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마당극 <밥> 10년 만에 무대에 올라

(사진/"세상의 `밥'이 되게 하소서!" <밥>은 마당극의 전형을 제시한 작품으로 풍자와 해학을 통해 생명사상을 전한다.)

밥은 우리 민족의 먹거리일 뿐 아니라, 그 밥의 영양분으로 유지되는 우 리 정신의 원천이다.

극단 길라잡이(대표 양정순)가 김지하의 마당극 <밥>을 10년 만에 되살렸 다. 김지하가 생명사상을 표방하며 내놓은 수상집 <밥>은 84년 출간됐고 이듬해 마당극 <밥>이 초연됐다. 마당극 <밥>은 당시 당국의 극장공연 불 허로 대학초청 공연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는데 암울한 5공 시절 한바탕 통쾌한 풍자마당을 펼쳐 모두 3백여회, 5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밥> 은 이후 각 대학 탈패, 마당극패 등에 영향을 끼쳐 80년대 후반 및 90년 대 초반까지 마당극의 전형을 제시해 대학가 마당극 열풍을 불러일으킨 진원이기도 하다.

80년대 대학가에 마당극 열풍 몰고와

김지하씨는 “밥은 만사지근본(萬事之根本)”이라며 “불교에서 새 밥을 함께 나누는 대중공양인 식당작법(食堂作法) 속에 중생해탈과 개벽의 뜻 이 담겨 있고, 기독교에서 예수가 처형 직전 제자들에게 ‘내 몸을 먹으 라’며 자신을 ‘밥’(떡)으로 내준 것은 눈에 보이는 밥을 보이지 않는 ‘사랑’, ‘영성’(靈性)으로 아우른 것”이라고 말했다.

마당극 <밥>은 80년대의 치열함을 뒤로 한 채 10년의 동면을 끝내고, 지 난 4월 서울시 우수마당극 퍼레이드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긴 잠에서 깨어 났다. 그리고, 6월 민주항쟁 10주년 행사, 8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국제 거리극 축제, 9월 과천 세계마당극 큰잔치 초청공연 등으로 숨가쁘 게 달려왔다. 콜롬비아에선 거리극 축제 3대 우수작으로 선정됐고, 세계 마당극 큰잔치에선 매회 1천2백여명이 몰린 최고 인기작이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김지하의 사상이 창작판소리로 단련된 임진택의 예리하고 섬세 한 언어감각과 버무려져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풍자와 풍성한 해학으로 튀어나온다. 그래서 <밥> 짓는 마당에선 항상 폭소가 터진다. 연출가 임진택씨는 <밥>을 다시 짓게 된 데 대해 “사람들은 아직도 20세 기 생활방식인 생산·속도·물질 제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 세기는 20세기와는 다른 삶의 방식이 요구되고, 그 사상을 담고 있는 실 체가 바로 더불어 함께 나누어 먹는 <밥>”이라며 “사람 사이의 진정한 만남이 점차 위축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몸으로 부 딪치는 원초적 예술인 연극, 그중에서도 사람의 땀과 눈물과 회한과 절규 가 생동하는 마당극으로서의 <밥>은 우리가 무엇을 향해야 할지를 제시해 준다”고 말했다.

<밥>에는 농부, 마름, 관리, 창녀, 행상, 아나운서, 경찰국장, 죄수, 걸 인 등 30여명의 유형적 인물이 등장하는데 5명의 광대가 1인다역을 맡는 다. <밥>은 세 마당으로 이뤄진다. 첫째마당 ‘똥이 밥이다’에선 우리 농촌과 농업의 위기와 대안을 진단하고, 둘째마당 ‘밥이 한울님’에선 기성종교와 도덕이 갖는 권위주의를 비판하며, 셋째마당 ‘나는 밥이다’ 에선 인간사회의 먹이사슬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밥>은 힘없는 사람이 힘센 자의 밥이 되지 않고 서로가 똑같은 밥이 되어 서로를 살리자고 이 야기한다.

밥짓는 마당엔 폭소… 전국순회 계획

<밥>은 10월에도 경주(10.23, 동국대), 홍천(10.24, 대명콘도), 울산(10. 25, 문화회관), 포항(10.25, 포항실내체육관), 남해(10.26, 남해군청) 등 으로 지방공연을 계속한 뒤 서울 대학로 문예회관소극장에서 10월28일부 터 11월8일까지 마지막(?) 공연에 들어간다(월∼목 오후 7시30분, 금∼토 4·7시, 일 3·6시. 11월1일 4시 공연 없음, 문의: 02-765-8770).

한편 극단 길라잡이는 <한겨레21> 독자 2백명을 무료초청하는 한편 <한겨 레21> 독자 모두에게 할인권을 제공, 자신들의 밥상머리에 초대했다(110 쪽 ‘독자와 함께’ 참조).

권태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