을 얻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그러나 코카인 복용 등 자기관리 실패로 펠 레와 같은 반열에 오르는 데는 실패한 채 축구 신동에 머물러야 했다.

월드컵 사상 최고의 골잡이는 독일의 폭격기 게르트 뮐러다. 70년, 74년 월드컵에서 독일팀의 최전방에 섰던 뮐러는 두 대회 통산 14골을 넣어 월 드컵이 낳은 최고의 골잡이로 등록돼 있다. 특히 74년 대회 결승서는 토 털사커로 무장한 네덜란드를 맞아 360도 회전 터닝 결승골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차례의 월드컵대회에서 역대 최고 득점 기록은 지난 58년 프랑 스의 퐁텐이 세운 13골이다.

베켄바워 또한 월드컵이 낳은 세계적 스타이다. 베켄바워는 66년 영국대 회에서 데뷔해 결승서 잉글랜드에 패했지만 4년 뒤인 70년 멕시코대회 8 강전에서 3-2로 설욕했고 74년 홈그라운드의 결승에서 요한 쿠루이프의 네덜란드를 2-1로 제치고 우승했다. 그는 감독으로서도 86년 멕시코대회 준우승에 이어 90년 이탈리아대회도 우승해,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컵 제패의 영광을 차지했다.

파울로 로시는 82년 스페인대회에서 화려한 원맨쇼를 펼치며 6골을 잡아 내 득점왕에 오르며 조국 이탈리아에 3번째 우승의 기쁨을 선사했다. 특 히 브라질과의 8강전서 해트트릭을 기록해 3-2 승리로 이끌었고, 폴란드 와의 4강전에서 2골로 2-0 승리, 서독과의 결승에선 선제골로 3-1 승리를 이끌었다.

이 밖에도 66년 영국대회 득점왕(9골)을 차지한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 78년 아르헨티나에 처음 세계정상의 길을 열어준 마리오 켐페스, 독일 축 구 사상 가장 뛰어난 미드필더의 하나로 90년 이탈리아대회에서 통일을 앞둔 독일에 3번째 우승을 선사한 로타르 마테우스 등도 국민적 영웅이자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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