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먹지 않는 즐거움!

(사진/창문을 활짝 열고 이불을 덮었다 벗었다 하며 바람에 몸을 맡기는 풍욕. 피부단련을 통해 인체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자연요법이다.)

그들은 지독하게 굶었다. 나흘 동안 한끼도 먹지 못했다. 물과 죽염만으 로 지탱했다. 벌써 닷새째.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그늘 같은 건 없었다. 먹거리를 향한 애타는 그리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굶주리는 북녘동포들 을 보는 듯한 동정과 연민을 나타냈다면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른다. 오히 려 눈빛은 반짝반짝 살아있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힘이 솟구 칩니다. 지금 100m 달리기를 하라면, 고기 먹고 뛰는 것보다 더 잘할 거 예요.”

고통과 인내, 그리고 평안

먹는 즐거움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 대신 먹지 않는 즐거움을 자랑하는 사람들. 충북 영동의 천화단식수련원에서는 한창 ‘행복한 굶주 림’이 진행되고 있었다.

영동군 심천면에서 자동차로 산길을 한시간. 피리 부는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천모산 자락 안으로 깊숙히 빨려들어 간다. 천화단식 수련원이 있는 곳은 바로 그 여인의 배꼽 자리라고 했다. 기 수련단체인 단학선원이 지난 88년 청소년수련원으로 세운 이곳은 그동안 단학선원 회 원들만을 대상으로 자연요법과 운동요법 중심의 단식수련을 해왔다. 일반 인들에게 최초로 문을 연 것이 올해 8월의 일이다.

10월21일, 단식 나흘째. 이날 점심때도 천화단식수련원 고유의 수련이 진 행됐다. 단식 시작 뒤 영동시내로 처음 ‘외출’한 수련생 48명 전원이 다다른 곳은 시장통 음식점 거리. 좌판의 떡볶이부터 제과점의 빵 굽는 냄새, 김치찌개와 매운탕, 숯불갈비까지 온갖 ‘음식향기’들이 코를 찌 르는 그 길을 그들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만약 어설프게 굶었다면 “누 구 약 올리려 작정했냐”며 성을 냈을지도 모른다. 허기질 대로 허기진 이들에게 냄새만 맡아보라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 아무 생각도 없었다. “별로 먹고 싶지도 않아요. 왜 이리 음식을 탐하 는 마음이 안 생길까요.” “음식냄새가 탁하게 느껴져요. 구역질이 날 것 같아요.” 그들은 이른바 ‘금촉수련’(禁觸修鍊)이라는 것을 달게 받 아들일 만큼 몸과 마음이 ‘평안’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 ‘평안’이 그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고통의 고비를 넘어서지 못한 자에게 그것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꾸 의식이 흐 려지고 몸이 처지고… 셋째날엔 한발도 떼기 힘들더라구요.” “둘째날, 온 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계속 아팠어요.” “물만 먹어도 속이 뒤틀리 고 배에 가스가 차고….” “셋째날 위경련이 일어나 손을 따고 난리를 쳤지요. 어지러워 눈을 못 뜰 지경이었어요.”“둘째날은 헛구역질에 토 하느라, 어휴…."

굶으면서 쉰다고? 천만에…

이들이 참여한 단식수련은 7일간의 일정으로 짜여진 ‘일반단식’. 완전 히 굶는 4일간의 본단식과 하루에 두끼씩 죽을 먹는 3일간의 보식기간으 로 이뤄져 있다. 천화단식수련원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이진원 부원장( 47)은 “여기 오시는 분들은 하드 트레이닝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 했다. 굶으면서 쉰다고 가볍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자유시간 도 하루에 한시간뿐. 아침 5시에 일어나 저녁 10시30분까지 프로그램이 계속된다. 30대의 한 남성 수련자는 “단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 큼 바쁘다”고 소개했다. ‘군대에서나 받을 법한 극기훈련’이라는 말도 나왔다. 왜 그들은 그러한 ‘고행’을 사서 할까.

단식은 많은 자연의학자들로부터 가장 탁월한 건강회복법으로 불려왔다. 일시적으로 음식을 끊어 몸을 최악의 상태로 끌어내림으로써 자연치유력 을 극대화시키는 인체 대숙정 혁명. 그래서 단식을 ‘칼을 대지 않는 수 술’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천화단식수련원을 찾은 이들도 대부분 그러한 기대감에 차 있었다. 만성질병으로 고생하면서 병원에서 별 효과를 보지 못한 이들이야말로 가장 절실했다. “신경성 위염으로 1천만원을 날렸습 니다. 조선팔도 한약방을 다 돌아다녀봤다는 거 아닙니까. 시골에서 6개 월 요양도 해봤지만 다 헛겁디다.” 대구에서 왔다는 이운근(33)씨는 강 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B형 간염으로 고생하다 들어온 최동기(34·전남 해남)씨도 마찬가지였다. “인터페론 주사도 맞았는데 치료결과가 기대만 큼 안 나왔어요. 늘 피곤하고 숙면도 못 취하고 너무 고생했는데… 이곳 이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물론 ‘치료목적’이 전부는 아니었다. 순수하게 체질개선과 심신수련만 을 위해 들어온 이들이 절반을 넘었다. 다이어트와 금연을 위한 이들도 일부 있었다. 소수지만, 신변정리를 위해 단식을 결심하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한 30대 중반 여성의 수련신청서에 적힌 수련목적은 ‘이혼 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 한 30대 초반의 남성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친한 친구가 바람을 펴 도덕적 책임감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토로했 다. 심산유곡에서 잠시 세상과 등지고, 몸과 마음을 함께 깨끗이 비워보 겠다는 것일게다.

(사진/"나는 자유다, 나는 하늘이다." 한 사람씩 헹가래를 받으면서 소리를 신나게 질러본다. )

마음이 얼마나 비워지는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몸을 비우는 것은 확실 해 보였다. 첫째날부터 닷새날 아침까지 총 아홉번 줄기차게 벌어지는 ‘ 관장’이 그중의 하나였다. ‘관장’이란 알다시피 몸안에 남아있는 숙변 을 인위적으로 뽑아내는 것. 마그밀이라는 약품을 가느다란 호스를 통해 항문에 주입함으로써 이뤄진다. 그런데 별난 것은 수련자끼리 파트너를 정해 서로 호스를 넣어주는 것이다. 10여명이 한방에서 아랫도리를 벗고 서로의 항문에다 ‘작업’을 벌이는 건, 제3자가 볼 땐 진풍경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수련자들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서로 벽이 없어집니다. 며칠 사귀지 않은 분들이지만 수십년지기 친구처럼 금방 친해지지요.”

세상이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진풍경 또 하나. 풍욕이다. 쉽게 말해 바람에 몸을 씻는 목욕. 7일간 매 일 아침저녁으로 실시하는 풍욕 방법은 이렇다. 불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연 뒤 옷을 벗고 좌정한다. 산바람에 몸을 맡기고 30초. 그리곤 이불을 뒤집어쓴다. 다시 30초. 이불을 벗는다. 시간간격을 조금씩 늘려가며 그 렇게 이불을 벗었다 뒤집어썼다 반복하기를 30분. 공기의 온도차이를 통 해 피부를 단련시키는 자연요법의 하나라는 게 수련원쪽의 설명이다.

풍욕과 함께 매일 해야하는 또 하나의 목욕, 냉온욕도 있었다. 일반인들 에게도 많이 알려진 건강법이다. 냉수와 온수를 1분씩 번갈아가며 30분간 샤워하는 것이다. 진짜 목욕탕에서의 ‘겁나는’ 냉온욕도 치러졌다. 처 음 냉탕에서 무려 25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박영희(35·대구)씨는 정 말 냉탕에 들어가기 싫었단다. “너무 차가워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이 를 악물고 한 5분 있으니까 몸에서 열이 나면서 물이 미지근해지는 느낌 이었어요.” 이 밖에 내장기관의 탁기를 배출하기 위해 한다는 된장찜질 도 이색풍경이었다. 된장을 볶아 배 위에 깔고 그 위에 뜨거운 물수건을 올려놓은 뒤 4시간을 참아야 했다. 발바닥을 시원하게 자극한다는 맨발등 산도 고생스럽긴 했지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단식에 들어가면 보통 둘째날과 셋째날이 고비라고 한다. 주체할 수 없는 식욕에 가장 괴로운 것도 이때다. 큰 대자로 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든 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련자들은 그 가운데서도 ‘신체수련’을 피할 수 없다. 몸을 끌고당겨 이완시켜주는 도인(導引)체조, 단전호흡, 행공수련 에 참여해야 한다. 특히 팔과 다리를 치켜올리고 상당한 시간 동안 숨쉬 기를 해야 하는 행공동작은 인내심 없이는 힘든 것이다. 그래도 수련자들 은 잘 따랐다. “단식의 고통을 이기고 몸안에 기운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선 자신의 몸을 자꾸 부려야 합니다.” 이진원 부원장은 단식의 보조적인 요법으로 기 수련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런 과정 속에서 진짜로 비워지는 건 몸보다 마음이라는 게 수련자 들의 한목소리였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세상에 대한 집착이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의 한 남성수련자는 이렇게 고 백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었 던 잡다한 일들이 소소하게 느껴집니다. 아웅다웅 살았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요. 세계가 넓은 눈으로 보입니다.” 그는 마음을 밝게 해주는 정신수련 프로그램이 큰몫을 했다고 덧붙였다.

“불사조처럼 살 것 같아요”

(사진/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려주는 명상시간. )

10월22일, 단식 닷새째 점심. 처음으로 음식이 나오는 날이었다. 작은 그 릇에 담긴 흰쌀미음 120g. “한번 입에 넣은 뒤 꼭 2백번씩 씹으세요.” 진행요원이 두세번 반복해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단식은 보식이 가장 중 요하다고 한다. 단식 뒤 잘못 음식을 입에 대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를 세면서 우물우물 죽 알갱이를 씹는 사람들. 공기 한 그 릇 비우는 데 두 시간이 걸린다. 화장실에선 식사를 마치고 볼일을 본 남 성수련자의 탄성이 터진다.“방금 먹은 미음이 똥으로 나왔어. 정말 장 속에 아무것도 없나봐.”

여성 수련자들의 얼굴은 더 밝아보였다. 김은옥(42·충북 괴산)씨는 자신 의 혈색을 자랑했다. “나 어때요? 여기 오기 전엔 화장 안 하고는 못 다 녔는데, 이젠 맨 얼굴에 자신이 생겨요.” 박영희(35·대구)씨도 “놀랍 다”고 활짝 웃었다. “난시 때문에 안경을 조금만 안 끼고 활동해도 눈 이 충혈됐지요. 그런데 지금은 말짱해요. 정말 신기해요.”

이진원 부원장은 단식의 진정한 본질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강 조했다. “자신감이 없는 분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과의 투쟁 에서 이겨보십시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그만큼 큰 재산은 없다고 확신합 니다.” 건강은 오히려 부산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10월25일, 일곱쨋날. 단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지막 날이었다. 차에 오 르는 수련자들은 저마다 가기 싫은 눈치였다. 물 맑고 공기좋은 산골, 좋 은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섭섭함이 거기에 배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앞에는 ‘먹는 즐거움이 있는’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떠나는 그들은 자신만만했다. “불사조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식하던 인 내심으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천화단식수련원 0414-44-7720)

충북 영동=글·사진 고경태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