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팬이요? 매니저예요

지명옥(29)씨는 그룹 산울림의 매니저다. 20년째 산울림 팬이기도 하다. 특별히 말주변이 좋거나 이재에 밝은 것도 아니고 가요계 인맥도 없는 평 범하고 씩씩한 그를 매니저로 변신시킨 것은 “누구보다 산울림을 잘 알 고 좋아한다”는 신념이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듣고 산울림을 좋아 하게 됐다. 언니, 오빠들이 산울림을 엄청나게 좋아했으니 어린 그는 조 기교육을 받은 셈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산울림이 해체되자 그는 솔로 로 활동하는 김창완씨의 열혈팬으로 변신했다. 김씨가 나오는 공개방송이 며 공연장에는 항상 그가 앉아 있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라디오 프 로그램에 출연해 그와 얘기를 나누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지금도 어 렸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그때의 “예쁘고 좋은” 산울림 음악이 떠오 른다.

95년 겨울 그는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산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이텔에 팬클럽 ‘개구장이’를 만든 것. 그리고 산울림 멤버들을 만나 결성 20주년인 97년에 세명의 멤버가 다시 모여 활동도 하고 음반도 내고 공연도 하자고 제의했다. 이심전심, 산울림 세 형제도 그 계획에 찬성을 했는데 문제는 매니저가 없다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날 김창완씨가 “명 옥이 네가 매니저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안 된다고 펄쩍 뛰 던 그도 결국 설득에 넘어갔다. “산울림이 좋으니까 돕는다”는 생각으 로.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항상 프로듀서 나 기자들과 술마시면서 얘기하고 새벽에야 집에 돌아가는 생활이 여자에 게 불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방송 국을 돌며 홍보도 하고 공연준비, 음반준비에도 매달렸다. 이제 매니저 경력 열달이 된 그는 신이 난다. “초보 매니저지만 그게 오히려 산울림 의 순수한 이미지에 맞는다는 칭찬도 듣고 아저씨(그는 산울림 멤버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마음도 통하니까 일하기도 좋 아요.”

26일 홍대 앞 클럽 명월관에서 팬들과 산울림이 함께 하는 20주년 행사를 준비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의 다음 계획은 “초보 티를 벗고 좋은 프로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박민희 기자/ 한겨레 문화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