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반DJP 연합 흐물흐물

(사진/이회창 총재나 이인제 후보쪽은 모두 민주당 조순 후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정권교체를 한번 경험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DJ를 지지해왔습니다. 그런데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집권 뒤 50대 50으로 자리를 나눠먹고 초대 총리는 JP가 맡는다는 ‘DJP 단일화’ 합의문을 막상 보니까 이래도 DJ를 찍어야 하나 회의감이 들어 요. JP가 누굽니까. 5·16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뒤 권력의 양지만 쫓았던 사람 아닙니까. YS에게 붙었다가 팽당해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재기했던 그에게 이렇게까지 양보해서 정권교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요.” “DJP 단일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언론보도를 통해 예상했고, 그렇게 해서라도 DJ가 집권하는 것은 지역감정 해소 등 나라 발전을 위해 괜찮은 것 아니냐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야당 후보 단일화가 현실로 나타나 70대의 두 노(老)정객이 앞으로 이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 가 된다고 생각하니 한마디로 답답합니다.”

노골적 권력나누기에 내부반발도

DJP 단일화 성사가 언론에 보도된 뒤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온 일부 시민 의 말이다. 이들은 DJ 지지자이거나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 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작 DJ와 JP 즉, 민주화 세력과 옛 여권 출신인 보 수 세력간의 이질적인 결합이 권력나누기를 전제로 이루어지자 적잖이 당 혹스러워 했다.

DJ나 JP 지지자들의 이러한 실망이나 내부 반발 기류는 일시적인 현상으 로 그칠지도 모른다. 야당의 두 정치지도자가 직접 나서 ‘공동정권 수립 을 위한 정치적 결합의 불가피성’을 지지자들에게 설득할 경우 이들이 ‘양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대 진영의 반발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DJP 연합으로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데 대해 현재의 여권 기득권세력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이러다가는 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 는 것이다. 신한국당의 김철 의원은 “DJP 연대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 던 보수 여권세력들이 앞으로 뿔뿔이 갈라져 있는 여권 성향의 세 후보들 에게 단일화하라고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할 것”이며 “그 흐름은 11월 중순까지는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후보 단일화 작업이 성 공할 경우 대선 판도는 DJP 대 반DJP간의 양자구도로 돼 판세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혼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권 후보 단일화 작업은 현재 다양하고 복잡하게 추진되고 있다. 각 후 보 진영에서도 추진하고 있고 후보가 아닌 정치집단도 나름대로 반DJP 단 일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반DJP 진영의 복잡한 속사정을 반영하는 것 이기도 하다.

먼저 후보들간의 연대 움직임이다.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신당 이 인제 후보, 민주당 조순 후보 등 세 후보쪽은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한 3 자연대 혹은 2자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세 후보 모두 ‘3김 정치의 청산 ’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각기 계산이 달라 3자 연대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로 불신하 고 증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회창-이인제 연대는 불가능

(사진/신한국당 수뇌부 회동. )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쪽의 불신감은 단순히 반 D JP 연대라는 차원에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후보쪽은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 후보가 과거를 ‘반성’하고 신 한국당에 들어온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 연대란 있을 수 없다는 입 장이다. 이 총재가 “원칙없는 반DJP 연대는 DJP 연대와 마찬가지로 비도 덕적”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인제 후보와의 연대를 거부한다는 분명한 의사 표시다. 이 총재는 11월1일 열린 신한국당 핵심 5인회동에서도 “반 DJP 연대에도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당내 일부 인사들이 추진하는 반DJP 연대는 이인제 전 경기지사를 염두에 둔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 다”며 “우리 당이 제1당이고 우리가 뽑은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데 백지상태에서 연대를 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경선에 불복 한 이인제 전 지사는 연대에서 배제한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쪽도 신한국당의 이 총재와는 연대가 불가능하다 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입장을 바꿔놓고 우리가 이 총재라도 당을 깨고 나간 사람과는 연대를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면 서 “이 총재나 신한국당과 연대를 하는 것은 일찌감찌 포기했다”고 말 했다. 대신 이 후보쪽은 지지율에서 이회창 총재와의 격차를 더욱 벌임으 로써 대선구도를 김대중-이인제 양자구도로 이끌어나간다는 전략이다. 이 회창 총재가 끝까지 출마하더라도 DJP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는 이인제 뿐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실질적인 여권후보 단일화를 이룬다는 것 이다.

이에 따라 이회창 총재나 이인제 후보쪽은 모두 민주당 조순 후보쪽을 자 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국 반DJP 단일화가 이 뤄진다면 이회창-조순 혹은 이인제-조순의 2자 연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국당이나 국민신당은 조순 후보가 전체 국민의 5% 정도밖에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조 후보와의 연대가 이뤄지면 반DJP 진영의 대표성 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서로 조 후보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이다. 특히 이회창 후보쪽은 조 후보와의 연대가 성사될 경우 현재 반등 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지율을 끌어올릴 중요한 계기를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이 후보의 측근과 김윤환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나서 민주당과의 접 촉을 강화하고 있다.

‘3자회담 제의’ 조순의 선택

‘건전세력의 연대’를 내건 조 후보는 그동안 김영삼 대통령과 신한국당 이 총재, 국민신당 이 후보 등을 두루 만나 자신의 연대 구상을 놓고 상 대를 모색해왔다. 그는 이와 관련해 10월31일 자신과 이회창 이인제 후보 간 3자회담을 제의했다. 조 총재는 “어떤 형식이든 세 후보(이회창, 이 인제 후보와 자신)의 후보단일화가 된다면 환영한다”면서 “후보들이 자 주 만나면서 뜻을 합치면 후보단일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3자회담 개최 를 제의했다. 그가 3자회담을 제의한 것은 이회창-이인제 두 후보간의 갈 등구도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 조 총재의 한 측근은 이와 관련해 “만약 이회창-김대중-이인제 3후보가 싸 우는 3각구도로 연말 대선을 치를 경우 여권표의 분산으로 정권이 넘어가 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느냐”면서 “이회창, 이인제 후보 두 사람 모두 양보할 수 있는 카드는 조 후보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순 대안론’은 여권에서 더이상 거론되지 않는 분위기이다. 지지율 5% 후보로는 통합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결국 조 후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이씨 중 어느 한명에게 후보자리를 양보하거나 아니면 끝까지 독자출마하는 것이다.

조 후보가 두 이씨 중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견 해가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조 후보가 이인제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 한 반면 이회창 후보를 신뢰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이회창-조순 연대 가능 성을 점치고 있다. 조 후보의 한 핵심측근은 “10월31일에도 이 전 지사 쪽 인사들과 만나 이 전 지사가 직접 봉천동의 조 총재 자택을 방문하는 등 명분을 갖춰주면 양자간 연대 성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그쪽 반응이 별로였다”면서 “결국 조 총재가 연대를 결심하게 될 경우 그 대상은 이회창 총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조 후 보 주변의 젊은 층에서는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이 별반 상승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이 총재와의 연대는 ‘승산없는 게임’이라며 이인제 후 보와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조 총재의 선택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결국 세 후보간의 연대 움직임이 서로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성사되 더라도 반쪽 연대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이런 가운데 나타난 또다른 반DJP 연대의 흐름은 신한국당 민주계가 주도하는 ‘정권창출을 위한 국민연대추진협의회’이다. 10월29일 발족한 국민연대는 지역별 대 표 8명을 선임하는 등 세 늘리기 작업에 착수했다. 지역별 책임자는 서울 이상현 의원, 부산 박종웅 의원, 대구 김석원 의원, 인천 이경재 의원, 경기 김길환 의원, 강원 최욱철 의원, 경북 임인배 의원, 그리고 경남은 김재천 의원이 맡았다. 국민연대에는 지난 경선과정에서 갈가리 찢어졌던 민주계가 모두 모였다. 정발협쪽의 신상우 서청원 의원과 독자출마했던 김덕룡 의원, 이회창 총재쪽에 있었던 박관용 의원 등 민주계 중진들이 모두 참여해 민주계의 단일 대오 형성은 이뤄진 셈이다.

신한국 내분이 가장 큰 걸림돌

(사진/국민신당 입당 환영식. )

‘국민연대’의 실무간사를 맡고 있는 신한국당의 박종웅 의원은 “DJP 단일후보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현재 많이 잡아야 40%밖에 되지 않는 반면 에 나머지 60%의 국민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야권후보 단일화에 자극받아 반DJP 후보 단일화를 원하고 있는 만큼 신한국당과 국 민신당 민주당 등 범여권의 후보 연대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들간에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을 경우 국민연대는 이 를 외부에서 압박하고 압력을 가해 결국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대는 이를 위해 당내 의원들을 상대로 서명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 연대는 민주당 등 당 바깥 인사들에게도 서명 작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서명 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이를 토대로 곧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후보 조순 총재 등 세 후보에게 여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연대 작업을 공 식 제안한다는 계획이다. 박 의원은 “이회창 총재가 주장한 3김 청산 세 력의 연대나 이인제 후보의 세대교체 연대, 그리고 조순 후보의 건전세력 연대는 표현만 다를 뿐 구시대 정치를 청산하자는 취지는 같은 것”이라 며 “세 후보 모두 시간이 갈수록 반DJP 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10월 31일 신한국당을 탈당한 서석재 의원도 반DJP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서 의원은 신한국당 민주계와 통추, 민주당, 국민신당 등 4자연대를 구상 하고 있다. 그러나 서 의원이 ‘개혁연합’이라고 부르는 4자연대는 신한 국당의 이회창 후보를 연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국민연대의 움직임 과는 차이가 있다. 서 의원의 한 측근은 “이회창 후보는 반DJP 연대에 동참할 가능성이 없는 데다 민정계에 둘러싸여 있어 어차피 결별하는 게 전선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곧 적당한 ‘ 모양새’를 갖춰 국민신당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민주계가 추진하는 반DJP 후보연대는 과반수의 ‘비(非)DJP ’ 유권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인 걸림돌이 많아 성사되기가 어렵 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여당인 신한국당 내의 내분이다. 이회창 후보 지지파와 반대파간의 오랜 불신과 대립은 반 DJP 연대를 위한 단일 대오 형성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반DJP 연 대를 추진하고 있는 국민연대가 민주계 의원들만 가담한 반쪽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민연대 순수하게 안 본다”

이 후보 지지파는 민주계의 반DJP 연대 움직임은 결국 이 후보를 사퇴시 키고 이인제 후보를 끌어들이려는 음모가 내재돼 있다고 보고 있다. 윤원 중 총재비서실 부실장은 “민주계의 생각은 이회창 후보로는 안 된다는 것 아니냐”면서 “애당초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할 일 은 이 총재를 최대한 흔들어 상처를 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태 홍보본부장은 “진정으로 범여권 후보단일화에 뜻이 있다면 당을 중심으 로 해야지 당 지도부와는 별개로 특정 계파가 나서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면서 “결국 국민연대는 이인제 후보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 조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국민연대의 김철 의원은 이에 대해 “우리가 반이회창 지향성을 갖고 있 는 것은 아니다”면서 “DJP 단일후보를 이기기 위해서는 이회창, 이인제 , 조순 후보 등 여권 후보 3인과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뜻에서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연대 내부에서도 “이회 창 후보가 결국 3자 연대를 안 받아들일 경우 우리도 탈당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반DJP 연대나 후보단일화 작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 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상층부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기존의 여권 성 향의 유권자들이 반DJP 연대에 대해 어떤 판정을 내릴지가 주요 변수라고 하겠다. 반DJP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이들이 이회창, 이인제 후보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쏠림 현상을 보일 경우 사실상의 반DJP의 대표성을 획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11월 중순까지 유권 자들의 지지율이 현상태대로 김대중-이인제-이회창간의 격차율 7∼10% 차 이의 3각 구도로 고착화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