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만세

기저귀, 아이도 귀찮다

돌이 지난 지 6개월이나 되었는데도 대소변을 못가리는 아기들이 있다. 그러면 간혹 부모들은 우리 아기가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고 호들갑을 떤다. 친구의 또래 아기는 벌써 기저귀를 뗐는데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는 부러움과 근심이 교차한다. 우리 아이만 남 들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다가 자꾸 변기에 앉혀보기도 한다 .

아이들은 누구나 어릴 때는 기저귀를 찬다.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니 대소변을 기저귀로 받아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이 지나면 ‘끙’이나 ‘쉬’한 뒤에 부모에게 알릴 수 있고, 한돌 반이 되면 이제는 부모에게 미리 알릴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기저귀를 안 쓰게 되고 자신의 힘으로 대소변을 보고 뒤처리까지 한다. 그러나 말은 간단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아이가 대소변을 잘 가리게 하려면 부모의 인 내심과 함께 느긋함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초등학교에 기저귀 차고 가는 아이가 있는가? 다른 문제만 없는 아이라면 때가 되면 다 가리는 것 이 대소변이다. 아둥바둥 아이와 싸움하면서 대소변 연습을 시킨다고 더 빨리 가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가 대소변 가리기를 할 때가 되 었음을 알고 도와준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대소변 가리기는 보통 18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아이가 준비되었을 때 시작할 수 있다. 대체로 소변보다 대변 가리기가 더 쉬워 먼저 가린다. 남자 아이보다 여자 아이가 좀더 빨리 가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놀랍 게도 만 3세가 되어도 대소변 가리기를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3명 중에 한명꼴이다. 따라서 두돌이 지나서 대소변 가리기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다만 아이가 대소변을 가릴 준비가 되었는데도 부모가 모르고 마냥 기저 귀를 채워두는 것은 곤란하다.

만일 아이가 2시간 이상 기저귀를 적시지 않고, 배변이 규칙적이 되고, 옷을 내리고 화장실을 갈 수 있고, 변이 묻은 기저귀를 싫어하고, 변기를 사용하고 싶어한다면 대소변 가리기를 시작해볼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 다. 아이를 잘 관찰해서 얼굴이 상기되고 표정이 변하거나 엉거주춤 엄마 를 쳐다보고 변을 보겠다고 표현할 때 아기변기에 앉혀본다. 부모도 나란 히 어른변기에 앉을 수 있다면 더 좋다. 아기가 싫어하면 바로 중단해야 한다. 변기에 앉혔는데도 5분 안에 변을 안 보면 중지하는 게 좋다. 대소 변 가리기는 아기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 했다고 언짢은 표정을 짓거나 야단을 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대소변 가리기 초기에 한동안은 아이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대 소변을 누고 난 뒤에 부모에게 알려준다. 평소 말 잘하고 잘 알아듣는 아 이가 ‘쉬’나 ‘끙’ 하고 싶다는 한마디를 말하는 게 간단할 것 같지만 그게 맘대로 안 된다. 이럴 때는 나중에라도 알려준 것을 칭찬해주는 것 이 좋다. 격려받은 아이는 조만간 누기 전에 알려줄 것이다. 간혹 대변은 더러운 것이라는 걸 아이에게 강조하는 부모가 있는데 아이들은 대변을 자기 몸의 일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 떤 아이는 몸에서 버리기 싫어서 변을 참기도 한다. 부모가 변에 대해 너 무 더럽다는 표정을 지으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고 버리는 것이라는 정도만 담담한 태도 로 알려주는 게 좋다.

대소변은 부모가 아니고 아이가 가리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아 이가 준비돼야 가릴 수 있다. 대소변 가리기를 조기교육의 일부인 것같이 오해하는 부모가 있는데, 대소변을 빨리 가리는 것과 다른 행동발달의 진 도는 상관이 없다. 빨리 가렸다고 더 똑똑한 것도 아니다. 너무 일찍 대 소변 가리기를 시키려다가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쉽고 일단 성공하 더라도 나중에 다시 못 가리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절대 아이를 재촉해 서는 안 된다. 또하나 주의할 것은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를 비교하거나 아파트의 또래와 비교하다가는 마음만 바빠지 고 그 초조함을 아이들에게 들켜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대소변 가리기는 때가 되면 다 하는 것이니 느긋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정훈/ 소아과 전문의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