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미국의 ‘포르노 민주주의’

일부 나라에서 아마추어 포르노는 이미 일반화됐다. 미국의 경우 90년대 초반부터 아마추어 포르노들이 유통됐다. 포르노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한 미국에서는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극장용 포르노영화의 황금 시대였다. 물론 실제 성행위 장면가 담긴 ‘하드코어 포르노’가 주도했 다. 74년에는 2만5천달러를 들인 <목구멍 깊숙이>가 5천만달러의 수입을 올리면서 포르노영화 제작붐이 일었다. 제작사들은 한 작품당 평균 수십 만달러를 쏟아부으며 이름있는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들을 고용해 작 품성있는 포르노를 만들었다. 평론가들이 포르노영화의 걸작으로 꼽는 등의 작품은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가정용 비디오 플레이어가 대중화하면서 상황은 달라 진다. 포르노를 굳이 극장에까지 가서 볼 필요없이 가정에서 그것도 몰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홈비디오의 보급으로 포르노 전용극장이 망하게 되자 영화사들도 작품성있는 포르노를 포기하고 싸구려 작품제작으로 변 하게 됐다. 한국에 흘러들어오는 포르노필름들은 대부분 이렇게 마구잡이 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90년대에는 가정용 캠코더가 급속도로 대중화했다. 캠코더를 촬영장비로 사용해 보통 사람들이 직접 제작하는 아마추어 포르노 시대가 열린 것이 다. 이런 포르노들의 가장 큰 특징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도 배우도 촬영기사도 한두사람이 맡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찍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거나 전문적인 포르노 업계로 진출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일 경우가 많았다. 결국 아마추어 포 르노 시장은 전체 하드코어 포르노 시장의 20∼30%를 차지하게 됐다. 미 국에서는 이같은 사회현상을 반영해 ‘포르노 민주주의’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60년대 말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합법화한 포르노산업은 엄청난 규모로 성 장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의 포르노비디오 시장에 출시된 종류는 8천여 개, 대여숫자는 6억7만여개이다. 연간 매출액은 30억달러로 할리우드영화 의 미국 내 매출액이나 록·컨추리 음반 매출액보다 많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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