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맛 기행

장충동 족발, 군침도네!

돼지의 족(足)은 예로부터 각별한 먹거리로 여겨져왔다. 맛과 영양가는 물론 조리방법이 다양해 중국은 물론 서양사람들도 족만은 버리지 않고 요긴하게 쓰고 있다. 우리의 돼지족은 재래의 사육과정과 모양새 때문에 다소 혐오스럽기는 하지만, 잘 조리해 격식을 갖춰 놓으면 어디에 내놓아 도 손색없는 먹거리임에 틀림없다.

노인들이 돼지족의 가치를 평가하는 소박한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퍽 인상 깊다. 마을에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 뒤, 뼈를 흐트려놓은 걸 보면 아무리 푹 고아도 족뼈에만은 유난히 개미가 새까맣게 달라붙는다는 것이 다. 그리고 다른 뼈들은 햇볕을 쏘이면 하얗게 색이 바래지만 족뼈만큼은 노란 진액이 계속 배어난다고 한다. 또 겨울철 날씨가 제아무리 춥더라도 돼지족에 동상걸렸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족에는 다른 부위에 는 없는 신비한 활력소가 들어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산모가 젖이 나오지 않을 때 돼지족을 푹 고아 먹으면 거뜬히 해결되곤 한다며 족발 예찬을 줄줄이 엮는다.

실제로 돼지의 족을 푹 삶으면 뽀얀 물이 우러나고, 식으면 투명하게 굳 어 묵처럼 된다. 풍부한 동물성 젤라틴 덕이다. 이렇게 엉키는 성질을 이 용해 예전에는 족편을 만들어 귀한 상에 올렸고, 찜을 하거나 푹 고아 일 반 가정에서도 즐겨 먹었다. 하지만 족편은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 쉽게 접할 수 없게 됐고, 찜을 좀더 효과있게 해낸 족발은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서울 장충체육관 앞길에는 족발 전문집이 10여곳 줄지어 들어서 족발거리 를 형성하고 있다. 그 유래가 6·25전쟁 직후까지 거슬러올라가 20∼30년 이 훨씬 넘는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옥호도 거의가 원조집이고 할머니집이다. 대부분 30대를 전후해 시작한 주인들이 이제는 60∼70대를 헤아려 실제로 할머니들이거나 은퇴해 들어앉은 이들도 있다. 한마디로 족발의 본고장이다.

이곳 족발거리의 중간쯤, 골목 안으로 몇걸음 들어가면 맛과 분위기가 족 발 본고장으로 손색없는 평안도집(02-279-9759)이 있다. 35년 전 문을 연 이곳은, 지금의 주인 이경순(63)씨가 대를 물려받은 것만도 25년째를 맞 는다고 한다. 학창시절 빙상과 테니스선수이기도 했던 활달한 성격의 이 할머니는 20년이 넘게 몸에 밴 솜씨로 직접 족발을 다루고, 족발 맛에 대 한 자부심 역시 남다르다. 족발 맛은 첫째, 싱싱한 족을 골라오는 데서 비롯한다고 한다. 금방 잡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족을 사와야 한다는 것 이다.

장충동 족발집들은 대부분 개업 때 장국을 지금까지 대를 이어오며 쓰고 있다. 그래서 평안도집에도 35년을 이어오는 장국솥이 있다. 이 할머니는 이 솥이야말로 족발의 고유한 맛을 내는 가장 큰 밑천이라고 자랑한다. 그리고 장이 너무 짜지거나 싱거워지지 않고 알맞은 간을 유지하도록 관 리하는 것 또한 중요한 노하우다. 장국은 수십년을 두고 매일같이 끓여내 이제는 족에서 우러난 기름과 수분이 졸고 또 졸아 얼핏 튀김기름처럼 진 하다. 웬만한 더운 날씨에도 상하지 않을 정도다.

장국은 간이 맞고 색깔도 선명해야 한다. 그래야 하루에도 수백개씩 삶아 내는 족발의 간이 한결같고 먹음직스런 초콜릿 빛깔로 기름을 바른 듯 반 들반들 윤이 난다. 이런 장국에 삶아낸 족은 수분과 기름이 쪽 빠지고 살 이 돌덩이처럼 단단해지고 껍질은 마치 종잇장처럼 얇게 달라붙는다. 외 국사람들까지 찾아와 먹어보고는 서양의 햄을 능가하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비법이라며 감탄한다고 한다.

장충동 족발은 냄새가 없고, 싱싱한 살결이 선명하게 꽃무늬를 그린다. 또 맛이 담백하면서 손에 기름이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다. 간이 알맞아 얇게 썰어놓고 간식으로 한두점씩 집어먹어도 좋겠지만, 소주에 곁들여야 제격이라는 것이 애주가들의 견해다.

조선장·생강으로 족발 맛 결정

장충동 족발을 ‘장충동 족발’이란 고유한 이름으로 부르는 데는 그럴만 한 이유가 있다. 이곳 족발집들은 족발의 맛을 결정하는 족발장이 어느 집이나 20년 이상 된다. 시중에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쓰는 계피나 감 초 따위의 약재나, 윤기가 나도록 첨가하는 카라멜과 물엿 등을 일체 넣 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족발 고유의 맛이 사라진다고 한다. 평안도집에 서도 족발장의 기본은 직접 담근 조선장과 생강이 주축이다. 파, 마늘 등 의 양념이 가미됐을 뿐이다.

싱싱한 족이 장국솥에 들어가 3∼7시간을 끓고 나면 간이 배면서, 기름과 수분은 말끔하게 빠져나가고, 깔끔한 살덩어리로 탄생한다. 지방을 완전 히 제거해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풍부한 젤라틴과 비타민B1 등은 겨울철 건강식으로도 나무랄 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