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우리말 부끄럽게하지 맙시다

‘다리골 언덕 위에 소문난 통나무 갈비집’ ‘미다모아’(화장품 가게) ‘한아름 소리사’(전파사)….

22년째 한국바른말연구원(02-312-5679)을 이끌고 있는 원광호(50) 원장의 ‘작품’들이다. 가게 간판뿐만이 아니다. 10월 초 ‘반마다 개성있는 이 름을 붙이고 싶다’는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에겐 바름반, 용기반, 아 름반, 슬기반 등 재미있고 기억하기 쉬운 우리말 이름을 지어 주었다. 둘 째 딸의 이름을 놓고 고민하던 한 회사원에게 ‘김윤나’(첫딸은 김빛나) 라는 예쁜 이름을 선사한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내년에 문을 열 예정인 서울시 홍보관의 이름인 ‘서울 까치방’도 그의 손을 거쳐간 것이다. 처 음에는 알음알음으로 들어오던 문의가 요즘은 부쩍 늘어 일손이 달릴 정 도다.

“우리말과 글을 아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 습니다. 국적 불명의 외래어가 침투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말조차 격에 맞게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원씨는 지난 10월9일 한글날을 맞아 ‘이런 교과서로 학생을 가르 치다니’란 학술 강연회를 열었다. ‘∼이 요구되어 진다’ ‘∼을 필요 로 하다’ ‘∼에 있어서’ 등 교과서에 실린 일본어와 영어 번역투의 문 장들을 꼼꼼히 짚어보자는 뜻이었다.

연구원 활동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과는 2년전 국내 8백37개 공공 기 관과 해외 주재 공공기관 1백41개의 한자 간판을 모두 한글로 바꾼 일이 다. 관습에 얽매인 정부 기관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수긍하면서도 막상 바꾸기를 요구하면 ‘선례가 없 다’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며 발뺌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 지만 만 3년 동안 수십 차례 탄원 및 청원을 내고 정부 기관을 일일이 방 문해 꾸준히 설득한 결과, 정부쪽의 태도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김회승 기자/ 한겨레 생활과학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