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권리 찾기

끝나지 않은 13원 돌려받기

“일을 하다 보면 잘못이 있을 수도 있지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잘못을 지적하는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잘못이 지요. 조그마한 구멍가게도 아니고 대형 보험회사 경우에는 더욱 그렇고 요.” 이준용(42·경기도 의왕시 내손1동 주공아파트 502-5909)씨는 13원 때문에 생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다.

재테크를 부인에게 맡기고 있는 이씨가 납입하는 보험료는 지금도 매월 1 백만원을 넘는다. 매월 부담하는 보험료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부인에 게 가끔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적립한 보험 금은 개인사업을 하는 이씨에게는 담보노릇을 해주는 등 종종 도움이 되 기 때문이다. 가끔씩 목돈이 필요할 때면 불입보험금을 담보로 언제든지 보험사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보험이 갖는 보장성은 하 루가 다르게 커가는 자식들의 교육비 부담도 덜어주고 노후를 생각할 때 마다 든든한 언덕이 돼주기도 한다.

교보생명에도 88년 교육보험과 92년 21세기 장수연금 등을 가입해 매월 빠뜨리지 않고 보험금을 납입해왔다. 95년 목돈이 필요한 이씨는 두개의 보험을 담보로 2백70만원과 2백17만원을 대출받았다. 당연히 대출받은 돈 에 대한 이자도 매월 물어야 했다. 이자를 내는 날이면 이씨는 직접 교보 생명 동안양지점 과천출장소를 찾았다.

97년 4월28일 출장소를 찾았던 것도 이자를 내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서 거리도 가까워 부인을 대신해 이씨가 출장소를 찾는 일이 종종 있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직원이 불러주는 대로 돈을 세어 건넸다. 그러나 이씨는 영수증을 받아들고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연체이자가 나온 것이다. 약정된 이자납부일은 하루 전인 27일이었지만 일요일이었다. 회 계를 전공한 이씨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체의 부당함을 따지는 이씨에게 직원은 “하루연체가 된 것이 사실이고 연체료도 얼마 되지 않는데…”라며 볼멘소리였다. 잠시 실랑이가 오가자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직원이 거들었다. “하루 늦었으니 연체료를 내 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아무도 근무 하지 않는 일요일에 누구에게 이자를 내라는 것이냐”고 목소리가 커지고 다른 금융기관들의 예까지 설명을 보태자 영업소 직원들은 한 가지 제안 을 했다. 돈을 내는 날짜를 토요일인 26일로 소급하겠다는 거였다.

그제서야 96년 11월경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도 휴 일 때문에 제 날짜에 이자를 내지 못했고 날짜를 연체료 때문에 실제 납 부한 날보다 이틀을 당긴 날짜로 납부인을 받았다. 한국 굴지의 보험사인 데 하는 생각에 잠깐 못마땅했지만 그때는 그냥 넘어갔었다.

비록 연체료를 물지는 않았지만 사무실에 돌아온 이씨는 마음이 편치 않 았다. 보험감독원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보험감독원 직원은 잘못된 것 같다며 확인해서 조처하겠다는 말로 이씨를 위로했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보험감독원의 부장이라는 사람이 전 화를 해왔고, 보험사에서도 전화가 왔다. 전산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이자 계산이 잘못됐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영업소의 여직원은 직접 찾아와 보험감독원 민원을 취하한다는 확인서를 써달라고 하였다. 잘못이 고쳐진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확인서를 써주었다.

그리고 며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산시스템이 잘못돼서 생긴 일이라면 이미 납부한 이자에 대해서도 연체료가 붙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 다. 보관하고 있던 영수증을 일일이 달력과 확인을 해나갔다. 95년 9월 영수증이 이상했다. 이자를 낸 날짜가 한가위 연휴 바로 다음날이었다. 영수증은 모두 세건이었다. 계산기로 확인해 보니 한참 만에 5원, 5원, 3 원 모두 13원의 이자가 과납된 사실을 찾아냈다.

영수증을 들고 영업소를 찾았다. 단순히 과납된 13원을 찾겠다는 생각만 은 아니었다. 전산시스템이 잘못돼서 생긴 일이라면 대출을 받은 모든 사 람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당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보험사가 취한 부당 한 이득은 마땅히 각 개인들에게 돌려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수증을 들이밀고 출장소 직원과 함께 숫자를 맞춰나갔다. 과납된 사실 이 확인됐다. 개인돈을 꺼내려는 직원에게 과납 이자를 돌려준다는 보험 사 명의의 확인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97년 5월의 일이었다. 돈 몇십원 을 그냥 넘기지 않았던 이씨의 노력은 엉뚱한 연체를 만들어내는 전산시 스템을 고치도록 하는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그뒤에도 영수증을 뒤져 머 리 아픈 숫자를 맞춰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교보생명 스스로가 이씨뿐만 아니라 혹시 있을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의 과납 이자를 스스로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개인에게 돌려주기 어렵다면 공익을 위해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 도 있었다. 개개인의 영수증을 모두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대출총액에 대한 이자를 계산해보면 과납된 이자금액을 어느 정도는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10월이 될 때까지 몇번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확인서는 이씨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이씨는 출장소에 맡겼던 과납의 근거가 되는 95년 8월과 9월의 영수증을 찾아왔다.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교보생명은 이씨의 사례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각 대리점이나 영업소에서 수납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들에게 일요일을 평일로 계산하는 전산시스템의 문제점을 충분히 교육해 이씨와 같은 일을 고객들이 당하지 않도록 준비를 했다는 거였다. 과천출장소 이자 과납은 직원의 업무처리 미숙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씨가 요구한 확인서 역시 별도의 양식은 없고 과납된 금액을 이씨의 예 금계좌로 송금하는 것으로 갈음하는 것인데 영업소에서 업무를 잘못해 실 수를 했다는 거였다.

문제가 있었던 전산시스템은 이제 완벽하게 돌아간다고 한다. 이씨가 요 구한 확인서도 교보생명의 업무지침대로 무통장 입금증으로 갈음될 것이 다. 최소한 고객들에게 안내서라도 한장 보내, 잘못을 알리고 혹시 있을 지도 모를 과납 이자에 대해 고객이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 기를 이씨는 기대하고 있다.

윤승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