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제2율곡비리 작전중?

(사진/96년 5월 진수된 제6호 잠수함 정운함. 대우종공업이 독점해온 잠수함사업은 초기부터 건조가격이 국제가격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방부가 대양(大洋)해군 건설을 목표로 추진중인 차기 잠수함사업(SSU) 이 제2의 율곡비리로 비화될 것인가?

지난 10월25일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하경 근 의원은 “대형 방위력 개선사업은 사업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면 서 국방부의 차기 잠수함사업을 둘러싼 의혹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에 대해 고건 총리는 “209 개량형 잠수함 획득사업은 현재 최종단계 평 가분석을 실시중이며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규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 고 투명성있게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개량사업 아니다” 수의계약에 이의제기

차기 잠수함사업을 둘러싼 문제가 수면 위로 본격 부상한 것은 지난 10월 9일. 현대그룹이 차기 잠수함사업의 사업방식과 업체선정의 불공정성을 공개리에 들고 나온 것이다. 방산업체간의 나눠먹기와 권력을 상대로 한 은밀한 로비, 거액의 커미션 수수 등이 관행화돼 있는 방산 사업자 선정 과 관련해 민간업체가 국방부에 정면에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군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공개 자체가 금기시돼 온 것이 현실이다. 발칵 뒤집힌 것은 국방부. 국방부 안 에서는 “현대가 이제 방위산업을 안 하겠다는 것이냐”, “현대가 많이 컸다”는 등 불쾌하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현대의 발표로 입장이 난처해 지긴 했지만 국방부는 예정대로 다음날인 10일 이정린 국방부 차관 주재 로 국방부, 합참, 해군의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확대획득협의회 를 열었다. 그러나 회의는 예정됐던 사업 추진방식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현재 해군이 보유중인 잠수함은 대우중공업이 독일의 HDW사에서 도입해 조립생산한 1천2백t급 209형. 대우는 지난 87년 3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3차례에 걸쳐 9척을 독점수주했고 이중 일부는 건조를 끝내 이미 군에 넘겨졌다.

국방부가 오는 2000년 중반부터 납품받는 것을 목표로 추진중인 차기 잠 수함사업은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공기무관추진) 시스템 등 새로운 무기체계를 장착한 1천5백t급 잠수함 O척을 제작하는 대형 프로젝 트. 전체 사업비가 2조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AIP 시스템 은 잠수함이 물 속에서 작전을 할 때 동력원이 되는 축전지의 충전율을 기존 디젤엔진보다 훨씬 향상시키는 장치다. 군 전문가들은 AIP를 실은 잠수함은 수중 작전일수가 기존 잠수함의 4∼5배인 20일까지로 늘어난다 고 말한다. 차기 잠수함에는 AIP 이외에도 수중에서 장거리 표적을 효과 적으로 탐지할 수 있는 FAS(측면배열소너)장치와 야간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식별할 수 있는 적외선잠망경이 장착된다.

문제는 국방부가 이 차기 잠수함사업을 기존의 209형 잠수함의 개량사업 으로 간주해 대우와 일괄 수의계약방식으로 추진하려는 데서 비롯됐다.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해야 하는 새로운 무기체계획득사업과 는 달리 단순 개량사업은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국방부는 차기 잠수함사 업은 단순한 성능개량사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자 아예 관련규정인 무 기체계 획득관리규정의 ‘한시적 특정사업’으로 처리해 복수경쟁을 통하 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한시적 특정사업의 경우 국방부의 획득협의회에서 별도의 규정을 신설하면 마음대로 사업을 추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국방부가 한시적 특정사업 규정을 적용시키려는 의도가 차기 잠수함을 수의계약으로 진행시키려는 데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대해 현대는 차기 잠수함은 기존 209형 잠수함과는 무기체계가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하는 국외기술도입건조에 해당 하는 만큼 규정대로 복수경쟁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또 차기 잠수함사업은 해군 전력강화사업의 일환으로 기간이 10년 가까 이 소요되는 중장기사업인 만큼 한시적 특정사업 규정을 적용하려는 것은 특정업체와의 수의계약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펄쩍 뛴다.

초기사업에도 정치자금 개입 흔적

잠수함 건조는 첫 출발부터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사업이다. 우리 군의 잠수함 보유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75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 절로 거슬러올라간다. 베트남 통일 등 당시 국내외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 가자 박 대통령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현 명예회장)을 직접 불러 잠수 함 개발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잠수함 보유 꿈은 미국의 집요한 견제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잠수함사업이 다시 햇빛 을 보기 시작한 것은 12년이 지난 87년 초.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임기를 1년 정도밖에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잠수함사업을 위한 특별사업단 구성 을 지시했다.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대통령선거일 직전 209형 잠수함 사 업자로 대우를 전격 선정하고 3척을 발주시켰다. 방산물자를 생산하기 위 해서는 국방장관으로부터 물자지정을 받은 뒤 상공부 장관으로부터 방산 업체 지정을 받도록 돼있는 관련 법 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 문제 가 노태우 대통령의 집권 초기인 2년째인 89년 뒤늦게 국회에서 율곡비리 의 연장선에서 터져 나오자 정부는 물자지정과 방산업체 지정을 사후적으 로 편법처리했다. 군에서는 미국의 반대 등 사업의 성격상 극비리에 추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잠수함 건조가격이 국제가격에 비해 지 나치게 비싸다는 지적과 함께 그 차액의 상당부분이 권력의 핵심부로 흘 러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과 방산업계에서는 차기 잠수함이 209 개량형으로 결정된 과정에도 많 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잠수함은 통상 수중 작전기간과 탐지성능, 무 장능력 등의 차이를 토대로 2천∼3천t급은 대양형의 중(重)잠수함으로, 1 천1백∼1천8백t급은 연안형 잠수함으로 분류한다. 국방부는 89년부터 차 기 잠수함은 대양형인 3천t급 잠수함으로 도입한다는 장기계획안을 세웠 다. 그러나 95년 안병화 해군 참모총장이 취임하면서 이 계획은 크게 바 뀌게 된다. 1천8백t급 잠수함을 먼저 건조해 잠수함 설계 및 건조 기술을 축적한 뒤 3천t급은 우리 기술로 건조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우여 곡절 끝에 1천8백t급 잠수함은 다시 보다 작은 1천5백t급으로 바뀌게 된 다. 군 관계자들은 해군이 대양해군을 지향한다면서도 굳이 대양형 잠수 함을 마다하고 이미 보유중인 209형과 마찬가지로 연안형인 1천5백t급 도 입을 고집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군과 방산업계 관계 자들 중에는 최소 10년 이후 한국 해군의 위상뿐만 아니라 막대한 국가예 산 등이 걸려있는 중차대한 사업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변질될 수 있느냐 고 분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대는 잠수함 설계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 업체들의 말을 빌려 “1천5백t급과 3천t급은 전 혀 체계가 달라 군의 발상은 실현성이 없는 것”이라면서 “수상함의 경 우에는 복수업체 양성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독 잠수함 분야에서는 적법절 차를 무시한 채 지난 10년간 대우에 독점권을 준 데 이어 또다시 차기사 업마저 독점시키려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군은 왜 명분이 적은 3천t급 잠수함의 자력건조론을 들고 나온 것일까? 군과 방산업계는 의혹의 실마리를 엉뚱한 데서 찾는다. 방산업계 의 한 임원은 “애초 건조중인 209형 잠수함 건조사업은 오는 2000년 초 끝나는 대신 대양형인 3천t급 잠수함 건조사업은 2000년 후반부터 시작하 는 것으로 되어 있다”면서 “기존 잠수함 건조시설이나 인력을 놀리지 않으려는 대우쪽의 요청으로 209 개량형이라는 새로운 잠수함사업이 급조 된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잠수함 건조계획 변질 과정에는 대우와 독일 HDW사 사이에서 209 잠수함 도입을 중개한 무기중개상 정아무개(예비역 소령)씨가 큰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병화 전 해군총장과 해 사 17기 동기인 정씨는 지난 92년 차세대 구축함 도입을 중개하면서 김철 우 당시 해군 참모총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 는 인물이다. 방산업계에서는 차기 잠수함사업에는 단순히 해군이나 국방 부 차원이 아닌 좀더 고위층이 개입돼 있다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차기 잠수함사업이 안고 있는 또다른 문제는 자칫 국민의 혈세인 국방예 산이 낭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은 “1천5백t급 잠수함 도입과 관련해 현대와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주고받은 스웨덴과 프랑스가 제시한 척당 건조비는 2억∼2억5천만달러로 대우쪽의 예상건조비 3억2천만달러보 다 1억2천만∼7천만달러가 싸다”고 말한다. 왜 비슷한 잠수함을 도입하 는 데 우리나라 돈으로 척당 1천억∼6백억원의 차이가 나는지는 차치하더 라도 경쟁입찰 방식에 따르면 그만큼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굳 이 수의계약을 고집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대우중공업은 이에 대해 “잠수함사업과 관련해 어떤 특혜도 없었다”면 서 “군이 결정할 사안에 대해 민간업체가 왈가불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강행하자, 차기로 넘기자” 의견 엇갈려

국방부는 지난 25일 뒤늦게 현대중공업에 주장하는 내용을 서류로 제출해 줄 것을 공식요청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차기 잠수함사업을 원점에서 재 검토하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는 국방부가 애초 서류제 출 준비기간을 단 3일만 주려고 한 점을 들어 이미 결론을 내놓고 형식적 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국방부 내 의견도 11월 초까지 검토작업을 끝내 현 정권 아래서 강행하자는 쪽과 차 기정부로 넘기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려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 나 방산업계에서는 차기 잠수함사업이 의혹을 해소하지 않은 채 강행될 경우 다음 정부에서라도 율곡비리라는 비극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으리라 는 게 중론이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