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이야기

특파원이라고 불러주세요

신촌에 있는 인터넷카페 ‘인터게이트’ 등에서는 요즘 캐나다 이민 1.5 세대인 두 젊은 ‘미녀 특파원’을 자주 볼 수 있다. 지난 10월26일 한국 을 찾은 쌍둥이 자매 유수정(23·사진 오른쪽)·수민씨가 캐나다 한국어 라디오방송 <컴 백 홈>에 기사를 보내기 위해 일주일에 서너번씩 이들 카 페를 찾기 때문이다.

이들이 인터넷카페를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싼 국제전화를 쓰기 어렵 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밴쿠버의 이민 1.5세대들이 운영하는 방송 <컴 백 홈>이 가난한 방송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정·수민씨 자매 등 밴쿠버 사이먼프래저대학(SFU)의 이민 1.5세대들이 <컴 백 홈>의 첫 전파를 내보낸 것은 지난 96년 8월 말이다. 일주일에 단 30분 방송이었다. 하지만 <컴 백 홈>의 방송 목적은 첫 방송 첫 노래가 디제이덕이 부른 <애국가>라는 사실에서 금새 드러난다. 캐나다 속에서도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여 “한국인도 캐나다인도 아닌” 이민 1.5세대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돈 없는 동포 학생들이 한국어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비영리 라 디오방송국 덕이 컸다. 영리목적 방송이 전하지 않는 사 회이슈들을 폭넓게 다루는 가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로 방송 시간을 ‘거의 무료로’ 내놓았던 것이다. 방송에 대한 밴쿠버지역 한인 사회의 반응은 매우 좋은 편이다. 가끔 밤 12시부터 새벽 7시까지 이어지 는 ‘올나이트스페셜’에는 50명도 넘는 청취자들이 사연을 전해온다. 동 생인 수민씨는 “지난 7월 청취자 한명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연을 말하 자 정말 많은 청취자가 전화를 걸어주었다”며 ‘보람의 순간’을 전한다 . 현재 <컴 백 홈>은 방송시간도 매주 2시간으로 늘고, 동포식당 등 광고 주들도 여럿 확보할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컴 백 홈>의 진행과 홍보를 맡았던 수정·수민씨는 그래도 뭔가 ‘갈증’ 같은 걸 느꼈다. 그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떠나온 “한국을 좀더 알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래서 이 쌍둥이 자매는 지난 여름 SFU 신문 방송학과 졸업과 함께 ‘한국행’을 결심했다.

후배들에게 방송을 맡기고 떠나면서 자매는 한국 소식을 듬뿍 전해줄 것 을 약속했다. 말하자면 돈 한푼 안 받는 ‘특파원 노릇’을 자청한 것이 다. 그만큼 자신들이 만든 방송에 대한 애착이 깊다.

현재 두 쌍둥이 자매는 내년 가을학기 대학원 입학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 한국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도 많지만, 자유로이 한국에 대 해 알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해서다. 언니 수정씨는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동생 수민씨는 연세대 신방과 대학원을 목표로 삼았다. 이들은 대학원을 졸업하면 캐나다로 돌아갈 생각이다. 캐나다는 그들에게 ‘법률상 조국’ 이다. 하지만 이들은 돌아갈 때 이민 1.5세대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가 지고 가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그동안에는 밴쿠버에 남은 1.5세대들에게 정체성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특파원 역할’도 충실히 할 생각이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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