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이야기

비리딱지도 색깔론도 꺾지 못했다

‘비리정치인’이라는 딱지도 ‘색깔론’도 정치경력 근 30년의 노정객이 다시 총리에 오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타이 의회는 지난 11월 8일 과 반수로 제1야당인 민주당의 추안 릭파이(59) 당수를 새 총리에 지명했다. 지방 변호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한 릭파이 당수는 지난 92년에도 총리 로 선출된 바 있으나, 95년 토지개혁 정책을 둘러싼 비리 스캔들에 휘말 려 4년의 임기를 못채우고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사임한 차발리트 용차이유트 전 총리가 타이 바트화 폭락사 태 등에 대한 서툰 대처로 경제위기를 초래하자, 타이 경제의 ‘황금기’ 라고 불리는 92∼95년 국정을 이끌었던 릭파이가 다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남부 트랑주의 가난한 교사 집안에서 태어난 릭파이는 한때 주정부 장학 금으로 예술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미술에 심취했으나, 부친의 간곡한 소 원 때문에 법대로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면도칼에 꿀을 바른 듯한 혀를 가졌다”는 평판을 들을 정도로 완곡하 고 부드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을 잘한다고 알려진 릭파이는 “우유 부단하고 결단력이 없다”는 비판도 함께 듣고 있다. 그러나 28년의 정치 역정 동안 한번도 자신의 당적을 바꾼 적이 없을 만큼 일관된 정치노선을 지켜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정계 입문 직후의 첫 선거에서 단돈 3만바트( 70만원)와 세치 혀의 달변만으로 30세 나이에 최연소 의원이 된 뒤 지금 까지 고향인 자신의 지역구에서 계속 의석을 지켜왔다.

76년 민주화와 함께 민주당 정부에서 법무차관과 총리실 차관에 임명돼 젊은 나이에 각료의 대열에 올랐으나, 군부의 유혈 쿠데타로 10개월 만에 민주당 정부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 군부와 릭파이의 정적들은 그를 ‘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군부세력의 거듭된 교체 끝에 들어선 군출신의 프렘 총리가 점진적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릭파이는 능력을 인정받아 80년부터 프렘 정권 밑에서 법무장관 상업장관 농업장관 등의 요직을 거치며 국정 경험 을 쌓았다.

임민 기자/ 한겨레 국제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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