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YS의 거짓말 정치

(사진/김 대통령은 11월8일 특별담화에서도, 하지 않겠다던 탈당을 결행한 데 대해 한마디 해명도 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의 ‘깜짝쇼 정치’가 실제로는 ‘거짓말 정치’에 다름 아 님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한 정치적 상황변화가 없는데도 며칠 사이에 기 존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김 대통령의 정치행태는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지금까지는 전격성을 강조하는 김 대통령의 특별한 성격 때문인 것으로 치부돼왔다. 그러나 최근 임기 종료 3개월여를 앞두고 김 대통령이 불과 며칠전 야당 총재와의 회동에서 했던 언명을 깨고 탈당을 결행한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깜짝쇼 차원을 넘어선 ‘거짓말 정치’의 한 사례로 꼽고 있다.

단정하는 말투가 거짓말을 만든다

김 대통령의 이런 정치행태는 국민들에게 최고 통치권자의 발언에 대한 불신과 함께 정부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낳게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김 대통령의 ‘거짓말 정치’는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이 저지 르는 ‘약속위반’이나 ‘정치적 상황에 따른 거짓말’과는 차원을 달리 하고 있어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김 대통령은 객관적 상황변화가 없 는데도 하루이틀 사이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기 일쑤이고 이에 대한 해명 이나 설명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김 대통령의 정치행태는 지나치 게 보안유지에 신경을 쓰는 개인적 스타일에다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언어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신한국당 탈당이다. 김 대통령은 그동안 이 회창 신한국당 대표의 탈당요구에 ‘누가 만든 당인데…’라며 이를 부인 해오다 7일 전격적으로 탈당했다. 특히 지난 3일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청와대 회담에서 최소한 '금주내 탈당'을 강력히 거부했던 김 대통령은 4 일만에 전격적으로 탈당을 단행했다. 김종필 총재는 당시 청와대 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김 대통령이 조만간에는 탈당할 것 같지는 않다”고 언 론에 공개했다. 김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자민련이 ‘어이없다’는 반응 을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김 총재가 결과적으로 언론에 오보를 내 도록 함으로써 망신을 당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이런 전격 적인 입장번복은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 대통령은 최근까지 탈당설을 일축하던 심경을 바꾸게 된 이유가 ‘ 국민신당 지원설’을 의식한 때문인지, 아니면 더욱 본격적으로 국민신당 을 지원하기 위한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월24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의 회담을 시작으로 연속적으로 이 뤄진 대선후보들과의 청와대 개별회담도 같은 사례이다. 김 대통령은 그 동안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개별회동 요청에 대해 “대선후보를 개별적 으로 만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거절해왔다. 김 대통령 의 이런 태도는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자신에 대해 신한국당 탈당을 요 구하자 하루아침에 바꿔버렸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통령의 대선후보 개별 회담에 대해 ‘이회창 물먹이기’라고 평가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 96년 12월 개각 때에도 똑같은 유형을 되풀이 했다. 당 시 김 대통령은 CBS(기독교방송) 창사 42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연말개각 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바로 그 연말에 개각을 단행해버렸다. 92년 대선자금과 관련한 김 대통령의 발언도 국민들 시각 에서는 거짓말로 인식된다. 지난 5월24일 “대선자금을 밝힐 자료가 없다 ”던 김 대통령은 국민여론이 악화되자 5월31일에는 “지난 92년 대선자 금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정당운영과 선거운동관행에 비추어 정당을 가 리지 않고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일부시인쪽으로 선 회했다. 물론 대선자금의 규모를 밝히지는 않았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과 관련해서도 김 대통령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관련한 문책인사는 없다”고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농림부 장관을 경질했다.

문책없다 하룻만에 농림부 장관 경질

우리나라 언론을 홀대하고 외국언론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행태도 구설수 에 올랐다. 지난 95년 7월27일 미국을 방문중이던 김 대통령은 한국의 워 싱턴 특파원들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대북정책과 관련해 “광복절에 할 얘기를 오늘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특파원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 았다. 그러나 다음날 7월28일 미국의 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8월15 일을 기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획기적 제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다”고 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 통령 등 5·18학살 관련자들에 대한 관용적 자세는 어느 날 갑자기 “역 사를 바로잡기 위해” 처벌쪽으로 급선회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 외국에서 쌀을 사서라도 지원해 주겠다”며 동포애를 보이던 자세에서 “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식량지원을 있을 수 없다”는 자세로 뒤바꿨 다.

‘YS(김영삼)정치’의 답안지에는 문제와 결론만 있고 문제풀이과정이 없 다. 야권의 한 정치인은 “YS정치는 객관식 정치이지 주관식 정치가 아니 다”며 “그러나 국민들은 설령 정답이 틀리더라도 납득할 만한 과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