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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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8월 부당전직에 항의, 단식투쟁을 벌였던 노조집행부.)
경영난에 시달려 온 <경향신문> 경영진이 지난 11월4일자로 편집국 기자 8명 등 사원 10명을 전격 해고한 데 대해 노조(위원장 김윤순)가 백지화 를 요구하며 지난 6일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해 <경향신문>이 노사간의 정 면대결로 치닫고 있다.
경향 경영진은 이번 정리해고 조처가 경영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라는 설명이다. 경향 안신배 사장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회사의 경영상 태는 하루하루를 견디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며 “특단의 조치 를 취하지 않으면 경향의 앞날을 확보할 수 없는 벼랑 끝까지 몰리게 돼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경향의 경영권을 갖고 있는 한화그룹의 고위 관계자도 “매년 대규모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경향신문>의 경영정 상화를 위한 노력은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상여금도 유보했는데…” 노조 강력 반발
회사가 인력감축 방침을 처음 공식화한 것은 고용조정 실시 방침을 밝힌 지난 7월 말. 이어 8월 중순 기자 24명을 포함한 60여명을 영업직으로 전 격 전보발령했다. 회사는 노조가 강력 반발하자 9월 초 전직자들의 2개월 내 원직복귀를 약속하면서도 총 1백18명에 대한 고용조정 방침을 천명하 는 등 인원감축에 대한 의지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경영진은 10월 들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명예퇴직 신청자 를 접수했다. 10월 말까지 신청한 사람은 80여명. 희망퇴직과 관계없이 떠난 사람과 연말 자연감소 인원까지 합하면 감원규모는 1백여명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애초 목표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노조는 즉각 정리해고 철회와 함께 파행경영과 부당해고의 책임을 물어 안 사장과 박종화 경영전략본부장 겸 편집국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윤순 노조위원장은 “정리해고만은 피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10 월분 상여금을 내년으로 유보시키면서까지 회사와의 협상에 노력해 왔다 ”면서 “단 한명의 정리해고도 안 된다”고 밝혔다.
경향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최근 회사경영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적자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연간 3백억∼4백억원에 그쳤던 적자가 95년에는 8백억원대로 육박하더니 지난해는 1천4백억원대로 치솟 았다. 누적적자로 지난 90년 한화그룹이 인수할 때 5백여억원 수준이었던 회사부채는 최근에는 5천억원대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에서는 장부외 부채까지 포함하면 7천억원대에 이른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노조는 경영악화의 원인을 국내신문들의 무한경쟁에서 찾는다. 국내신문 들은 지난 91년부터 조간으로의 전환과 증면 경쟁, 섹션화, 경품을 동원 한 무리한 판매부수 확대 등의 경쟁을 벌이면서 막대한 투자비를 쏟아넣 었다. 경향도 지난 94년부터 공격경영에 나서면서 윤전기 교체와 지방분 공장 설립, 부수확장 등에 총 2천억∼3천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은 이를 통해 독자확대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광고와 판매 쪽의 수입확대로 연결시키지 못하면서 벽에 부딪혔다. 경기침체로 기업들 이 광고비 지출을 동결 또는 축소한 것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김윤순 노조위원장은 “결국 90년대 초부터 불붙기 시작한 신문들의 무한경쟁에 서 막차를 탄 꼴”이라며 “경영난의 책임을 사원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조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경영정상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원칙 적으로 시각을 같이하고 있지만 일방적인 정리해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번 정리해고가 마지막 인력감축이라는 경영진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경향 경영진이 앞으로 인원을 상당 수 더 줄일 계획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조 안에서는 경영진의 이번 해고 강행이 추가 인원감축을 위한 노조 무력화 기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
매각 위한 사전정비라는 의혹도
일부에서는 경영진의 해고 강행을 다른 기업에 매각하기 위한 사전정비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다. 증권가 등에서는 인수업체로 현대, 엘지 등 대기업들의 이름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 은 “절대로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현대그룹 문화실의 이영일 전무는 “제철사업 등 투자할 곳도 많고 <문화일보>가 있는데 신문을 또 인수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지난 80년대 말 경향 인수를 시도했던 적 이 있는 엘지그룹의 김영수 홍보이사도 “최근 구본무 회장이 직접 ‘관 심없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한화가 경향의 경영정상화 를 위해 일부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아예 경향과 함께 파는 방안을 모색중 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사자는 “사실 무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한화그룹의 한 임원은 “그룹 고위층의 언론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며 매각설을 부인했다. 언론계에서는 이번 경향사태가 언론사의 고용불 안을 더욱 가중시키기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언론노련의 한 관계자는 “ 이미 몇년 전부터 조선 동아 중앙 한국 서울 등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명 예퇴직을 통해 감원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이번 경향의 해고조처는 첫 정리해고라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고 말했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