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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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손바닥 같은 지느러미와 머리뿐인 아구어.)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전은 그의 저서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아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구어는 입이 매우 크고, 입술 끝에 두개의 낚 싯대 모양의 지느러미가 있는데 의사가 쓰는 침 같다. 길이가 4∼5치 정 도, 낚싯대 끝에는 말꼬리 같은 낚싯줄이 있고, 끝에는 밥알 같은 하얀 미끼가 있어 다른 물고기가 이것을 따먹으려고 달려들면 잡아먹는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구를 한자로 ‘조사어’(釣絲魚)라고 적고 있다.
우리 연안 어디서나 나는 아구는 바다 밑에 돌덩이처럼 납작 엎드려 있다 지나가는 어족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심지어는 낚시 모양의 촉수 를 이용해 다른 고기들을 유인해서 잡아먹는 흉측함마저 보여준다. 몸집 의 대부분을 큰 머리와 입이 차지하고 있어 ‘아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통자루처럼 큰 배도 마음대로 불어나 웬만한 물고기는 날름 삼켜놓 고 있다가 차례로 되새김질을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그물에 아구가 걸리 면 배를 가르고 그 속에 있는 조기, 전어 등 생선들을 꺼내고 아구는 내 팽개치곤 했다. 몸무게가 무려 10㎏ 넘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5∼7㎏에 이르러 다루기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제아무리 큰 것도 살은 꼬리부분 에 한두토막 붙어 있을 뿐, 탱크 같은 머리와 밥주걱처럼 너울거리는 지 느러미, 쪽 빠진 꼬리를 제외하고 나면 먹을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안목은 이 흉물을 세상에 없는 별미로 둔 갑시켜 놓았다. 아구의 큰 머리와 아가미살, 지느러미와 꼬리 그리고 풍 성한 뱃살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맛과 영양분을 동시에 얻어내고 있다. 바로 아구찜이다. 뱃전에 내팽개쳤던 것이 황태처럼 마르면 다시 거두어 툭툭 토막내 콩나물과 미나리를 넣고 고춧가루로 양념해 볶아먹었던 것이 지금의 마산 아구찜의 유래가 됐고, 생것을 다듬어 뻘겋게 찜을 해낸 것 은 서울과 부산의 생아구찜이 됐다.
서울 신사동네거리 아구골목에는 아구찜 원조집만 10여곳이 줄지어 있다. 골목의 내력은 길 하나 사이를 옮겨가며 15년을 넘었다. 이곳을 찾는 손 님들은 몸이 찌뿌드드하거나 입맛이 없으면 사계절 구별없이 찾아온다. 남녀노소도 따로 없다. 특히 아구찜이 제맛나는 계절로 접어든 요즘 웬만 한 곳은 자리를 기다려야할 정도로 비좁다. 그래서 무엇보다 어느 집이 정갈하고 친절을 잃지 않은 곳인지를 찾는 것이 아구찜을 제맛나게 먹는 요령이다.
(사진/아구와 콩나물, 미더덕 등이 빨갛게 조화를 이룬 아구찜. )
아구골목 중심 네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마산 방박사 아구찜’(02-572-2 580)은 이 골목에 터잡은 지 이제 겨우 3년을 갓 넘긴 신참집이다. 하지 만 신참집답게 주인 방인택(49)씨 부부가 직접 손을 걷고 나서, 싱싱한 아구는 물론 고추와 마늘을 사러 전국을 누빌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 고 추는 경북 영양고추와 전북 무안·진안·장수의 앞글자를 딴 무진장고추 를 적절히 배합해, 알맞게 매우면서 뒷맛은 달다. 마늘은 경북 의성과 충 북 괴산쪽의 것을 웃돈을 얹어주고라도 사다가 쓸 만큼 양념에 관한 한 까다롭기가 이를 데 없다.
그 열성은 상차림에도 이어진다. 우리 고유의 음식은 색깔과 모양을 개선 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 탓인지 상차림과 꾸밈이 깔끔하면서 화려하다. 비 록 맵고 단순한 음식이지만 한상 가득 차려놓으면 한결 먹음직스럽다. 화 학조미료 대신 다시마와 멸치, 양송이와 대파 등을 넣고 뽑아낸 육수로 조리해 맛이 깊고, 알맞게 데쳐낸 콩나물이 아삭아삭 씹히며 매운맛을 감 싸준다. 싱싱한 미더덕이 톡톡 터질 때마다 싱그러운 바다내음이 입안 가 득 퍼진다. 금방 찜을 해낸 아구살은 흐물흐물하면서도 탄력있고 질감이 입안에 녹듯 부드럽다.
아구찜은 특유의 얼큰한 여운을 남긴다. 그 기운이 입안에 서서히 번지며 온몸을 훈훈하게 달군다. 한여름에는 땀에 흥건히 젖는 묘미가 있고, 요 즘처럼 찬바람이 이는 때는 오히려 추위가 상큼하게 느껴지는 묘한 효과 를 발휘한다.
아구찜의 진미는 아가미·턱살
어두봉미(魚頭鳳尾)란 아구찜에서 가장 실감난다. 아구찜은 다른 생선과 달라 고기를 많이 달라고 주문하는 손님은 별 대접을 못 받는다. 아구는 아가미와 턱살, 큼직한 지느러미, 말랑말랑한 뱃살이 일미다.
아구찜은 맵지만 따끈할 때 먹어야 더 맛이 난다. 콩나물은 씹히는 질감 뿐 아니라 매운맛을 감싸는 효과를 낸다. 그래도 매울 때는 미더덕을 톡 깨물면 된다. 물씬 뿜어나오는 바닷물에 매운맛이 한번 더 씻기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얼음이 자박자박 들어 있는 물김치를 한모금 들이키면 입안 이 개운해지면서 손이 다시 아구찜으로 가게 마련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