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만세/소아과

열성 경련에 당황하지 말라

어느 비오는 날 엄마와 아기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병원을 왔다. 경련을 하는 아이를 안고 정신없이 뛰어오다가 넘어진 것이다. 아무리 강 심장을 가진 엄마라도 아이가 갑자기 눈을 뒤집고 입에서 거품을 내며 불 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당황하게 된다. 또 경련이 멎으면서 아이가 정신이 들고 엄마도 정신이 들면 혹시 우리 아이가 간질이 아닐까 고민하 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 대개는 열성 경련으로 벌어지는 사태인데 미리 약간의 상식을 알고 있으면 엄마의 눈물을 아낄 수 있다.

아이들은 열이 나는 병에 걸리기 쉽다. 감기만 걸려도 열이 39도를 쉽게 넘어가는데 열이 심한 아이들 중에 간혹 경련을 일으키는 아이들이 있다. 경련은 아이가 의식이 없어지면서 눈이 약간 돌아가고 손발을 약간씩 탁 탁 떨면서 뻣뻣해지는 것을 말한다. 열성 경련이란 뇌에 다른 이상이 없 으면서 높은 열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인데 대개는 체온이 갑자기 올 라갈 때 생긴다. 열성 경련은 대개 9개월에서 5세까지 잘 발생하고 5세 이후에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열성 경련을 하는 아이들의 부모도 어릴 때 열성 경련을 많이 한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아이가 열성 경련을 할 때 엄마가 명심해야 할 제일 중요한 것은 절대로 당황하지 말라는 것이다. 몇번을 겪은 엄마도 막상 당하면 눈앞이 캄캄해 지고 머리 속은 하얗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게 되는데 열성 경련은 무 섭게 보여도 대개 저절로 좋아지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열성 경련 을 오래 하는 경우도 아이가 숨막혀 죽거나 머리가 나빠지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경련중에 의식이 없는 아이를 함부로 병원으로 옮 기다가는 숨이 막힐 수 있고, 고개를 잘 받쳐 주지 못하면 목뼈를 다칠 수도 있다.

경련을 할 때는 아이를 눕힌 뒤 옷을 벗기고 옆에서 얼마 동안 어떻게 경 련을 일으키는지 지켜봐야 한다. 열이 많이 나면 미지근한 물로 닦아주고 해열제 좌약을 사용해도 좋다. 만일 경련 중 토하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서 토한 것이 숨을 막지 않도록 흘려주고 음식을 먹는 중에 경기를 하면 입안에 있는 것을 빼 준다. 이때 손가락에 수건을 감고 빼 주는 것이 좋 다. 급한 김에 맨 손가락을 넣다가 아이의 입에 물려서 고생하는 엄마도 간혹 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손발을 떤다고 꽉 잡아 주는 것은 피하는 것 이 좋다. 아이가 숨을 잘 못 쉬어 얼굴색이 파래진다고 인공호흡을 시키 는 것도 하지 않는 게 좋다. 혀를 깨물까 봐 숟가락이나 나무 막대를 입 에 물리는 분들도 있는데, 열성 경련 중에 아이가 자신의 혀를 깨물어 문 제가 된 경우는 거의 없으며, 도리어 입안에 숟가락을 밀어 넣다가 입에 상처를 줄 수 있다. 경련을 하는 동안은 물이건 약이건 절대로 먹여서는 안 되는데, 잘못하면 폐렴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열성 경기는 대개 금방 멎기 때문에 경기가 멎기를 기다렸다가 여유를 갖고 소아과에 데려 가면 된다. 간혹 열성 경련이라도 10분 이상 경련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목을 잘 받치고 천천히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열성 경련 뒤에는 아이들이 늘어져 잠을 자는 것이 보통인데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열이 날 때 경련을 한다고 모두 열성 경련은 아니다. 일단 경기를 하고 나면 그것이 열성 경기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소아과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물론 열이 없을 때 경련을 하면 반드시 소아과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만일 몸의 일부만 경련을 하거나 15분 이상 경련이 지속되 고, 하루에 2번 이상 경련을 하면 다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무슨 일이건 자꾸 생기면 둔감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처음에 그렇게 겁나 던 열성 경련도 자꾸 생기면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에 열성 경기를 했던 아이가 다시 경기를 한다고 이번에도 반드시 열성 경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열성 경기는 항상 처음 같은 기분으로, 그러 나 절대로 당황하지 말고 대처해야 한다.

하정훈/ 소아과 전문의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