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안돼! DJ는 무조건 안돼!

(사진/지난 90년 한국노총 창립기념식에 나란히 앉은 YS와 DJ. 69년 신민당 대권후보경쟁에서 패배한 YS는 `DJ는 영원한 적'이라는 인식을 갖게되었다는 분석이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수수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이 진 흙탕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국민회의 등 야권은 강삼재 사무총장을 내세워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 고 이회창 총재의 측근들조차 “강 총장과 김 대통령의 사전 교감이 있었 다고 봐야 한다”며 ‘YS 음모설’을 시사한다. 자신에게 혐의가 모아지 고 있는데도 김 대통령은 계속 묵묵부답이다. 때문에 이번 비자금설 파동 을 보는 정가의 시각은 ‘DJ는 무조건 안 돼’라는 YS 정서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고 이에 따라 병적인 YS의 DJ 혐오증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68년 원내총무 자리놓고 견제 시작

사실 두 사람의 애증병존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지 현실적 인 DJ가 승패를 받아들이고 협조와 경쟁을 병행했다면 고집불통의 YS는 D J와의 관계에서 현실보다는 감정을 앞세우는 편집적인 모습을 보여왔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역사는 68년 5월 신민당 원내총무 지명전에서 표 출되기 시작해 69년 11월 신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극적으 로 나타났다. 후보경선에서 패배한 YS는 71년 앙갚음을 한다. 신민당 총 재 경선에서 DJ가 독주하자 YS는 김홍일 의원을 밀어 DJ가 총재가 되는 길을 막았다. 그뒤 DJ는 YS의 견제 속에서 변변한 당직 한번 맡지 못했다 . 이런 싸움은 92년 대선에서 YS는 청와대로, DJ는 야인으로 돌아감으로 써 막을 내리는 듯 했다. 하지만 94년 DJ가 정치활동을 재개하자 YS의 DJ 에 대한 견제와 증오는 다시 시작된다.

더욱이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먼저 오름으로써 사실상 경쟁에서 DJ 를 이긴 그는 더욱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DJ를 막아섰다. 94년 북한 핵문 제가 위기로 치달을 때 DJ가 ‘일괄타결’을 제시하고 미국 정부가 이를 수용하려 하자 YS는 이 표현 대신 ‘광범위하고도 포괄적인 타결’이라는 용어를 넣을 것을 요구해 관철시키는 등 외교관례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가 하면 95년에는 DJ의 사저를 사찰하기도 했다. 또 95년 4월 “인간으 로서 절대라는 것은 없다”며 DJ가 정계복귀를 선언하자 YS는 “김대중씨 는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정계를 은퇴했다”며 “3년 뒤 대선에서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세대교체 논쟁’에 불을 댕겼다. 96년 4·11총선을 앞두고 DJ가 민주당 유세에 나서자 “대통령이 여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이 됐다”는 비난여론을 견뎌가며 선거전의 전면에 나섰다. 당시 YS를 만난 한 인사는 “DJ는 안 된다. 전면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며 동참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리 고 이제 DJ 비자금 논쟁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다. 여권인사들은 “DJ 이 야기라면 김 대통령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말한다. YS의 DJ에 반 감이 그토록 뿌리깊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권력의 정점에 올라있고 92년 대선이라는 최종의 승부처에서 승리한 그가 여전히 DJ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비 자금설의 배후가 정가의 지적처럼 YS라면 여당후보를 당선시키는데 노력 하기보다는 여당후보가 탈락하든 말든 DJ를 끌어내리는 데에만 몰두하도 록 만든 것은 무엇일까.

피해의식과 우월감이 뒤엉킨 증오

세계정신분석학정치학회 부회장 백상창 박사(신경정신과전문의)는 “정신 분석학적으로 DJ에 대한 YS의 공격 형태를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 서도 “어떻게든 DJ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무엇인가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 무엇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YS가 DJ를 바 라보는 시각 속에는 라이벌 관계에서 오는 적개심과 일종의 피해의식, 그 리고 자기중심적인 우월감에 기반한 자기 표현욕구가 뒤섞여 있다”는 것 이다.

정치역정 속에서 끝내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은 DJ가 대통령이 되면 결국 자신을 짓밟을 것이라는 피해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강한 집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비자금 폭로도 “D J의 약점을 폭로해야 앞으로 예상되는 DJ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 에서 나왔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확실하게 발목을 잡아두자는 속셈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피해의식이 ‘조직적인 망상’에 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게 신경정신과 전문의들 의 진단이다. 사물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력이 부족하고 일관성이 없이 조 령모개식의 심한 변덕을 부려왔던 YS의 통치스타일을 볼 때 조직적인 망 상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랜 야당 생활에서 핍박을 받아온 경험이 타인(자신의 핍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에 대한 복수심으로 발현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DJ에 대한 증오는 핍박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과잉보상심리의 왜곡된 표현일 수 있다 는 것이다.

오랜 핍박을 견뎌온 YS가 투쟁하는 방식에 길들여져 있을 뿐 새로운 건설 에는 익숙지 못한 데서 나타나는 일종의 부작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YS는 파괴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며 “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경쟁자를 사냥감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고 설명한다. DJ에 대한 적개심에는 자신이 의도한 “정권재창출에 방 해되는 경쟁자는 끝까지 물을 먹이겠다는 무한보복심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정치심리학자들의 YS의 통치유형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통해 DJ에 대한 증 오를 분석한다. 한 정치심리학자는 대통령 YS의 통치유형을 “편협성(Par anoid)과 자기중심적(Ego Centralicism)인 우월감의 복합체”라고 규정한 다. 편협성을 가진 통치자의 특징은 사고가 이분화돼 있어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것이지 중간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 람은 결코 수용치 못한다. 실제 YS가 집권 뒤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박 준규 박철언 의원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 등을 취임 직후 반시대적 인 사로 낙인찍어 매장시킨 것은 그 생생한 실례다. 더욱이 이 유형은 아군 과 적군이 분명한 상황에 익숙해 있어 모든 정치를 그 연장선상에서 판단 한다는 것이다.

YS의 자기중심적 우월감은 험난한 정치판에서 본능에 가까운 감각과 결단 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생존하면서 추종자들을 이끌어온 경험에서 비롯되 는 것인데 “이런 유형의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 비교되는 것을 싫어 한다”는 게 정치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바로 DJ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것도 YS의 이런 우월감에 바탕하고 있다는 해석 이다. YS로서는 차기대권이 항상 자신과 비교의 대상이 돼 온 정치적 라 이벌 DJ에게 돌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와는 비교될 수 없는 사람이 차지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YS가 인위적 세대교체 론에 집착하는 정치심리적 배경도 여기에서 찾아진다. 더욱이 자기중심적 우월감을 가진 사람은 대개 자신이 물러난 뒤 자신의 치적이 극단적으로 미화되기를 원한다. 결국 비교대상인 DJ가 대통령이 돼 자신의 치적을 깎 아내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 경쟁자인 DJ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집착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심리학을 준용해 YS의 증오를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 신 경정신과 전문의는 “YS의 DJ에 대한 견제는 ‘형제자매 질투 감정’(Sib ling rivaly)이 발현된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이 질투감정은 부모의 사 랑을 독차지하려는 아이가 바로 윗형이나 아래동생을 증오하는 심리로 대 개의 경우 부모의 눈치와 규제 때문에 드러내지 못할 뿐 사람들에게 폭넓 게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형제자매에 대한 질투감정과 같다”

이 이론에 따르면 YS와 DJ는 야당인 민주당이라는 정치환경(한 어머니의 배)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해 왔고 국민(부모)으로부터 나이 경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항상 비교돼왔고 또 서로 국민의 애정을 더 얻으려고 싸워왔 다는 것이다.

물론 YS의 질투감정은 신민당 대권후보 경쟁에서 패배한 충격으로 자리잡 았고 이것은 오로지 DJ(형)를 이겨야 한다는 무의식, DJ에 대한 증오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YS의 이런 질투감정은 국민을 의식해 극도로 자제돼 왔다. 더욱이 YS의 정치적 원동력으로서 긍정적인 구실까 지도 해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오른 뒤부터다. 더이상 오를 곳도 없고 전임 대통령은 아무것도 아닌 한국적 정치문화 속에서 DJ가 후임 대통령이 되는 것은 이런 질투심리를 가진 YS 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이 DJ와 사생결단을 해야할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질투심리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스스로 인지하거나 쉽게 해 소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자신의 DJ에 대한 견제를 제 3자는 그것이 때로는 무리수라는 것을 알지만 정작 YS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DJ가 대통령이 안 되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 다”며 “DJ가 대통령이 된다면 YS는 아마 더 큰 충격에 휩싸일 것”이라 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