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여자의 몸

김정란/ 시인·상지대 교수

일전에 어느 일간신문 사회면에는 세 여성의 삶이 수직방향으로 편집돼 있었다. 편집자가 의도했던 바는 아닌지 모르지만, 그 편집은 아주 흥미 로웠다. 맨 위쪽에는 마더 테레사가, 가운데에는 다이애너가, 그리고 맨 아래에는 훈할머니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관념적 외국여성들(실존 여부 와 상관없이 어쨌든 우리에겐 먼 나라 얘기니까)을, 늙은 한국여자의 생 생한, 통곡하는 현실이 떠받치고 있었다. 그런데 , 마더 테레사와 다이애 너의 경우는 기사였던 반면, 훈할머니의 경우는 5단 통광고였다.

매스컴의 이미지 조작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들의 육체성은 희박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 편집의 수직성이 가지고 있는 논리는, 그것이 가치의 수직체계를 숨기 고 있다는 의심을 접어두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여성 훈할머니가 광고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거북하게 느 껴진다. 훈할머니의 실재성이 광고 이미지에 의해 추상적 기호 차원으로 축소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훈할머니의 이미지 뒤에서 어린 나이에 이국 까지 끌려가 죽어간 무수한 어린 소녀들의 육체가 지워지고 있다는 느낌 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훈할머니를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서 훈할머니의 실재가, 그리고 그녀와 같은 삶을 살았던 무수한 다른 소녀들의 삶이 막 뒤로 사라지고 있다. 성덕 바우만을 이미지-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 이 골수 기증자 서한국씨의 고통을 망각 속에 내팽개쳐 두었듯이.

그저 단순한 어느날 하루 일간지의 편집일 뿐이잖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스컴의 이미지 조작의 한 결정적인 예가 될 수 있 다. 이미지 조작은 특히 여성의 육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가장 현 실적인 것은 이미지의 추상성이 가려버리는 것이다. 여성의 육체는 그 어 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전시된다. 그러나 지금 여성의 육체는 어느 때보다 도 고깃덩어리이다. 그것은 영적 의미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주인을 떠나 시체처럼 세계를 떠돈다.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에는, 머리가 따로 떨 어져 나간 채, 혼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죽은 여자들의 육체가 나온다 . 그것은 외적 이미지에 매달려 스스로 자연이 되기를 거부한, 주체와 따 로 노는, 대상적 존재로 전락한 여성육체의 끔찍한 알레고리이다.

노랑나비 이승희가 칙사 대접을 받으며 법석을 떨고 갔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전시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녀 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매스컴의 소란은 정말로 볼만한 것이었다. 어떤 텔 레비전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한국을 빛내주 셔서 감사한다”고 정중한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 순간에 한국의 누드 모델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을까. 얼마 전에는 미스 유니버스가 한국인 피가 몇분지 일인가 섞였다고 불러다가 온갖 아양을 떨기도 했다. 이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미국인 피가 몇분지 일 인가 섞인 한국 여성이 미스 유니버스가 되었는데, 미국 사람들이 그 한 국여성을 불러다가 “오우, 할아버지의 나라 음식인 햄버거도 먹을 줄 아 네. 참 신통방통하네” 그러면서 난리를 치겠는가 말이다.

결국 이러한 소란의 배후에는 ‘육체’에 대한 한국인 특유의 자신없음이 도사리고 있다. 스스로 역사적 맥락을 타면서 안으로부터 만들어진 육체 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의 안에서 충분히 생의 조건 들을 체험하면서 만들어진 육체에 대한 실체적이고 고유한 이미지가 없다 . 그리곤 무턱대고 남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가져다가 소비한다. 이 현상은 화장품이나, 패션상품 이름이 하나같이 외국어(특히 프랑스어 가 자주 쓰이는데, 철자에다 발음까지 제멋대로다)라는 사실과도 무관하 지 않다. 그래야만 팔린다는 게 업계의 핑계인 듯 하지만, 정말로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노력해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미에 대한 주체적 기준은…

그렇게 매스컴과 여성 소비품 생산업체들이 남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이미 지를 생각없이 유포시키는 동안, 한국여성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열등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녀들에게 육체는 언제나 관념의 올림푸스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들이 그렇게 유행에 민감한 것은, 그 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미의식에 목말라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스 스로 미에 대한 주체적인 기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똑같 이 눈썹을 그리고, 어울리거나 말거나 똑같이 유행하는 빛깔의 루즈를 바 르고,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보는 내 마음은 우 울하다.

세계에서 몇번째 미인 소리를 듣는 중국배우 공리는 별로 아름다운 여성 이 아니다. 홍콩 배우 임청하도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하고 아름다 워 보인다. 왜 그럴까? 왜 우리의 아름다운 여배우들은 그렇게 홑겹으로 보일까? 아름다움은 단지 외적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