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팍스 아메리카나 향한 경고

(사진/포옹하는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과 러시아 옐친 대통령. 천연가스 수송 프로젝트 등에 합의해 경제분야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 11월10일 정상회담 결과 중국과 러시아가 본격적인 ‘전략적 제휴’ 관계에 들어서게 됐다. 베이징에서 열린 이번 회담에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국경분쟁 해소 △두 나 라를 잇는 가스수송관 건설 △중국 원자력발전소 합작건설 등 ‘전방위적 ’ 사안들에 합의했다. 이로써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지난 96년 4월 ‘21 세기를 향한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제시한 뒤 관계개선을 해오던 두 나 라가 ‘새로운 관계틀’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또 지난 9월 말 미-일 신방위협력지침 발표 뒤 두 나라간 군사협력 강화 가 점쳐지는 가운데 나온 이번 회담은 미국에 대한 견제도 빼놓지 않았다 .


국경선 확정 군비감축 길터

두 나라 정상은 공동선언문에서 “특정국가의 국제질서 주도와 국제 패권 주의 반대”를 강조해 ‘미국 견제’를 ‘간접화법’이긴 하지만 거의 직 설적으로 내비쳤다. 그러나 정상회담 직후 중국 외무부는 “회담에서 한 반도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혀 ‘미국 견제’가 ‘직접화법’으로 표출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두 정상간에 합의된 사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국 국경선 확정 이다. 이날 총연장 4천3백km에 이르는 동부지역 국경선이 확정됨에 따라 두 나라는 17세기 이후 가장 큰 분쟁요소 중 하나를 해소한 셈이다. 중- 러는 지난 69년 무장충돌까지 불렀던 아무르강 3개 섬에 대해서는 ‘공동 이용’이라는 방식으로 ‘걸림돌’을 제거했다. 두 나라는 이번 합의를 위해 지난 5년간 지속적인 측정조사와 실무협상을 벌여왔다. 국경선 합의 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이것이 두 나라의 군비감축을 가능케 할 정도의 큰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갖는 더 큰 의미는 그간 군사부 문에서 대립관계를 보여온 양국이 이후 이 부문협력의 ‘전제’를 마련했 다는 점이다.

중국 장쑤성(江蘇省) 롄윈강(連雲港) 근처에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를 러 시아에서 발주하기로 한 것도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관련해 미국은 핵기술 이전을 우려해 자국 기업들의 수출을 금지해놓은 상태다. 두 나라는 이밖에 발표문에는 언급 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제 수호이21의 중국 수출 확대 등 무기거래에서도 협력을 지속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은 경제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합의를 이루어냈다. 한 국과 일본까지 연장할 계획인 ‘천연가스 수송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천연가스 수송프로젝트는 러시아 이르쿠츠크 및 서시베리아에서 연간 1백 억㎥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수송하기 위해 총연장 3천㎞의 대형수송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계획의 총 예산규모는 1백억달러에 이른다. 두 나라는 이 밖에 동서시베리아의 전력을 중국으로 공급하고 중국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2000년까지 연간 5천만t으로 늘리는 등 기타 에너지분야 협력도 계속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두 나라는 이밖에 생물학 기술분야 등 다방한 기술협력에 합의했다.


리펑 총리 일본 방문 ‘이이제이’ 외교

하지만 두 나라 정상은 공동합의문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밑바탕에 ‘미국 견제’가 있음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정상회담 합의문에서 두 나라는 “국제사회 안녕질서 구축을 위한 러시아와 중국의 노력은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면서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간, 특히 강대국간 관계 가 다극화 구도를 지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제3 세계 동맹과 전략적 ‘다각형 구도’에 반대하는 시대는 과거로 사라졌음 을 보증한다”고 밝혔다. 이는‘1국 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제1 대상국은 ‘당연히’ 미국이다.

하지만 리펑(李鵬) 중국 총리가 정상회담 다음날인 11월11일 일본을 방문 해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진 데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미·일과의 관계악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명백히 하고 있다. 이미 11월 초 장쩌민 주석은 톈안먼(天安門)사건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노리는 것은 미-러-일과의 연 쇄회담을 통한 ‘이이제이’ 외교가 아니냐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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