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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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자작나무’에서 일하는 성연희(28)씨는 얼마 전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아무런 장식없는 하얀 겉봉엔 검정 글씨로 남자친구의 이름이 적 혀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데서 오랫동안 못느꼈 던 정성이 묻어났다. 그동안 밤늦게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했고, 수시로 삐삐를 치는 사이였지만 편지는 조금 낯설었다. ‘설마 장난을 치는 건 아니겠지.’ 여태껏 한번도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기에 그런 생각마 저 들었다.
“우리가 만난 지 꼭 1년이 지났다. 만난 지 1년이 아니라, 만나 서로를 알고 사랑한 지 1년이 지났으면 좋겠다.”
편지는 평소 그답지 않게 진지하게 시작했다. 어느새 훌쩍 지나친 시간을 기억해낸 그의 마음이 기특했다. 더구나 그런 말을 만나서 하지 않고, 전 화나 삐삐로 하지도 않고, 글로 써서 보내온 게 기뻤다. 발그레한 미소가 절로 번졌다. 깊어가는 가을, 누군가로부터 정이 담긴 편지를 받고 싶었 는데, 그게 이루어진 것이다.
바삐 살면서 편지를 쓰는 것도, 받는 것도 잊게 됐다. 편지지에 글을 쓰 고, 그걸 정성스레 접어 봉투에 넣고, 겉봉에 주소를 적고,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서 붙이고. 그런 과정들이 언젠부터인가 귀찮아졌다. 어쩌다 기 억해야 할 날엔 전화를 걸어 만나는 게 편했다. 편지는 그런 무심함을 부 끄럽게 만들었다.
“그동안 큰 추억거리를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둘이 찍은 사진도 많지 않지만, 또 둘이 함께 한 여행도 별로 없지만, 앞으로 채우면 되겠지.” 편지에서는 그의 따뜻함이 배어났다. “이해심 많고 잘 웃는” 성씨의 모 습을 좋아한다고 했다. “작은 일에 짜증을 내고 큰일에는 오히려 초연하 거나, 세상의 근심을 짊어지고 사는” 듯한 모습은 안타깝다고 했다. “ 항상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생각을 품어라”고 당부도 했다.
편지는 출판사 사람들도 기쁘게 했다. 그들은 “연애 1주년 기념선물로는 최고”라며 성씨를 추어올렸다. “눈꼴시어 못봐주겠다”는 장난말도 건 넸다. 둘 사이를 아주 부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잊었던 편지의 따뜻함을 되살려준 것에 모두 즐거워했다.
성씨는 조만간 답장을 보낼 생각이다.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쁨을 그대로 고스란히 그에게 돌려줄 작정이다. 그 마음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 걱정이 다.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20일 제 1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