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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진실 (7)/지상 최대의 골잔치 만들다

(사진/월드컵 창설을 주도한 줄 리메(왼쪽) 회장이 우승을 차지한 우루과이축구협회 임원에게 우승컵을 건네고 있다.)

1914년 1차대전이 터지자 남미에 원정중이던 영국팀은 서둘러 귀국했으나 이탈리아팀은 브라질에 발이 묶였고 유럽에서는 국내경기가 잇따라 중지 됐다. 영국에서는 군수공장에서 대량의 불발탄이 나오게 된 것은 공장 노 무자들이 축구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라 여기고 정부가 근무시간 중 축구경기의 중지를 지시한 적도 있다. 그러나 영국리그는 변함없이 치러 졌고 실제로 축구는 영국 국민들의 전투의식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영국축구협회는 그라운드를 군사 교련장으로 제공했고 축구경기가 열릴 때마다 지원병 모집연설이 치러졌다. 당시 영국의 지원병 1백18만6천명 가운데 50만명이 축구경기장에서 지원했다니 축구는 영국의 국방에 크게 공헌한 셈이다. 영국축구협회(FAC)컵 결승전의 무대였던 크리스탈 팰리스 는 군수물자를 쌓아두는 곳으로 이용됐고, 자원해서 일선으로 나간 프로 축구 선수 가운데도 적지 않은 전사자가 나와 전쟁이 끝난 뒤 리그의 경 기수준이 낮아졌을 정도였다.

1차대전이 축구의 세계화에 이바지

병사들은 볼을 갖고 전선으로 나갔으며 전투 사이사이에 축구를 즐기곤 했다. 일선의 사령관들도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잊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 고 축구를 장려했다. 병사들 가운데는 여럿이 뒤엉켜 발을 휘둘러 차다가 이마를 채여 죽은 사람도 있었다. 영국의 미들섹스 연대는 ‘풋볼 버탤리 온’(football battalion)으로 이름을 떨쳤고, 같은 영국의 이스트셀리 연대는 적탄이 날아오는 가운데 피투성이 볼을 차면서 돌격했다는 이야기 도 전해진다.

전선에서 비공식적 휴전이 실현된 1914년 크리스마스에는 영국군과 독일 군이 축구경기로 대결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연합군쪽 진지에서 는 프랑스군과 벨기에군이 대항전을 치렀고 그뒤 영국군도 이 경기에 참 가했다. 영국축구협회는 적십자와 손을 잡고 전선의 병사 그리고 심지어 적군의 포로가 된 병사들에게까지 볼을 보냈다. 수용소에서 볼을 차며 즐 기는 포로들의 모습을 본 그 곳 사람들도 전쟁이 끝나자 축구를 즐기게 됐다. 1차대전은 결과적으로 축구를 세계로 확산시키는 큰 계기가 됐다. 1918년 1차대전이 끝나자 전쟁에 이긴 연합군 사이에서는 재빨리 국제경 기가 부활됐다. 하지만 1차대전이 남긴 애국적, 배타적인 분위기는 축구 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패전국은 물론 패전국과 경기를 가진 중립국 도 국제경기를 개최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패전국과 교류하면 연맹으로부 터 제명한다”는 제안이 영국을 비롯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등, 독일 에 의해 전쟁피해를 받은 나라들로부터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됐다. 그러나 “스포츠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며 스포츠 교류는 모든 나라와 이루어져야 한다”는 중립국 여러 나라의 강한 반대, 그리고 독일을 비롯 한 패전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FIFA의 뜻 때문에 이 제안은 받아들 여지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잉글랜드를 비롯한 스 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등 영국의 네 협회는 1920년 FIFA를 탈퇴해 버 렸다.

1921년 프랑스의 줄 리메가 제3대 FIFA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월드컵 창설 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FIFA는 올림픽 축구를 아마추어 축구의 세계선 수권으로 인정하고 있었으나 줄 리메는 “올림픽 축구가 참다운 세계선수 권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미 유럽과 남미에는 프 로화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었기 때문에 각국은 최고수준에 이르지 못한 팀을 올림픽에 내보내든지 아니면 프로선수를 아마추어로 가장해서 출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가 아마추어로 변장한 프로선수를 올림픽에 출전시켰는가 하면,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우승한 우루과이는 축구선수 단이 귀국하자 선수 전원을 공무원으로 발령, 일하지 않았는데도 월급과 연금을 보장해 줬다.

그에 따라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리지 않고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겨룰 수 있는 참다운 세계선수권대회를 창설하자”는 여론이 날로 높아졌다. 여기에 로스앤젤레스 올림픽(1932년) 조직위원회가 ‘미국에서는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축구를 개최종목에서 제외해 버렸다. 더이상 월드컵 창 설을 늦출 수 없게 된 것이다. 1924년 파리 올림픽과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축구 2연패를 이룩한 남미의 우루과이가 1930년의 제1회 월드 컵을 개최하겠다고 나섰다. 유럽으로부터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경 시당해온 남미는 유럽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축구를 통해 자기네 존재 를 알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올림픽 2연패한 우루과이서 첫대회

줄 리메도 올림픽 축구 2연패를 이룩한 우루과이의 쾌거를 “문학이나 경 제회의보다 훨씬 더 우루과이에 대한 전세계의 평가를 높이는 데 이바지 했다”고 말했다. 우루과이의 올림픽축구 2연패는 구세계에 대한 남미 모 두의 승리를 뜻했다. 우루과이는 건국 1백주년 기념행사를 내세워 제1회 월드컵 개최전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이라 유럽으 로부터는 프랑스 유고 루마니아 벨기에 등만이 출전, 참가국은 13개국뿐 이었다.

결승은 개최국 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를 4-2로 물리치고 첫우승을 차지했 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의 거친 플레이와 불공정한 심판 때문 에 졌다고 우루과이 영사관 앞에서 소란을 일으켜 끝내 두 나라는 국교단 절에 이르렀으며, 두 나라 대표팀도 7년 뒤 중립지역에서 대결할 때까지 완전히 교류를 끊었다. 월드컵의 심상치 않은 영향력은 첫 대회때부터 나 타난 것이다.

고두현/ 스포츠 평론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