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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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국가기관을 멋대로 이용했나
표지이야기 ‘국가기관이 사유물인가’는 정치공작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 사였다. 여권의 부도덕함은 ‘국민의 제보’라는 허무맹랑한 궤변으로 시 작했다. 결국 그것이 사실이 아님은 발표 당사자의 번복으로 백일하에 드 러났다.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국가기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현 실이 비자금 사건의 전말이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청와대의 개입 여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회창 대표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라면 <한겨레21>의 기사는 중대한 오보일 수 있다. 모든 책임을 김영삼 대통령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유보 결정으로 비자금 사건은 땅에 묻히고 말았지만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내용은 검찰의 몫이라 할지라도 국가기관을 사유물로 여긴 당사자에 대한 추적은 언론의 몫일 수밖에 없다. 끝까지 추적하기 바란다.
김진현/ 천리안 ryuja
새만금호, 그 비극은 어디까지
특집 ‘최대의 똥물통 새만금호’의 비극에 가슴이 아프다. 2001년 새만 금종합개발이 완공되면 서해안 지도가 바뀌며 경제적 파급효과가 지대하 다는 장밋빛 환상에 도취된 결과일까. 당국의 저돌적인 시행착오에 국토 는 곳곳마다 망가지고 말았다. 생태계 전반에 걸쳐 치밀한 사전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새만금호 건설은 골칫거리일 뿐이다. 우선 당장만 생각하 고 왜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일까. 어릴 때 말끝마다 삼천리 금수 강산을 말했지만 이젠 이 땅이 쓰레기더미로 바뀌고 말았다. 무분별한 국 토개발이 마음 놓고 숨쉴 곳도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 다. 자손만대 살아갈 이땅에 생태계의 파괴를 낳는 제2의 시화호는 다시 없어야 한다. 살기 좋은 자연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하는 것은 죄악 이다.
채규정/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729
개발을 무조건 막을 수 없다
개발이 먼저인가, 보존이 먼저인가. 대개는 보존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한 다. 하지만 보존도 대책이 있는 보존이어야 인간을 위하는 길이다. 자연 을 경제적인 효용성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무 조건적인 보존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대책없는 개발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대책없는 보존도 의미없기는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 다. 지역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사정은 생각하지 않은 채 무조건 개발은 나쁘다는 식은 옳은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 사라 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기 이전에 보존에 매달릴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게 순서라 생각한다. 물론 개발에 따른 환경·생태계 파괴의 피해를 줄이 려는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을 자치단체에 몽땅 떠넘기는 것은 바람 직하지 않다. 개발의 환상을 심어준 것은 정부의 특정지역에 대한 무관심 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김덕호/ 전북 군산시 경암동 668-1 11/3
무차별 단속에 멍드는 청소년 인권
진단 ‘청소년들에게 하지 말라고만 할 것인가’는 요즘 시점에서 적절한 기사로 여겨진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청소년보호법 시행과 관련해서 취해지는 조치들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 낌이다. 그러나 단속 위주의 정책은 방향을 엉뚱하게 잡은 것 같다. ‘하 지 마라’며 막는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청 소년들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10대 시절도 되돌아보 면 참 답답하고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금지와 강요만 있었을 뿐, 숨 쉴 공간이 없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청 소년들도 인간이고, 그들에게는 인권이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단속위 주 정책이 청소년들의 인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 는 청소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흥녕/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5가 고려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청소년 문제, 누구를 탓할 건가
청소년보호법의 허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느 초등학교 6년생의 윤 락생활을 듣고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모의 딸도 딸인데 어떤 정신 적·육체적 고통을 주었으면 집을 나와 사창가에 갔을까.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나름대로 자기 몸을 팔면서까지 자기가 갖고 싶은 것 등을 사고 싶거나 돈을 쉽게 벌기 위해 일부러 사창가를 찾기도 한다니 놀랍기만 하 다. 더욱 문제인 것은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른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문화공간, 자유로운 대 화의 창구가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도 어린 아이들을 유혹의 길로 내모는 이유가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모들 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부의 공평한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구조의 문제도 청소년의 탈선을 조장하기 쉽다. 청소년 문제를 사회 구조 속에서 풀어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상원/ 서울시 종로구 청진동 284-1
클래식 음악가, 더 가까이 오라
문화 ‘정명훈, 너마저도’는 음악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에 충분했다. 객관적인 처지에서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를 도운 것도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적절히 조화시킨 게 바로 <열린 음악회>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솔직히 그동안 클래 식 하면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나 그와 관련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인식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찌되었든 클래식 음악인들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 이전에 대중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생각하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인들이 또다시 울타리를 치려 한다면 <열린 음악회>를 통해 형성된 클래식 대중화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일 뿐 이다. 클래식 음악인들은 보호막을 칠 게 아니라 <열린음악회>보다 더 대 중화된 프로그램으로 대중들이 클래식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한다.
김재연/ 충북 괴산군 증평읍 미암리 1구 649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13일 제 18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