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내가 20세기 마지막 축구 영웅"

축구는 스타플레이어를 탄생시키고 월드컵은 영웅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또다시 세계 축구사를 장식할 신화 창조에 도전한다. 세계인들이 월드컵 에 열광하는 것도 거기에 스타탄생의 드라마와 이들이 엮어갈 신화의 첫 페이지가 숨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전세계 축구팬들은 오는 98년 6월10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을 기다리는 것은 축구팬들뿐만이 아니다. 월드컵은 세계무대 의 새로운 정복자가 탄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전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 는 월드컵 무대는 한 나라의 스타플레이어가 세계적인 영웅으로 도약하는 절호의 기회다. 현재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축구선수들은 이번 기 회를 세계정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90년대는 호나우도의 시대

이 꿈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면 단연 호나우도 루이즈 나자리오 드리마다. 사실 호나우도는 더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없는 현역 최고의 축구선수다. 6 0년대가 펠레, 70년대는 바켄바워, 80년대가 마라도나의 시대였다면 90년 대는 호나우도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호나우도는 이에 만 족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 월드컵 무대를 90년대의 축구황제를 넘어서 펠 레와 같은 불멸의 축구황제로 등극하는 대관식으로 삼을 생각이다.

호나우도는 축구에 관한 한 전능에 가깝다. 관중들의 넋을 빼앗는 환상적 인 드리블, 신기에 가까운 개인기와 절묘한 패스 등 ‘더이상의 축구는 없다’ 싶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기량을 갖추고 있다. 그는 미국월드컵 MVP 호마리우와 함께 ‘드림듀오’를 이뤄 가공할 공격을 이끌며 브라질 이 세계최강이라는 수식어를 회복하는 데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다.

펠레가 은퇴선언을 한 지난 76년 브라질 벤토리베이로의 빈민가에서 태어 난 호나우도는 지난 89년부터 4년간 브라질의 청소년팀에서 뛰면서 남미 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8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브라질을 우승시켰다. 17세 이던 93년 프로에 데뷔하자 그의 천재성은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브라질 명문 쿠루제이로 유니폼을 입고 데뷔, 첫해 60경기에 출전해 58골을 뽑아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브라질이 우승한 지난 94년 미국월드컵에 대표팀으로 나갔지만 그는 호마 리우와 베베토 등 쟁쟁한 선배 골잡이들의 그늘에 가려 벤치에만 머물러 야 했다. 미국월드컵이 끝난 뒤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으로 옮긴 그 는 이후 네덜란드와 스페인 리그서 잇따라 득점왕에 오르며 유럽무대를 차례로 정복했다. 현재 이탈리아 인터밀란 소속인 그는 게임당 1골 이상 의 골을 터뜨리며 소속팀을 유럽의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브라질 팬들은 이번 월드컵 무대야말로 호나우도가 최고의 영웅임을 전세계에 다시 한번 확인시킬 빅쇼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호나우도와 함께 현역 축구스타 가운데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선수는 잉글 랜드의 앨런 시어러(27)이다. 호나우도가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시어 러는 이미 중천에 떠서 가장 강력한 빛을 발하는 ‘한낮의 태양’이다. 그는 축구의 종갓집 잉글랜드를 이끄는 걸출한 스트라이커로 이미 전세계 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지난해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잉글랜드는 독일 과 결승전에서 졌지만 주장인 시어러는 모두 5경기에서 5골을 기록해 득 점왕에 올랐다.


앨런 시어러, 최고의 골잔치를 기대하라

현재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그가 타고난 골감각을 갖춘 대형 스트라이커라는 데 이론이 없다. 10년 전인 지난 87년 당시 17세로 사우 댐턴의 유니폼을 입고 치른 프로 데뷔전에서 잉글랜드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을 세운 이래 해마다 두자리수 이상씩 골을 수확했다. 지난 시즌 잉 글랜드 프레미어 사상 최초로 개인통산 1백골을 달성해 천재적인 골감각 을 확인시켰다. 또 지난 6월 프랑스가 월드컵에 앞서 개최한 4개국 초청 대회에서 브라질, 이탈리아 등을 제치고 우승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이번 예선전에서 그는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폴 개스코인과 함께 숙 명의 라이벌 이탈리아를 조 2위로 밀어내고 1위로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 다. 특히 지난해 10월9일 강호 폴란드전에서 2골을 비롯해 그루지야전서 1골, 몰도바전서 1골을 기록하는 등 굴곡없는 득점레이스를 펼쳐 조 1위 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 팬들이 그에게 거는 신뢰는 절대적이다. 예선 막판에 부상으로 빠졌지만 본선에서는 무서운 득점포를 터뜨려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세워줄 것으로 잉글랜드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단골 우승후보 독일에는 게르만전차군단을 지휘하는 필드의 사령관 마티 아스 잠머(29)가 버티고 있다. 리베로로서 화려하고 인상적인 플레이로 ‘카이저’(황제) 프란츠 베켄바워의 후계자로 공인받고 있다. 지난해 6 월 잉글랜드에서 펼쳐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끈 그 는 그해 기자들이 뽑는 MVP인 유럽 골든볼을 차지했다.

전술적인 면에서 잠머의 역할은 중대하다. 스위퍼로서 수비진을 노련하게 지휘하다가 상대 방어벽에 틈새가 보이거나 역습 타이밍을 잡았을 때는 무서운 대시로 공격전방에 가담해 공수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96유럽선수 권에서 크로아티아와 8강전서 상대수비의 허를 찌르는 과감한 공격가담으 로 결승골을 작렬시키는 등 2골을 터뜨렸다.

지난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3번째 우승으로 통일독일을 자축한 뒤 통 독 이후 최초로 구성된 독일대표팀에 잠머는 동독출신으로는 처음이자 유 일하게 발탁됐다. 그러나 그가 94년 미국월드컵 불가리아와 8강전 때 부 상으로 결장하면서 독일은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때문에 이번 월드컵에 대한 독일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크다. 올해 34세의 베테랑 위르겐 클린 스만과 올리버 비어호프가 이끄는 투톱에 잠머의 공수연결이 위력을 발휘 한다면 독일의 통산 4번째 우승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