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재벌/고합그룹

‘장치혁 절대권력’ 30년

장치혁 고합그룹 회장은 30대 그룹 총수 가운데 얼마 안 남은 창업주 중 의 한 사람이다. 그룹 총수, 특히 창업주는 기업 안에서 대통령보다 더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한국적 풍토다. 장 회장은 서울법대 수학에,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경력답게 대외적으로는 학구적이고 합리적인 인물 로 알려져 있지만 그룹 안에서는 절대자로 군림한다. 고합의 30년은 장 회장의 ‘1인경영’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고합은 공식적으 로 그룹 회장의 결재란이 없어 전문경영인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장 회장은 또 매주 한번씩 열리는 사장단협의회에도 참석하는 일 이 없다. 그러나 장 회장은 수시로 각 계열사 사장단을 직접 불러 지시를 내린다. “나일론처럼 가늘고 질기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꼼꼼한 그는 계열사 사장의 방침이나 계획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즉각 바꿔 버린 다. 이런 그의 스타일 때문에 그룹 경영기획실도 사실상 총수의 뜻을 각 계열사에 전달하는 창구에 불과하다. 뭔가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가 도 한발 삐끗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회장의 지시대 로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같지만 활력과 생기를 찾아보기는 어 렵다.

장 회장은 모든 사안에 대해 극도의 보안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룹내 주 요 프로젝트도 공식기구가 아니라 장 회장이 지정하는 극소수 사람에 의 해 점조직으로 추진된다. 지난해 말 그룹 내 최대현안이었던 독일 엠텍 마그네틱사 인수 건의 경우 장 회장이 인수계약 이틀 전 출장명령을 내리 기 전까지도 담당임원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회 장이 다른 비선을 통해 일을 진행시킨 탓이다. 장 회장은 그룹 내부의 일 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그룹의 발표자료 문안까지 자신 이 직접 손질할 정도다. 무(無)에서 시작한 고합이 30여년 만에 재계 21 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이 장 회장의 이런 독특한 경영술이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장 회장의 말대로 국경이 없는 글로벌 경 쟁시대에서 45개를 넘는 국내외 계열사와 해외현지법인을 거느리며 한해 매출이 5조원을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시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보수적 이고 폐쇄적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